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버워치 오픈 유저였다.
그때 당시 플레이 스테이션으로도 발매되어 플레이 스테이션으로도 하다가.
혹시 PC로 하면 더 편할까 싶어. 호구가 된 마음으로 PC판으로 구입한.
더블 호구였다.
그리고 시작한 오버워치.
역시나 내 마음을 끄는건 겐지였다.
시마다 가문의 이야기는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중요한 스토리고.
라인하르트와 더불어 오버워치에 대한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시네마틱 스토리다.
그리고 그때 한조로 우연히 보겸의 방송에 출연한 적 있는데.
그때 당시를 떠올리면 퍽이나 재미있었다.
겐지로 20시간 정도 빠대를 하고 있자.
경쟁전이라는게 나왔는데.
솔직히 두려웠다.
그때 당시를 떠올리면 난 겁쟁이나 다름 없었다.
맥크리를 조금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실력이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통할지 두려워.
공격을 배치 봤지만. 결과적으로 16년도의 시즌 1 첫 배치의 결과는 골드였다.
남들은 다이아 간다는둥 마스터를 간다는둥 온힘을 다할때.
나는 빠대에 집중했다. 어쩌면 자신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맥크리가 조금 쌓여갈 무렵.
시즌2-3이 되었고.
그때 당시는 탱딜힐 통합 랭크였기에 골드로 만족하고 있는데.
이런! 시즌3때 브론즈로 떨어져버린것이다.
브론즈는 안되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즌이 지난 몇시즌 후에도 브론즈를 나올 수는 없었다.
그럴바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시즌3에는 아나만 엄청 연습했던것 같다.(웃음)
그리고 그 문제의 브리.
브리는 솔직히 내 매커니즘에 딱 맞았다. 그리고 들리는 소식에 지금의 일리아리(지금 이라기하기엔 너무나 지나버린) 일리아리로 그마를 가듯. 브리로 그마를 가고 마스터를 갔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이때 브리로 도전해 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시간이 흘러흘러 나는 맥크리의 빠대 시간이 200시간이 넘게 되었고.
그러면서 33메타 등등 많은 메타를 지나오게 되었다.
경쟁전보다는 빠대에 익숙하다보니 빠대 진지충처럼 빠대의 한판 한판의 승리에 목메게 되었다.
경쟁전은 배치만 보고 거의 돌리지 않는 수준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맥크리가 300시간이 가까이 갈때쯤 깨달았다.
그때가 첫 아이디가 5성 브론즈 별 정도가 되었을 때인데.
'딜러로는 캐리를 할 수 있어도, 질 경기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버워치1 에서는.
레벨 또한 정치의 대상이었기에.
5성 별은 게임이 끝나면 쉽게 정치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자괴감이 들어 아이디를 삭제하고.
지금의 아이디를 내 주 아이디로 삼았다.
퍽이나 아쉬웠다. 그 아이디는 거의 올컬렉터였는데 말이다.
시간이 흘러. 다가온 오버워치2 시즌1.
나는 이때만큼은 '지원가'로 데뷔하기로 했다.
열심히 했다. 하지만 모두가 브론즈로 시작하는 시대에서.
원했던 플레에 도달 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의 이미 브리기테의 숙련도가 80-100시간에 이르렀지만.
골드가 한계였다.
분하지는 않았다.
좀 더. 좀 더 기다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점점 등급은 오르기 시작했고. 중간에 쉬는 시기도 있었지만.
1-2년 전부터는 꾸준히 하는게 미덕이라고 생각해. 많이 화나는 시기도 있었지만.
놓치 않고 계속했다.
발로란트를 하는게 좋지 않냐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들려온 리뉴얼 소식.
내 노력에 보상을 받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처음부터 이번 시즌의 경쟁전을 돌리지 않았다.
분명 개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경쟁전을 돌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그동안 빠대에서 마그마들과 만난 그 MMR 속에서 수련한 것이 통한 것이다!
10연승이 끝나고, 가볍게 1패를 한 후 종료했다.
그리고 찾아온 오늘.
난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분명 트롤인 판들도 존재했지만. 감이 좋았다.
도착하고 말았다.
10년전 꿈꾸웠던. 내 꿈같은 티어에.
남들에게 항상 자랑하고 싶었다.
어떤 게임을 하든. '다이아'라는 티어는 언제나 상징적인 티어니까.
특히 오버워치라는 게임은 더욱 더.
이제 오늘이 그 꿈을 이룬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