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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신데렐라를 통해 살펴보는 중세

아이콘 럼자기
댓글: 3 개
조회: 3738
추천: 3
2022-04-03 22:15:04



신데렐라.
그다지 소설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이름과 내용은 다들 알고 있다는 전설적인 전래동화입니다.

흔히 알려진 내용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줄거리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판본이 존재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원전이 된 것은 이 가운데 페로가 쓴 것이고
그 외에 그림형제가 쓴 판본도 유명합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신데렐라와 유사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345명이나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분포도 다양하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유럽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이라크, 러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디언, 필리핀,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 매우 광범위하게 퍼진 유형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서기 860년경)의 '섭한' 이야기에서는 잔칫집에 갔다가 황금신발을 잃어버리는 전개가 나오며,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인 콩쥐팥쥐도 전형적인 신데렐라 형태의 이야기입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너무나도 유명한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계모'란 곧 후처, 즉 뒤이어 받아들인 처를 의미합니다.
바꿔 말하면, 신데렐라의 생모가 죽은 뒤 다시 맞이한 부인이란 얘기가 됩니다.

여기서 모순이 생깁니다.
계모는 분명히 신데렐라의 생모보다 나중에 결혼했을 텐데,
어째서 '언니'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언니가 아니라 '동생'이 되어야 맞는 것 아닐까요?



계모인데, 전처 소생인 신데렐라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가 있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능성.
이른바 '언니'들은 계모가 재혼하면서 데리고 온 자식들일 경우입니다.

두 번째 가능성.
사실 이 '언니'들은 부친과 계모가 혼전 관계를 통해 낳은 자식들일 수도 있겠네요.

얼핏 매우 큰 차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이든 큰 차이가 없습니다.



흔히 알려진 중세의 상속법, 
살리카 법은 여성의 상속 자체를 금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관습법일 뿐이고,
실제로 중세 이후 이것을 엄격하게 인정하는 나라는 
살리카법 떡밥으로 영국과 백년전쟁을 치른 프랑스 정도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는 관습법이라고는 해도, 
심심하면 살리카법을 대의명분으로 삼아서 전쟁을 해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신데렐라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귀족 간의 결혼은 가문의 결합입니다.
즉, 그 자체로 존엄한 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니'들이 데려온 자식이든 혼전 관계에 의한 친자식이든 간에
첫 번째 정실의 자식인 신데렐라가 상속의 우선권을 가지게 됩니다.

데려온 자식이라면 당연히 부친과의 혈연 관계가 없으므로 상속에서 제외됩니다.
혼전 관계에 의한 친자식이라면, 
잉태 당시 적법한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역시 상속에서 제외됩니다.

여기서 다시 살리카 법이 등장합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경우 여성의 상속이 받아 들여지곤 하는데요.
직계의 남성이 없을 때, 직계의 여성에게 계승권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대신 직계의 여성이 낳은 자식에게 계승권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각각의 국가 상황에 맞게 신데렐라나 그녀의 자식에게 계승권이 돌아가는 것이 순리입니다.



사실 신데렐라의 가문이 그저 그런, 별 볼 일 없는 가문이라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얘기입니다.
물려줄 건덕지가 있어야 상속이든 뭐든 할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눈 여겨 볼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신데렐라의 가문은, 
무려 왕자의 결혼 상대를 고르는 무도회에 초청장이 보내질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귀천상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문의 격이 맞지 않는 자들 간의 결혼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가문의 격이란, 
단순히 귀족과 평민을 놓고 말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왕족과 비왕족 간의 결혼 또한 귀천상혼으로 여겨집니다.

귀천상혼이 중요한 이유 또한 상속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문의 격이 서로 맞지 않는 이들 간의 결혼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 가운데 격이 높은 쪽의 지위를 계승하지 못합니다.

즉, 이것을 바꿔 말하면
왕자의 결혼 상대는 최소한 왕족의 핏줄을 이은, 
말석이라도 계승권을 가진 자여야만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다만, 이것을 너무 엄격하게 따지게 되면 합스부르크 왕가와 같은 꼴이 나게 되므로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 적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그 유연성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가능한 얘기.
왕실과 혈연으로 연결된 대공이나 공작 가문은 물론이고
실질적으로 한 지역의 통치자라 할 수 있는 후작이나 백작 정도의 가문은 되어야 
최소한 왕실과 혼인을 맺을 수 있을 정도의 격이 됩니다.



다시 신데렐라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신데렐라의 가문은 그저 그런 귀족 나부랭이가 아니라
왕실과 혼인이 가능한 수준의 대귀족입니다.

물론 이야기에 나오는 걸 보면,
제대로 된 하녀 한 명 없어서 신데렐라가 궂은 일을 도맡아 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현재 상황은 어찌 되었든 간에 
신데렐라는 이미 출신 성분부터가 그 정도의 대귀족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판본에는 신데렐라의 신분이 공작의 여식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이런 반론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왕자가, 사실은 프린스의 오역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프린스라고 해서 위의 사진에 나오는 저 프린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공이나 공작이라는 의미로 번역되는 신분을 왕자로 오역한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이것은 오역이 아닙니다.
엄연히 프랑스어로 Fils du Roi(영어:king's son)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형제의 판본에도 왕자라는 작위로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아들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길게 이런 저런 얘기를 썼지만,
사실 신데렐라 이야기는 각 나라마다 조금씩 내용이나 설정에 차이가 있으므로
어느 것이 반드시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는 없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기본은 어디까지나 전래동화이므로
귀천상혼이나 살리카법이니 하는 식의 구체적인 설정을 따지고 들어가는 것 또한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이런 식의 이해도 가능하니 참고만 했으면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인벤러

Lv67 럼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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