안녕하세요.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인데...
프로게이머에 관심이 많거나, 또 주위 지인이 이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인벤에도 많을 것이라 생각되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적합한 게시판을 찾다가 고른건데 혹 문제가 된다면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지난주 였나요... 한 아버님께서 궁금한게 있다고 경기장을 찾아오셨습니다.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들이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다 해서 이걸 허락을 해도 되는건지.. 비젼은 있는건지.. 궁금해 하시더군요. 그때 해드린 이야기입니다. 혹시라도 주위에 도움이 되는 분이 있을까 하여 기억을 더듬어 적어봅니다.게임의 인기와 e스포츠의 위상이 발전하며, 프로게이머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선수들은 수억대의 연봉을 받고,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또 수명이 짧다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e스포츠에서 의미 있는 커리어를 쌓아두면 그 기간동안특정 직종들에서 얻게되는 경력과 필드경험 등을 훨씬 뛰어 넘는 아주 유리한 위치에서 제 2의 직업,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경쟁'이라는 곳에서 살아남는 승자가 되어, 수만명이 내 이름을 연호하는 위치에 서본다는데서 나오는 자신감이라는 돈으로도살 수 없는 아주 값진 경험을 한다는 것은 +@ 정도로 놓더라도요.하지만 프로게이머 역시, e스포츠 역시 아주 치열한 경쟁 구도라는 것은 명심해야합니다. 어설픈 재능과 노력과 근성은 빛을 보기 어렵고, 결국 조연으로 극을 마무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를 자녀에게 설명해줘도 대부분은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하지마'인거지 '왜 할 수 없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을 줄 수 없으니까요.이런 생각의 차이 - 반대하는 부모님과, 그 반대하는 부모님에 반대하는 자녀- 간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자녀에게 게임은 단순한 도피처이자 부모님에 대한 반항의 도구가 되고, 그 게임을 부모님이 억제한다고 자녀가결코 공부에 집중하거나 진로를 진지하게 탐색하게되진 않습니다.그래서 먼저 '공감'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좋아하고, 하고 싶다고 하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과 게임 시장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냉철하게 아드님의 재능이 어느 수준인지, 또 프로게이머에 대한 열망이 어느정도인지 확인하고 진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두 과정을 거쳐서 '대화'를 하면, 의미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사실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굉장히 많은 자녀들은 이 직업 또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판단이 결여되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이유는 어찌되었든 게임이라는 세계 안에서 그들은 재미를 느끼고 있고 가치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공부는 해야하는 것이고 게임은 여가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게임안에서는 또래의 친구들과 공감하고 놀 수 있는 다양한 문화들이 있고, '더 잘해라, 이건 하지마라'하고 자극받고 혼나고 억제받던 경험들과 달리 '잘한다. 재능있다. 멋지다.'라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칭찬들이 존재합니다.여기까지를 이해하셨다면, 표현해주셔야 합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멋지고, 또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으며게임이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구나. 네 덕분에 그걸 알았다. 그리고 이제 함께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먼저 아드님의 게임 실력에 대한 현 주소 확인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실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등급'이 있습니다. 게임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등급을 통해 객관적으로 그 사람의 게임 실력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최소(정말 최소) 상위 1%가 되야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아직 그 등급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제안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혹은 어느정도의 기간동안 얼마의 시간을 할애하면 그 1%를 달성할 수 있을지.찾아오셨던 아버님께는 '여름방학'을 제안드렸습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미련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 곧 다가올 여름방학 종료 시점을 기한으로 하여 아들에게 LoL 마스터 티어를 달성하게 할 것. 단, 그 동안에는 전폭적으로 아들이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줄 것. 아니 더 나아가 게임'만' '해야'하는 상황을 만들 것.선행학습이나 복습, 학원 등도 중요하겠지만 아드님의 전체 인생을 볼때 이 여름방학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로 돌아올 것이라 전 확신했고, 아버님도 동의하셨습니다. (굉장히 열린 분이셨어요)아들이 정말 마스터티어를 달성한다면 진지하게 다시 프로게이머 진로 설계를 아버님과 함께 해보면 되는 것이고, 아들이 게임을 어설프게 하거나, 등급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게임을 단순한 도피처로 인식했거나,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했음을 수긍하게 되겠죠.설사 그 결과가 '실패에 대한 수긍'이라 할 지라도, 부모님과 함께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평생 그 자녀에게 보물이 될꺼라 생각합니다. 또, 그런 부모님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자녀에게는 어디든 자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거요.현장에서는 대화로 주고 받고 하다보니 자연스러웠던 말들이 글로 남기려니 좀 뜬금없고 맥락이 왔다갔다 이상하긴 하네요..
마지막으로 아버님께 더 드렸던 몇가지 조언은- 상암에서 그리고 강남에서, 더 크고 멋진 경기장에서 주 6일동안 경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드님을 데려가는 것 만으로도 아드님에겐 큰 선물이 될 것이고, 아버님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위상을 조금 더 크게 느끼실만한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드님의 아이디(..)를 알아봐 주시면 조금 더 디테일하게 실력에 대한 조언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명함을 드렸습니다.정말 진심을 다해 열심히 답변해드린 가장 큰 이유는 아버님의 질문의 방향이 '우리 애 어떻게 말려요?'가 아니라'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였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진짜 프로게이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버님의 영향을 받는 아이라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란건 확신합니다.비슷한 경험, 고민을 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무조건 안돼! 하지 마세요.. 그 아이가 이제동이 될 수도...)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