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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괴담] 그녀의 발렌타인데이

아이콘 드림카카오72
댓글: 2 개
조회: 578
2012-02-14 07:52:55

 

 

 

 

나 사실 초코렛 싫어합니다.

 

오늘만

 

 

=============================================================================

 

봄은 아직 멀었는지 거리는 쌀쌀한 공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즐거운 듯 함박웃음을 지은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나 젊은 층에서는 더욱 그랬다.

윤미와 혜경은 그런 늦겨울의 밤거리를 나란히 걸으며 가판대에 진열되
어 있는 초코렛 바구니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발렌타
인 데이'라는 국적이 묘한 명절아닌 명절이 다가온 것이었다.

더구나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예쁘게 포장된 형형색색의 초코렛과 그것
을 담을 바구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오늘까지는 만들어야 하니..."

혜경이가 진열된 바구니들을 기웃거리며 지나가는 말로 얘기하자 윤미
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뭘... 만들어?"
"얘는... 모르는 것처럼... 내일이 그날이잖아? '발렌타인 데이'..."
"'발렌타인 데이'라... 그렇군... 그런 날이었군."

혜경은 여전히 시무룩한 윤미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지금... 초코렛을 줄 사람이 없는 너한테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만..."
"괜찮아.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어서 골라봐."

윤미는 가판대에 진열되어있는 초코렛이며 바구니들 쪽으로 혜경의 등
을 살며시 떠밀었다. 혜경은 머쓱한 표정으로 윤미를 쳐다보다가 이내
맑은 미소를 지으며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거 너무 비싸요. 좀 깎아 주세요."
"안돼요. 이런 장사는 한때라...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인데..."
"에이... 그래도요..."

혜경은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초코렛과 그것을 담을 바구니를 손에
쥐고는 흡족한 듯 가볍게 발걸음 옮겼다.

"윤미야... 저, 미안한 부탁인데..."
"뭔데? 흠... 알만하다. 초코렛 바구니... 만들어 달라고?"
"이야,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사실... 나는 이런 걸 제대로 못
하잖니? 그러니 집에 가서..."

윤미는 몇걸음을 말없이 걷다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차피... 자취방에 가면 '낑낑'대며 초코렛 바구니를 만드는 너를
그냥 지켜만 보지는 못할 걸... 알았어. 내가 만들어 줄께."
"헤헤헤. 고마워."

윤미와 혜경이는 고등학교 단짝 친구였다. 둘다 집이 시골이라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 돈도 아낄겸 자취방을 같이 얻어 함께 생활
하고 있는 터였다.

밤이 꽤나 깊어 둘은 자취방에 들어왔다. 혜경은 방에 들어서자 마자
저녁에 산 재료들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초코렛 바구니를 만들기 시작했
다.

서투른 혜경의 손놀림을 보다 못한 윤미가 혀를 '끌끌' 차며 자신의 앞으
로 재료들을 당겨 놓고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침묵만이 흐르는 가운데
가위로 포장지를 자르는 소리와 '부스럭' 거리는 포장지 소리가 방안에
메아리 쳤다.

"재작년만 해도 '발렌타인 데이'에 초코렛 바구니를 너와 내꺼... 두개씩
만들고는 했는데..."

윤미가 조그마한 소리로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혜경이가 조심스럽게 말
을 건냈다.

"아직도... 형민씨가 생각나지? 하긴... 2년밖에 안 지났으니... 더구나..
사고로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으니..."
"......"

이년전이었다. 그 당시 윤미와 혜경이는 소개팅으로 만난 형민과 상규를
각각 사랑하고 있었다. 형민과 상규 또한 고등학교 친구였기에 넷은 항
상 붙어 다니며 데이트를 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윤미는 형민의 승용차를 타고 가까운 교외로 놀러 가
던 도중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커다란 트럭이 형민과 윤미가 탄
승용차를 덮친 것이었는데 형민은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고 윤미는 머
리에 큰 상처를 입어 몇번에 걸친 뇌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서로 사귄지 반년도 안되어 일어난 끔찍한 사고였다.

"미안해... 괜히 그 얘기를 꺼내서..."
"아냐... 이제는 다 잊어버렸어. 형민씨도... 또 아련했던 추억들도..."

윤미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혜경을 향해 싱긋이 웃어 보였다. 혜경
도 약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동안 둘 사이에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윤미의 손은 부지런
히 초코렛 바구니를 만들고 있었고 물끄러미 이를 지켜보던 혜경의 머
리가 까딱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혜경아, 졸리니? 하긴... 밤도 많이 늦었는데... 이제 그만 자라. 나는
이거 마자 만들고 잘테니..."

혜경이는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중얼거렸다.

"그... 래도 될까? 사실... 내가 몸이 좀 피곤해서..."
"훗... 변명은 안 해도 되. 잠꾸러기인 네가 이 시간까지 버틴게 신기할
지경이다. 괜찮으니 자."

윤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혜경이가 비틀거리며 침대에 올라가더니
이내 잠에 곯아 떨어졌다. 윤미는 그윽한 미소로 혜경을 바라보다가 이
불을 덮어 주고는 기지개를 크게 폈다.

"아~함. 나도 졸린 걸? 하지만... 방해꾼도 없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초코렛 바구니를 만들어 볼까?"

****************

"자, 어서 들어 가자니까?"
"싫어. 너희 둘이 데이트 하는데 내가 왜 가니?"
"그러면 여기까지 왜 왔어?"
"그거야... 네가 혼자 여기오기 심심하다니까... 그냥 차타는 동안 말벗
이나 해주려고 따라온 거지. 어쨌든, 약속장소에 다 왔으니 난 이만 갈께.
상규씨랑 데이트 잘하고..."

번화가에 위치한 커피숍 앞에서 윤미와 혜경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참나... 괜찮아. 상규씨도 네 얼굴 안 본지 오래 됐다고 같이 나오라고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맛있는 거 사달래서 얻어먹자."

혜경은 막무가내로 윤미의 팔을 부여 잡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윤미는 싫은 표정이 역력했지만 끝내 거절을 못하고 따라 들어갔다.

"어, 혜경아, 여기야. 윤미씨도 잘 지내셨죠?"

상규는 환한 표정으로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셋은 커피숍 창가에 자리
를 잡고 앉아 차를 주문하고는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 상규씨. 이거..."
"뭔데?"
"뭐기는? 뻔히 알면서...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 잖아?"
"아하... 그 날이 오늘이야?"

상규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혜경이가 건네주는 초코렛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있잖아... 거기 들어있는 초코렛을 하루에 한개씩 먹으면 '화이트 데이'
가 될거야. 그러면 그날... 알지? 나한테... 사탕을... 한아름..."
"훗... 알았어. 매일 하나씩 먹으며 네 생각을 할께. 그리고 '화이트
데이' 날은 네가 내년 '발렌타이 데이'까지 먹을 만큼의 사탕을 그득히
담아서..."

둘의 다정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말 없이 곁에 앉아 있던 윤미의
입에서 자그맣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상규와 혜경은 윤미의 안색을
살펴보다가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우리가 네 생각을 안 하고 너무... "
"윤미씨, 죄송해요. 저희들이 윤미씨 심정은 생각도 안하고..."

윤미는 붉어진 눈을 들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예요. 둘의 모습... 보기 좋은 데요? 괜히 저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 진 것 같아서..."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 안에 윤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

"윤미씨... 아직도 연락 없어?"
"응, '발렌타인 데이' 날 이후에 온다간다 말 한마디도 없이 사라졌으
니... 벌써 한달이 다 되가는 셈인데..."
"그래? 후~ 어떻게 된거지? 걱정되네..."
"윤미가... 차 사고 이후로 우울증에 걸려 한동안 정신치료도 받았었는
데... 이번에 혹시 그 병이 도져서..."

조용한 밤거리를 걸으며 상규와 혜경이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쨌든... 경찰에 신고도 했다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흠...
그나저나 요새는 이상하게 몸이 피곤하단 말이야."
"참, 병원에 가봤어? 몸이 안 좋다며?"

혜경이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상규는 '씨익' 웃어 보이며 가슴을
'쭉' 내밀었다.

"응. 내일 정밀검사한 진찰 결과가 나온다니... 그걸 보면 알겠지. 훗,
어쨌든 걱정마라. 너 죽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죽을테니.
하. 하. 하."
"피이~. 죽는다는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냐. 어쨌든... 어서 집에 가서
쉬고... 내일 '화이트 데이'니까... 약속 시간 늦지 말고 나와야 해.
갖고 나올 거는 알지? 사탕... 한아름..."
"알았어. 걱정 말라고. 후후후."

혜경은 상규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3월도 중순
에 접어 들어 완연하 봄이 되었지만 윤미에 대한 걱정때문인지 마음이
그리 밝지만은 안았다.

마침내 자취방에 돌아온 혜경은 습관처럼 우체통을 확인했다. 혹시라도
윤미에게서 연락이 왔을까하는 마음에서...

"어? 이건..."

매일같이 기다리던 윤미의 편지가 막상 있는 것을 보니 왠지 가슴이 뛰
기 시작했다. 혜경은 윤미의 편지를 조심스럽게 들고 방으로 들어와 불
을 밝히고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잠시후 몇줄을 읽던 혜경은 편지를 방바닥에 떨어 뜨리며 무릎을 털썩
꿇고는 신음소리를 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세... 상에... 이런... 이럴수가..."


[혜경이에게...

너에게 아무말도 없이 집을 나가서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드는구나.
사실 나는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단다. 내가 지니고 있던 생각을...
몇번이나 네게 말을 할까 망설였는데... 끝내 하지도 못하고... 결국 편지
로 쓰게 되었구나.

이년전... 형민씨와 차사고가 난 후 내게는 커다란 변화가 오기 시작했
어. 네가 눈치를 챘을 지는 모르지만... 훗, 그래... 솔직히 다 말할께...

나는 머리를 다치고 몇번의 뇌수술을 한 후 이상하게도 이성보다는 동
성을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더구나. 물론 나는 형민씨를 무척이나 사랑했
던 것도 사실이야.

그런데... 지난 이년간... 형민씨죽음이나... 또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뒷전이 되고... 바로... 너... 혜경이, 너한테 사랑의 감정이
싹트더구나. 윤리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걸 알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을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어서... 집을 나가게 된
거야. 사랑스런 네게...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몰라서 말이야.

긴 말은 하지 않을께. 다만 이성으로 사랑했던 형민씨도 이 세상에서 떠
나고, 동성으로 사랑했던 너는 상규씨가 있으니... 난 어찌보면... 불행
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아마 이 글을 보게 될 즈음에는... 이 세상에 내가 없을 지도 몰라. 그렇
지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나 이윤미는... 너... 한혜경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거야... 사랑해... 언제까지나...

[P. S.] 한가지... 용서를 빌게 있다. 한달전 쯤 네가 '발렌타인 데이'
초코렛 바구니를 만들다가 잠이 들었을 때... 나는 그간 생각해 오던
일을 실천했어....

그건... 상규씨가 먹을 초콜렛 하나, 하나마다... 천천히 죽어가는 독약
을 주사기로 조금씩 나눠 넣은 거야. 상규씨가 너를 사랑하는 걸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어 저지른 일인데...

그때는 상규씨만 없어지면 네가 내게로 오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지
만...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되기도 하는 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사랑해야 하는 걸 깨달았는데 말이야...

혜경이를 사랑하고 싶었던... 윤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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