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 팬픽 단편소설. 대악마 카제로스(2)
전할 수 없는 마음.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카제로스님.”
“아니, 아브렐슈드. 할 수 있어. 일단 지금은 네가 너무 걱정하니까 물러나지만, 언젠가는 해내고 말거야.”
아브렐슈드의 말에 카제로스는 시원찮게 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를 지나쳐 자신의 거처를 향하는 그를 바라보는 아브렐슈드의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녀의 걱정을 괜찮다고 일갈하며 지나쳤지만,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카제로스님..”
“괜찮다니까”
촤악ㅡ!
아브렐슈드는 카제로스를 쫒아가 그의 손을 잡아챘다. 그대로 그의 소매를 걷어내자
“뭐가 괜찮다는 겁니까”
자주색 빛이 세어 나오는 균열들이 드러났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이미 망가지고 있었다.
“신경 쓸 거 없어. 이 정도는 휴식을 취하면 금방 사라지니까.”
“이게 겨우 휴식을 취하면 사라지는 수준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대체 누가 그걸 믿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계속되는 마력고갈로 인한 균열에 대해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모든 힘을 붉은 달에 쏟아붓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탈진한다는 개념이 아닌, 말 그대로 몸의 모든 힘이 바닥날 때 까지. 몸의 힘을 전부 써버리는 짓을 몇 번이고 계속했다가는, 몸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점점 망가져 몸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붉은 달에 힘을 밀어 넣고 있었다.
“제가....카제로스님에게 포기하라 고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습니까?”
“..........”
“이 페트라니아를 평정할 때도 전 카제로스님을 믿었습니다.”
이 넓은 페트라니아를 전부 평정하겠다니,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를 믿었다.
“신 이그하람에게 맞서 싸운다 하셨을 때도, 전 포기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신과 맞서 싸우겠다니,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도망치자고, 죽을 거라고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믿었다.
“이 세계에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카제로스님이라면, 그 어떤 적이라 해도 승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그 믿음이, 카제로스님의 그 의지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지 않습니까. 그저 하염없이 밑 빠진 독에 힘을 쏟아 부으며 망가져가는 카제로스님을 더 이상 지켜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카제로스님 제발....”
그 의지가 그를 망쳐가는 것을 아브렐슈드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제발...포기해주십쇼. 당신을 위해서......그리고 저를 위해서.."
“......미안.”
짧은 사과와 함께 그는 아브렐슈드의 곁을 지나쳤다. 결국, 아브렐슈드의 간곡한 부탁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발.....”
역시, 그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이 페트라니아를 위해서, 조금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그저 이 세계를 위해서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 면이 그를 따르게 했다. 진정으로 이 페트라니아를 위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점점 망가져가는 저 뒷모습마저 아브렐슈드는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제발 멈춰주기를....제발...
“제발 포기하라고 카제로스!!!!!!!!!!!!!!!!!!!!!!!!!!!!!!!!!!!!!!!!!!!!!”
결국 참지 못한 아브렐슈드가 몽환의 두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콰아앙ㅡㅡㅡ!!!!!!!!!!!!!!!
심연의 바다가 갈라지며 파도가 솟구쳤다. 카제로스는 하늘로 날아올라 아브렐슈드의 공격을 피했지만, 그녀 또한 날아오르며 자신의 힘을 손끝에 집중시켰다.
키이잉!!!!!
집속된 마력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페트라니아의 일인자는 그는 이번에도 가볍게 공격을 피해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손끝을 움직여 카제로스를 공격했다.
콰과광ㅡ!!!!
움직이는 손끝을 따라 집속된 마력이 뻗어나가며 산을 갈라버렸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산이 무너져내리는 걸 본 카제로스는 당황하며 아브렐슈드의 팔을 붙잡았다.
“뭐하는 거야 아브렐슈드!!!”
“닥쳐!!”
하지만 아브렐슈드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팔을 붙잡은 카제로스를 양 어깨에서 뻗어나온 몽환의 팔로 내리쳤다. 이번에는 공격을 피하지 못한 카제로스가 그대로 섬 한가운데에 쳐 박혔다. 먼지구름이 이는 땅을 양해 쇄도하며 아브렐슈드는 다시 한번 몽환의 팔로 내리쳤지만
화아악ㅡ!
먼지구름을 뚫고 나온 심연의 불꽃이 몽환의 팔을 양단했다. 모든 것을 태우는 심연의 불꽃. 만약 스치면 그녀 또한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아브렐슈드는 멈추지 않았다. 땅에 쳐 박힌 채 심연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검을 들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자, 카제로스는 결국 심연의 불꽃을 거두어들였고 아브렐슈드는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왜 계속 하는거야!!”
“아브렐슈드....”
“내가 당신이 하는 거 헛짓거리를 몇 번이나 본 줄 알아? 저 실패작을 되살리겠다고 몸이 망가져가는 걸 나보고 지켜만 보라는 거야?”
몸에 균열이 퍼지고 있었다. 망가져 가고 있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부탁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붉은 달을 되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랬다가 당신이 죽으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 것 같아? 다시 암흑과 혼돈이 가득했던 그 시절로, 절망만이 가득했던 그 페트라니아로 되돌아가길 원하는 거야?”
지금의 페트라니아는, 카제로스가 있어 존재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군단장들 또한 카제로스의 힘 아래 굴복했을 뿐, 진정으로 카제로스를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죽게 된다면, 빈 권좌의 주인이 되고자 군단을 이끌고 전쟁을 벌일 것은 눈에 봐도 뻔했다.
“이제 포기할 때도 됬잖아! 저 붉은 달로서 당신의 힘은 더 강해졌어.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이 세계의 일인자로서 그만 편해질 때도 됬잖아! 근데 왜 당신은 대체 왜!! 혹시 저 붉은 달로서 더 강해진 힘을 포기 못 하는거야? 대체 왜 그러는건데!!”
붉은 달의 아래, 심연의 불꽃은 더욱 강해졌다. 더 강해진 힘을 놓지 못해서 카제로스는 계속해서 붉은 달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알잖아 아브렐슈드. 내가 붉은 달에게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아니었다. 그는 붉은 달이 없어도, 이미 페트라니아의 일인자였다. 신 이그하람마저 꺽은 그의 심연의 불꽃에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으며, 군단의 2인자인 카멘마저 그의 힘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붉은 달을 되살리기 위한 것은
“아직 이 페트라니아는 혼돈의 세계야. 내가 창조한 악마들도 결국엔 혼돈의 세계에 속한 존재, 혼돈에 깊게 물들어있어. 지금 내가 만들어놓은 질서에 의해 어느정도 통제되고있지만 그뿐, 네 말대로 내가 죽어버리면 그 질서는 붕괴되겠지. 알고 있잖아. 내가 원하는 건 이런 만들어진 일시적인 질서가 아닌, 이 페트라니아가 진정한 질서의 세계로 변하는거야.”
빛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혼돈의 세계인 페트라니아를 진정한 질서의 세계로 만들어줄 빛이. 악마들을 혼돈을 틀어막기 위한 통제가 아닌, 정돈된 질서 안에서의 자유 속에서 살게 하려면 그들을 인도해줄 빛이 필요했다.
“그렇다면......빼앗으면 되잖아.”
카제로스의 말에 아브렐슈드가 나지막히 말했다.
“저 너머의 세계....아크라시아의 빛, 아크를 빼앗으면 되잖아. 그러면 당신이 고통받을 일도 없는 거 아니야..?”
아브렐슈드의 말에 카제로스는 조용히 아브렐슈드를 바라봤다. 사실, 간단한 일이었다. 붉은 달은 애초부터 아크라시아의 태양, 꺼지지 않는 영원한 빛 아크를 모방하고자 만든 것이었다. 붉은 달을 영원히 빛나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아크라시아의 빛을 빼앗으면 그만이었다. 마지막 혼돈의 존재가 예언한대로, 붉은 달이 꺼질 때 열리는 차원의 틈으로 아크라시아를 침공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크를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건 신조차 만들지 못한, 태초부터 존재해온 빛이야. 그걸 한낮 악마인 당신이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니까 그런 헛짓거리하지 말고, 아크라시아의 아크를 뺏어오면 되는 거잖아.”
“.........”
“당신이 하기 싫어한다는 건 잘 알아. 만약 그럴 맘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붉은 달이라는 걸 만들지도 않았겠지.”
아브렐슈드의 말대로, 카제로스는 아크라시아의 침공하는 것만큼은 거부했다. 질서가 확립된 이후 모든 군단장이, 태초부터 존재해온 자들마저 제안했음에도 그는 아크라시아를 침공해 아크를 빼앗아오는 걸 거부하고 붉은 달을 통해 아크를 모방하는 것을 선택했다.
“.....혼돈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혼돈을 추구하며 파괴와 살육하는 자들이었어. 그 어떠한 질서에도 따르지 않는 그들은 내가 구축해놓은 질서를 무너트리고자 끊임없이 달려들었지. 혼돈의 신인 이그하람 역시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아크라시아의 생명들은 달라. 그들은 우리와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생명이니까. 우리의 질서를 위해서 그들의 질서를 무너트릴 순 없어.
혼돈의 존재를 몰살시키고 이그하람을 죽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크라시아의 생명은 다르다. 이 페트라니아가, 이 혼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 아는 카제로스는 아크라시아를 그 지옥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다. 아크라시아의 아크를 빼앗는다면, 아크라시아는 빛을 잃고 이 페트라니아처럼 변할테니까.
“난.....그들이 미워.”
아브렐슈드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그녀의 총명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 긴 시간을 고통 받을 동안, 그 녀석들은 행복했겠지? 우리가 암흑과 혼돈 속에서 절규하고 있을 때, 그들은 빛과 질서 속에서 생명을 노래했겠지? 우리가 고통받고 있음에도 차원의 틈을 틀어막고 우리를 버려둔 신 루페온도, 그 신 루페온 아래에서 빛과 질서를 누렸을 아크라시아의 생명들도 다 증오해.”
“아브렐슈드. 그건 아크라시아의 잘못이 아닌 걸 알잖아.”
“알아! 알아도...어쩔 수 없어. 난.....아니, 페트라니아의 모든 이들이 당신처럼 착하지는 않아. 페트라니아를 넘어 아크라시아의 생명들까지 고려할 정도로 우리는 착하지 않아. 우리는 악마니까. 이 혼돈에서 태어나 어둠으로 물든 악마니까! 싸우고, 뺏고, 죽이는 것이 당연한 이 페트라니아에서 태어난 존재니까! 그건 당신이 이 세계에 질서를 만들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야! 그러니까.....”
굵은 눈방울이 떨어져내리며, 아브렐슈드는 카제로스에게 물었다.
“단 한번만....우리를 위해서, 이 페트라니아를 위해서 악마가 되어주지 않겠어?”
울고 있는 아브렐슈드를, 카제로스는 그저 바라봤다. 페트라니아를 평정하고 신 이그하람과 싸우며, 지금 이 순간에 오기까지, 아브렐슈드가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냉혹하며,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빈틈없는 전략을 세우는 그녀도 가끔 카제로스와 단 둘이 있을 때는 귀여운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이렇게 감정을 쏟아낸 적은, 눈물을 흘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브렐슈드”
“대답해. 당신의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협박. 신 이그하람마저 쓰러트린 카제로스를, 아브렐슈드가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도 카제로스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는 조용히 아브렐슈드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역시 넌 냉정한 모습보다는 지금 이런 모습이 훨씬 더 귀여워”
“뭐...뭣?”
카제로스의 뜬금없는 대답에 아브렐슈드는 당황했다. 개의치 않고 카제로스가 몸을 일으키자 카제로스의 몸을 깔고 앉아있던 아브렐슈드는 마치 카제로스에게 안긴 듯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둘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자, 아브렐슈드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브렐슈드”
“헛소리 하지 말고 내 말에 대답이나 하라고!!”
얼굴이 빨개졌음에도 아브렐슈드는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마다, 단 둘이 있을 때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브렐슈드를 볼 때마다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시련에도 곁에 있어준 그녀를 좋아했다.
“지금 너무 가까운 것 같지 않아?”
“뭐....?”
카제로스가 아브렐슈드를 향해 성큼 다가가며 물었다. 어느새 둘의 거리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카제로스의 눈을 본 아브렐슈드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지만, 떨리는 두 눈을 감으며 조용히 그에게 몸을 맡겼다. 카제로스는 그런 아브렐슈드에게.......그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
장난치듯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뿐, 그 이상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떨면서도, 피하지 않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브렐슈드를 바라보며 카제로스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지만, 비통한 자신의 표정을 애써 감추며 그녀의 입술을 지나쳐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우...우아앗!!”
카제로스가 키득키득 웃으며 묻자 그제서야 아브렐슈드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카제로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포기할 때도 됬지.”
“뭐.....? 진짜로?”
이 혼돈의 세계의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했던 붉은 달을 포기해야 한다니....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브렐슈드의 밝은 미소를 본 카제로스는 애써 씩 웃으며 말했다.
“나도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네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고.”
“내...내가 언제 신경 썼다고 그래!!”
“아니었어?”
“으으으.....”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렐슈드가 몸을 떨었지만, 카제로스가 내민 손을 거부하지 않고 잡으며 그녀도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아크라시아를 침공하는거야?”
“그건 조금만 시간을 줘. 내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붉은 달을 포기하는 것 만으로도 꽤나 힘든 결정이었다고?”
카제로스의 말에, 아브렐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달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연이어 힘든 결단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먼저 가. 난 마력을 회복시키고 난 뒤에 갈 테니까.”
“....기다릴게. 카제로스”
“고마워. 아브렐슈드”
아브렐슈드의 말에 카제로스는 힘없이 웃었다. 그 힘없는 웃음을, 그녀는 붉은 달을 포기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저....그뿐이라 생각했다. 그가 붉은 달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 지, 그때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
아브렐슈드가 떠난 뒤, 카제로스는 한참을 더 앉아서 붉은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바라 볼 뿐이었다.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그의 뒤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제로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는 이 페트라니아의 2인자, 최강의 군단장인 어둠군단장 카멘이었다.
“뭐야. 다 지켜보고 있던 거야? 아브렐슈드랑 낮 부끄러운 짓은 다 했는데”
“..............”
카제로스가 시큰둥하게 답했지만, 카멘은 어떠한 반응도 없이 그저 카제로스의 뒤에 서 있을 뿐이었다. 적막했다. 페트라니아의 일인자인 카제로스지만, 카멘의 앞에서만큼은 그도 몸을 긴장시킬 수 밖에 없었다.
“포기하실 생각이라면, 제게 마지막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긴 적막을 깬 것은 카멘이었다.
“........내게 도전하겠다는 건가?”
콰아앙ㅡㅡㅡ!!!!!
카멘의 말에 카제로스는 살기를 드러내며 그에게 물었다. 방금 전 아브렐슈드와 있던 카제로스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저 등을 돌리고 앉아있을 뿐이었지만, 그가 드러내는 살기는 카멘의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카멘은 마찬가지로 살기를 뿜어내며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당신이 붉은 달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신 것, 아닙니까?”
카멘의 말에 카제로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과묵하고 말이 없어서 주변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설마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제게 마지막으로 심연의 군주와 겨룰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 기회를 주신다면 이 싸움의 승패와는 관계없이, 카제로스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생각해보니 너와는 싸워본 적이 없었지”
카멘의 말에 카제로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강한, 그것도 아주 강한 녀석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녀석과 충돌한다면 이제 막 질서가 생겨나기 시작한 페트라니아에 다시 한 번 혼돈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기에 그를 어둠군단장으로 포섭하려 했고, 그도 순순히 그 자리를 받아들였었다.
“이 심연의 바다라면......상관없나?”
카제로스는 붉은 달을 향해 손을 뻗어, 붉은 달의 에너지를 자신에게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힘이 완전히 돌아오자, 그는 심연의 바다 전체를 심연의 불꽃으로 둘러싸 주변과 차단시켰다.
“이러면 마음껏 싸워도 되겠지. 안 그래?”
카제로스의 말에 카멘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이어 자세를 다 잡았다. 그런 카멘을 보며 카제로스도 심연의 불꽃을 피워 검을 만들어냈다.
“그나저나.....싸움의 승패와는 관계없이라니....꽤나 건방진 녀석이었구나. 카멘”
검을 들어올리며 자세를 잡은 카제로스는 카멘을 향해 말했다.
“신 이그하람을 양단한 심연의 불꽃이 어떤 것인지. 친히 알려주마”
로아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읽다보면, 카제로스가 처음부터 아크라시아를 침공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크라시아의 태양을 모방하고자 붉은 달을 만들었슴에도 실패하자, 결국 아크를 향한 탐욕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죠. 그 아크도 결국은 페트라니아에 빛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였구요. 붉은 달은 카제로스의 심연의 불꽃을 강화시켜주기라도 했지만, 아크는 카제로스의 힘 그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점에 제 부가적인 요소들을 이것저것 붙여서 써보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하구, 다음편이 벌써 완결이니 카제로스가 어떻게 우리 로아 속 세계관의 악마로 변하가는지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