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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좀비와 마녀와 눈물 7

올뺌이a
조회: 635
2025-10-28 00:26:26

 

 

 

!”

 

으악!”

 

 

메리엘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근처에 앉아 있던 하셀은 깜짝 놀라며 마시던 차를 엎질렀다. 뜨거운 차를 뒤집어쓰게 된 하셀은 기겁했다.

 

 

곧바로 일어나려던 메리엘은 몰려오는 두통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누가 망치로 내려친 듯 욱신거렸다.

 

 

으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얼음벽에 손을 문지르던 하셀이 말했다.

 

 

아야야... 일어나셨어요?”

 

, 하셀. 여긴 어디야?”

 

저번에 보셨던 그 이글루 기억나시나요? 거기예요.”

 

 

메리엘은 하셀과 처음 만났을 때 신세를 졌던 그 얼음 구조물의 이름이 이글루라는 것을 떠올렸다.

 

 

다들 무사한 거야?”

 

. 메리엘 씨를 빼면 다들 멀쩡해요.”

 

다행이네... 설산의 마녀는 어떻게 됐어?”

 

 

하셀은 주전자로 다가가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르고는 메리엘에게 내밀었다.

 

 

설산의 마녀는 사라졌어요. 메리엘 씨가 뭔가 한 거죠? 갑자기 마녀가 빛나기 시작하더니 감쪽같이 없어졌어요. 저희는 그대로 도망쳤고요. 그 뒤로는 잘 모르겠어요. 죽은 걸까요?”

 

 

메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마녀는 아마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메리엘의 계획대로 도망치는 데는 성공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렇군요. 쉽게 죽을 것 같진 않았어요. 그보다 깨어나셔서 다행이네요. 갑자기 기절하셔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내가 기절했어? 얼마나?”

 

설산의 마녀가 사라질 때 메리엘 씨도 같이 기절하셨고, 여기까지 옮겨온 다음 거의 바로 일어나신 거니까,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하셀, 혹시 설산의 마녀가 사라진 뒤에 다른 사람들은 못 봤어? 금발 마법사나, 나이 많은 프리스트 같은.”

 

? 그런 사람들은 전혀 못 봤어요.”

 

 

메리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본 건 뭐였던 거지...?”

 

 

꿈이나 헛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광경이었다. 여마법사의 처절한 비명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고민에 빠져 있던 메리엘에게 하셀이 다가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헛것을 볼 정도로 무리하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메리엘 씨 덕분에 저희 형을 구할 수 있었어요.”

 

 

메리엘은 상념을 떨쳐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너희 형 맞았구나? 다행이네, 하셀.”

 

다 메리엘 씨 덕분이에요.”

 

아냐, 다 같이 해낸 거지. 그런데, 어디 가셨어? 안 보이네.”

 

주변 좀 둘러보고 온다고 했어요.”

 

 

하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글루의 입구를 통해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어깨에 묻은 눈을 툭툭 털더니, 메리엘이 일어나 있는 것을 보고는 소리를 왈칵 질렀다.

 

 

! 깨어났구나!”

 

, ... . 안녕하세요?”

 

 

메리엘은 당황하며 말했다.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웃으며 말했다.

 

 

이야, 대단한데? 그 괴물을 단숨에 처리할 줄이야. 멀뚱멀뚱 구경만 할 때는 대체 뭐 하는 인간인가 했는데, 다 계획이 있었구나? 역시 똑똑한 사람들은 달라.”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저 원래 그렇게 될 예정이었던 걸 조금 앞당긴 것뿐이니까요.”

 

! 겸손하기까지! 어쨌든 하셀한테 얘기는 들었어. 우리가 신세를 졌군.”

 

신의 의지를 따르는 몸으로써 당연한 일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내 이름은 엘론이야. 메리엘, 맞지?”

 

 

메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요.”

 

좋아, 메리엘. 이 일은 반드시 사례할게. 너 아니었으면 나는 물론이고, 하셀도 혼자 겁 없이 돌아다니다가 지금쯤 죽었을지도 몰라.”

 

다 생각이 있었다니깐...”

 

시끄러워!”

 

 

남자는 하셀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하셀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메리엘은 사례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사례라니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사양하지 마. 우리를 은혜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 셈이야?”

 

 

메리엘은 극구 사양했지만 엘론은 꼭 보답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메리엘은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고 생각하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것보다, 엘론 씨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하셀이 많이 걱정했어요.”

 

맞아, 묻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엘론은 팔짱을 끼고는 고민하다,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늑대를 뒤쫓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 버렸고, 웨어울프를 만나서 도망치다가 길을 잃어버렸어. 며칠을 헤매다가 겨우 산을 벗어났지. 그렇게 마을로 가던 길에 갑자기 웬 이상한... 뭐랬지? 설산의 마녀? 그거에 습격당했고. 그 뒤로는 너희도 아는 대로야.”

 

 

엘론은 그것으로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하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엘론을 바라보았다.

 

 

“...끝이야?”

 

.”

 

 

하셀은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짚었다.

 

 

늑대를 쫓다 너무 깊이 들어갔다고? 그게 말이 돼? 형이 무슨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평생 안 하던 실수를 갑자기 왜?”

 

실수를 왜 하냐니, 내가 뭐 일부러 그랬냐? 비축된 식량도 적고 하니 조급해서 그런 거지.”

 

늑대는 어디에 뒀는데?”

 

웨어울프한테 쫓길 때 잃어버렸어.”

 

... 아니, 애초에 길을 잃었으면 벨한테 안내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왜 안 불렀어?”

 

가방도 같이 잃어버렸거든. 그 안에 소환의 돌이 있었어. 귀환 주문서랑 다른 것도.”

 

 

하셀은 말문을 잃은 듯 입을 뻐끔거리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지가지 한다. 이런 걸 걱정한 내 잘못이지...”

 

이런 거라니?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엘론과 하셀은 언성을 높이며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메리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삐익...”

 

 

엘론과 함께 들어왔던 벨은 터벅터벅 걸어서 메리엘의 무릎 위에 올라와서는 날개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메리엘은 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벨도 고생했어... 어라?”

 

 

깃털에 파묻혀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벨의 피부는 온통 찰과상으로 가득했다. 얼음 조각으로 인한 상처로 보였다. 설산의 마녀의 온갖 공격을 그야말로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모조리 회피해 보인 벨이었지만 흩날리는 얼음까지는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냥 놔둬도 딱히 문제는 없겠지만 클레릭이란 기본적으로 상처를 두고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메리엘은 벨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으윽...”

 

 

그때 갑자기 엘론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메리엘과 하셀은 깜짝 놀라 엘론을 바라보았다. 하셀이 엘론을 부축해서 앉혔다.

 

 

괜찮아?”

 

괜찮으세요?”

 

 

엘론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그냥 한동안 못 먹고 못 자고 했다 보니 좀 지쳤나 봐.”

 

그럴 만도 하죠.”

 

 

엘론은 척 보기에도 상당히 수척해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몹시 고된 시간을 보냈음이 틀림없었다.

 

 

좀 주무세요. 마을에는 날이 밝으면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그럴까? 그럼, 먼저 실례할게.”

 

 

엘론은 적당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하여간...”

 

 

하셀은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길게 하품하고는 말했다.

 

 

하아암... 저도 좀 졸리네요. 메리엘 씨는 안 피곤하세요?”

 

기절했다 깨서 그런가, 잠이 안 오네. 먼저 자.”

 

안녕히 주무세요...”

 

 

잠시 후, 여기저기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메리엘은 벨을 조심스럽게 들어 옆으로 옮겨놓고, 빈자리에 누웠다.

 

 

눈은 감지 않았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메리엘은 잠을 자는 대신 자신이 본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

 

 

 

날이 밝자, 일행은 엘나스로 돌아갔다. 마을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메리엘은 지난날 자신이 고작 이 짧은 거리를 이동하다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괴감에 빠졌다.

 

 

엘나스에 도착한 뒤에는 한동안 갈라지기로 했다. 메리엘은 장로의 관저에 갈 생각이었고, 그동안 엘론과 하셀은 걱정하고 있을 아버지를 뵙고, 사냥꾼들에게 갈 예정이라 말했다.

 

 

사냥꾼들에게는 왜?”

 

진짜 설산의 마녀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위험한 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말해둬야죠. 그 다음에는 알케스터 님한테 갈 거예요. 알케스터 님이라면 설산의 마녀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계실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알케스터 님이 엘나스에 계셨지? 나도 꼭 나중에 찾아봬야겠다. 혹시 싸인해 달라고 하면 받아주시려나?”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싸인 정도는 해주시지 않을까요?”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관저가 눈에 들어왔다. 하셀과 엘론은 메리엘을 관저에 데려다준 뒤 집으로 향했다.

 

 

그럼, 메리엘 씨. 저녁에 여관으로 찾아갈게요.”

 

그래. 나중에 봐.”

 

 

메리엘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관저 내부로 들어갔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메리엘은 내심 복잡한 기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검은 부적을 얻기 전까지 장로의 관저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전직 시험은 도전 횟수에 제한이 없기에, 성공은 몰라도 실패를 보고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리엘은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난로 근처에 서 있던 타일러스가 메리엘을 맞이했다.

 

 

자네로군. 검은 부적은 가져왔나?”

 

 

메리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타일러스 님. 가져오지 못했어요.”

 

그런가. 아직은 때가 아니었나 보군. 낙담하지는 말게. 기회는 얼마든지 있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다 보면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걸세.”

 

 

타일러스는 담담한 위로를 전했다. 메리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

 

? 왜 그러나?”

 

사실, 시험에 관해서 궁금한 것이 있어요.”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어쩌면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망설여졌다. 메리엘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말해보게.”

 

시험장에서 제가 봤던 건, 하인즈 님의 분신이었어요.”

 

그랬겠지. 자네는 마법사이니.”

 

아마 그 분신을 쓰러트리면 검은 부적을 얻을 수 있는 거였겠죠?”

 

 

타일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메리엘은 설원의 성지에서 시험의 실체를 확인한 뒤 계속 품어왔던 의문을 꺼냈다.

 

 

그것 때문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저는 누군가를 해치는 것보단 살리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신성 마법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존경하는 분의 모습을 한 분신을 힘으로 쓰러트리는 것이 프리스트가 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가요?”

 

 

만약 치료하고 보호하는 능력, 혹은 신성 마법사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시험받았다면 이런 의문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런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메리엘이 겪은 전직 시험에 따르면 클레릭과 프리스트의 차이는 힘, 그것도 타인을 해치는 능력에 있다는 말이 된다. 메리엘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혹시... 위자드가 칠 시험을 제가 잘못 받게 된 것은 아닌가요?”

 

 

침묵이 이어졌다. 타일러스는 속내를 읽기 힘든 눈동자로 눈앞의 젊은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메리엘은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짙은 압박감 속에서 메리엘은 타일러스의 답을 기다렸다.

 

 

타일러스가 말했다.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군. 따라오게나.”

 

 

타일러스는 뒤돌아서 계단을 올랐다. 메리엘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뒤를 따랐다.

 

 

위층에 올라가자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타일러스는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앉게.”

 

 

메리엘은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엉거주춤 앉았다. 타일러스는 맞은편에 앉고선 말했다.

 

 

어디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군. 시험에는 문제가 없었네.”

 

?”

 

 

타일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이군. 하지만 사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나? ... 죽이기보단 살리고 싶다고 했지. 그렇다면 전투를 그다지 선호하진 않겠군.”

 

. 서포터 역할은 괜찮지만, 직접 공격하는 건 좀... 그래서 공격 마법도 따로 배우지 않았어요.”

 

공격 마법을 배우지 않았다?”

 

 

타일러스는 순수한 의문을 담아 물었다.

 

 

몬스터를 사냥한 적이 없다는 건가? 그럼 성장하기 힘들 텐데? 자네는 그리 약해 보이진 않네만.”

 

, 예외가 있거든요. 언데드 몬스터는 힐에 피해를 받아요. 그래서 언데드 몬스터는 많이 쓰러트렸어요.”

 

그러고 보니 힐에 그런 효과가 있었지. 헌데 언데드 몬스터는 죽여도 괜찮은 건가?”

 

언데드 몬스터는 애초에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죽이는 것보다는, 세상의 섭리대로 안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 그래. 일리 있군. 자네, 어려운 길을 걷고 있었군. 폭력을 싫어하는 자네의 마음은 존중받아 마땅하네. 고결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타일러스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하는 게 있네.”

 

 

달라진 분위기에 메리엘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타일러스의 말에 집중했다.

 

 

그것은 평화로운 세상에서만 가능하네. 몬스터, 몬스터나 다름없는 악한 인간과 같이, 사람을 해치는 존재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생명을 지키는 것은 힘 없이는 불가능하네.”

 

그 말씀은...”

 

설령 자네가 싫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네. 살리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네.”

 

 

메리엘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타일러스는 메리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프리스트에게 전투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네. 자네에게 어떤 사정이나 신념이 있던,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프리스트는 될 수 없네.”

 

 

메리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타일러스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허허 웃으며 차가워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농담조로 말했다.

 

 

이런, 검사가 프리스트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교를 해버렸군. 어울리지 않게 말이야. 로베이라가 말해주는 편이 더 좋았겠지만, 자리에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자네가 이해해 주게.”

 

, 아니에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게나.”

 

 

타일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는 여기까지라는 의미였다. 메리엘도 그것을 눈치채고는 따라 일어나서 타일러스에게 인사한 뒤 관저 밖으로 나왔다.

 

 

비척비척 걸어 나온 메리엘의 뒤로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 불었다. 메리엘의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날렸다.

 

 

메리엘은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충격에 영혼이 흘러내려 버린 것 같았다.

 

 

타일러스의 말이 메리엘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타일러스의 말은 잘못된 것이 없었다. 메리엘은 그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메리엘은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어린아이가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 그 몬스터는 언데드가 아니고, 마나 이터 따위로는 어설프게 대처할 수 없는 몬스터이다.

 

 

그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이를 치료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몬스터를 없애지 않으면, 아이는 물론이고 자신도 위험하다.

 

 

지금 자신의 태도는, 구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아이를 외면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런 주제에 살리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건 헛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면... 난 그동안 어리광을 부린 걸지도 몰라.’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을 골라서 하면서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온 걸지도 몰랐다.

 

 

이제야 깨달았다. 각오가 되지 않았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자격은 없다.

 

 

메리엘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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