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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수양대군의 업적

아이콘 럼자기
댓글: 46 개
조회: 11514
추천: 28
2022-06-12 13:48:26

1. 정치
정치적인 가장 큰 실책은 바로 지나친 공신 우대.
훈구파 탄생의 원인이 되었으며, 집현전 폐지와 숙청으로 관학파 육성의 실마리가 사라짐
공신 권력의 비대는 이후 적장자가 있음에도 성종이 즉위하는데 영향을 주게 됨.
이로 인해 성종은 정통성이 취약해지고 강력한 훈구파로 인해 왕권도 씹창 난 상태로 즉위
또한 막강한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파를 등용하기 시작하면서 당쟁의 서막이 열림
여기에 사림파가 득세하는 과정에서 대간의 권력이 강화되어 
성종 자신은 물론이고 이후의 왕들이 전부 스트레스로 단명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됨
이런 성종 때의 여러 가지 일들이 곪아서 터진게 연산군 시기.
이게 전부 세종이 기껏 키워놓은 관학파를 죄다 쓸어버리고 
자기 측근들 위한답시고 훈구파를 열심히 양성해 놓은 세조의 업적임.

2. 군사
화력빠였던 문종이 기껏 육성해 놓은 총통위를 없애 버림으로서
이후 조선의 화력 발전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쳤으며
인사고과를 활로만 따지게 되니, 창과 칼을 사용한 백병전 체계 또한 붕괴시키게 됨
여기에 부사관의 위치였던 갑사를 의홍위로 몰아넣으면서
장교와 사병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할 체계가 사라짐
사극 보면 전쟁 장면에서 장군이 "돌격하라!" 하면 
그냥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가 싸우는 모습이 나오는데 사실 이건 의외로 고증이 잘된 장면임.
왜냐하면, 조선에는 세조 이후로 허리 역할을 할 계급 자체가 없었기 때문
또한 보법 시행으로 군역의 부담이 가중되어
백골징포니 하는 식의 악습이 일어나는 시발점이 됨.

3. 경제
일단 양반에게 조세를 면제시킨 게 가장 큰 실책.
이후의 왕들이 조금이나마 회복시키긴 했지만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몇몇 지역을 제외하곤 군역은 완전 면제 상태였음
앞서 말했던 보법의 영향으로 
양인이 자발적으로 양반의 노비가 되는 협호 현상도
세조 때부터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함
이게 심각한 이유가 
양인은 조세와 기타 잡역을 담당함으로서 농경 사회인 조선 경제의 중추라 할 수 있는 계층인데
이러한 양인의 감소는 곧바로 조선의 나라 살림을 크게 저해하는 원인이 됨


괜히 조선에 망조가 들기 시작한 원인이라고 불리는 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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