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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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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개
조회: 4062
2022-07-19 18:23:21


흔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면 황희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사실 이 말에는 수많은 신하들의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스크롤 압박에 주의하세요>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 9월 9일 정해 2번째기사 / 대제학 변계량이 사직했으나 윤허치 아니하다
대제학(大提學) 변계량(卞季良)이 병으로 사직(辭職)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1월 4일 신사 7번째기사 / 병조 판서 조말생의 칭병 사직의 상서문
병조 판서 조말생이 병으로 사직하려고 상서(上書)하기를, "신은 재목이 되지 못하는 몸으로 성명(聖明)을 만나, 여러 번 은총을 입어 내직에 뽑혀서 있다가, 10년이 못되어 빠르게 정경(正卿)의 지위에 오르게 되니, 차서를 뛰어넘어 등용하여 주신 은혜는...맹서하여 그 은혜를 갚으려 하나이다. 신은 못내 황송한 마음을 무어라 아뢸 수 없나이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24권, 세종 6년 4월 25일 경오 2번째기사 /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는 전문을 올렸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병조 판서 조말생(趙末生)이 전문(箋文)을 올려서 사직(辭職)하기를, "신이 외람하게 용렬(庸劣)한 자질로 성명(聖明)한 임금을 만나 오랫동안 재사(宰司)에 있었으나, 한 치[寸]의 공효(功效)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풍질(風疾)이 날마다 심하여져서 중임(重任)을...견마(犬馬) 같은 마음이나마 갑절로 더해서 항상 예산(睿算)을 빌겠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24권, 세종 6년 5월 12일 병술 3번째기사 / 의정부 찬성 유관이 사직을 청하는 전문을 올리다
직무를 사퇴하지 않으면 〈남들의〉 꾸지람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력(樗櫟 ) 같은 쓸모없는 재질은 상유(桑楡)에 저문 빛이 다가...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고 비답(批答)하기를 , "물러나기를 청하고 영화를 사양하는 것이 비록 신하의 높은 마음씨이나, 어진...할지니, 사직하는 것은 마땅히 허락하지 아니할 것이다." 경악(經幄) 경연. 유후(留侯) 장양(張良). 라고 하였다.

세종실록 27권, 세종 7년 1월 1일 임신 2번째기사 / 전 참찬 김여지의 졸기
기용되었고, 나가서 충청도 도관찰사(都觀察使)가 되었으며, 병신년에 대사헌(大司憲)에 임명되었으나, 정유년 봄에 어머니의 병환으로 사직하니, 윤허하지 않고 예문관 제학에 임명되고 공조 판서에 승진되어,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형조 판서로 옮겼다. 무술년에 하정사(賀正使)로 북경(北京)에 갔 다가 다음 해에 돌아와 병으로 사직하였다.

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 7월 9일 병자 3번째기사 / 우의정 유관이 사직하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않다
우의정 유관(柳觀)이 사직하는 글을 올렸다. "신이 나이 늙고 기운이 쇠하여 일을 맡기가 난감합니다. 지금 한재를 만났음은 실로 천지 원기를 조화(調和)하는 직임(職任)을 어기었음이니, 업신여김을...오히려 건장하고 총명도 쇠하지 않았으며, 또 분주하면서 노력하는 것도 내가 경에게 바라는 바가 아니며, 더구나 이번 한재는 실상 나의 과덕(寡德)한 소치인데, 어찌 갑자기...

세종실록 30권, 세종 7년 10월 5일 경오 1번째기사 /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다
병조 판서 조말생(趙末生)이 글을 올려 사직하기를, "신은 못난 재질로 거룩한 시대를 만나서, 특별히 부당하온 은총을 입사와 외람되게 정승의 직위에 있었으나, 8년 동안 헛되이 녹만...사랑하심을 바라나이다." 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고, 주서 조자(趙孜)를 그의 집에 보내어 명하기를, "다행히 지금 국가에 일 이 없어 한가하니, 만약 병이 낫지 아니하거든 편하게...

세종실록 30권, 세종 7년 12월 2일 정묘 3번째기사 / 지신사 곽존중이 병으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지신사(知申事) 곽존중(郭存中)이 병으로 사직(辭職)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30권, 세종 7년 12월 10일 을해 3번째기사 / 영의정 이직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영의정 이직(李稷)이 글을 올려 사직(辭職)하기를, "신은 천품의 성질이 노둔(駑鈍)하고, 학술(學術)은 부족하며, 체질(體質)이 잔약하여 풍(風)과 기(氣)에서 오는 병이...한(寒)·서(署)·조(燥)·습(濕)·풍(風)·우(雨). 하니, 임금이 윤허(允許)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경의 자처(自處)함은 그러하나, 하늘의 기운이 불순(不順)한 것은 실로 과인(寡人)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 6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 한재의 책임을 지고 좌의정 황희가 사직을 청하니 윤허하지 않다
좌의정 황희(黃喜)가 사직하여 아뢰기를, "신이 도량이 좁고 지식이 얕아 재상감으로는 적당하지 못하면서 국정을 다스리는 직위에 몸을 담고 있사온대, 기력이 날로 쇠퇴하여 흐릿하게 잊기를 잘하고 아무것도 세우고 밝히는 힘이 없사와, 진실로 조그마한 도움도 되지 못하옵니다. 이번 같은 한재는 예년보다 몇 갑절 되오니 이는 실로 신하된 자가 그 직분에 알맞지 못한...

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 5월 23일 갑술 2번째기사 / 대사헌 최부가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대사헌 최부가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52권, 세종 13년 5월 17일 경진 3번째기사 / 권진이 글을 올려 사직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이조 판서 권진이 글을 올려 사직(辭職)하기를, "신은 나이 75세로 노둔(老鈍)하고 혼매(昏昧)하여, 하는 일마다 실수하고 움직일 때마다 허물만 얻으므로 청의(淸議)에 부끄럽사온데, 더구나 농사철을 당하여 한재가 심하오니 실로 불초한 신이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진 이의 등용을 막습니다. 청컨대 신의 벼슬을 거두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 하였다.

. 세종실록 53권, 세종 13년 8월 7일 기해 2번째기사 / 성산부원군 이직의 졸기
임명되매, 전(箋)을 올려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을유년에 비로소 육조에 판서를 두어 계급을 정 2품으로 하였는데, 직(稷)이 이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정해년에 동북면 도순문...사가 되어 전(箋)을 올려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고, 얼마 안 되어 의정부 우의정에 올랐다. 황제가 북정(北征)하여 개선(凱旋)하자 직이 표(表)를 받들고 가서...

세종실록 53권, 세종 13년 9월 20일 신사 1번째기사 / 안순이 사직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호조 판서 안순(安純)이 병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2월 11일 경자 3번째기사 / 좌군 총제 성엄이 병으로 사직하고자 했으나 허락하지 않다
좌군 총제(左軍摠制) 성엄(成揜)이 병으로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윤허(允許)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 4월 20일 무신 3번째기사 / 황희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허락하지 않다
영의정 황희가 사직(辭職)하여 말하기를, "하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그대로 하는 것은 임금의 큰 법이오나, 할 수 없는 것을...고 하였으나, 윤허(允許)하지 아니하고, 비답(批答)하기를, "어려운 것을 극복(克服)하는 임금은 보필(輔弼)하는 재 상의 어짐에 힘입는 것이니, 도모하여...생각하라. 사직하려고 하는 일은 당연히 윤허되지 않을 것이다." 후설(喉舌) 승지(承旨). 하였다.

 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 6월 22일 기유 1번째기사 / 우의정 권진이 노병으로 사임하고자 하나 윤허하지 않다
우의정 권진이 노병(老病)으로 사직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1월 1일 병진 3번째기사 / 대사헌 신개가 사직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대사헌 신개(申槪)가 병으로 사직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2월 7일 임진 2번째기사 /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영의정 황희(黃喜)가 사직하여 말하기를, "신의 노병[老疾]이 갈마들어 공격하옵고, 귀와 눈은 날로 더 어두워지옵니다. 더군다나, 올겨울에는 날이 따뜻하여 물도 얼지 않사오매, 실로 신이 재능이 없이 인원수만 채우고 있으므로 그러한 것인가 하오니, 신의 직(職)을 파하여 주시기를 비나이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 2월 26일 경술 2번째기사 / 동지중추원사 성엄이 병으로 사직을 원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동지중추원사 성엄(成揜)이 병으로 사직을 원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 3월 4일 정사 1번째기사 / 겸 종학 박사 성균 사성 이심이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박사(兼宗學博士) 성균 사성(成均司成) 이심(李審)이 사직(辭職)하여 말하기를, "신은 기품(氣稟)이 어둡고 어리석은데 약하고 여윔이 더하여, 남이 한 번에 할 것을 나는 백 번을...있으면서 일에 능하지 못한 자는 물러가라는 경 계하는 말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직분에 맞지 아니한 일을 하면서 같이 섞여서 있은 지가 또한 여러...편하게 하옵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세종실록 62권, 세종 15년 11월 17일 병신 1번째기사 / 함길도 관찰사 조말생이 병으로 사직하기를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다
함길도 관찰사 조말생(趙末生)이 병(病)으로써 글을 올려 해면(解免)하기를 빌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63권, 세종 16년 2월 5일 계축 3번째기사 / 평안도 도안무 찰리사 우의정 최윤덕이 관직을 사직하기를 청하자 이를 허락하지 않다
우의정(右議政) 최윤덕(崔閏德)이 사직(辭職)하여 말하기를, "신은 초야의 한 쓸모 없는 사람으로 다행히 밝으신 성대를 만나서, 그릇 주상의 은우(恩遇)를 입어...없겠나이다." 하니, 윤허하지 않고 비 답하기를, "올린 전문(箋文)을 보고 관직을 사양하겠다는 일을 갖춰 알았노라. 장상(將相)의 직임이란...보필해야하지 않겠는가. 사양한 바는 의당 윤허하지 못할 일이다." 하였다.

세종실록 64권, 세종 16년 4월 2일 기유 3번째기사 / 도승지 안숭선이 사직하기를 청하자 이를 허락치 않다
도승지(都承旨) 안숭선(安崇善)이 사직(辭職)하여 말하기를, "직임(職任)이 매우 중하여 이기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오니, 신의 직책을 해임하옵기를 바라나이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65권, 세종 16년 8월 9일 계축 2번째기사 / 좌승지 정분이 아버지 병으로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고 시약하게 하다
좌승지 정분이 아버지 병으로써 사직을 원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고 시약(侍藥)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 12월 8일 신해 4번째기사 / 판중추원사 허조가 병약함으로 사직할 것을 상언하다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가 상언하기를, "신이 기질이 본래 약하고 나이 70이 되매, 심신(心神)이 혼매(昏昧)하여 앞뒤를...기억하지 못하는 데다가, 오래 된 병이 더욱 심해져서 행보(行步)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전일에 간청의 말씀을 드리고...원하였사오나 윤허(允許)를 받지 못하고, 특별히 출근을 하지 말고 안심하고 병을 치료 하도록 명령하시어 곡진하게 보호하여 주시니,...

세종실록 67권, 세종 17년 3월 29일 신축 5번째기사 / 영의정부사 황희가 전을 올려 노쇠함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치 않다
전(箋)을 올려 사직하기를, "하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좇아 주심은 오직 성인(聖人)의 큰 덕량(德量)이요, 능하지 못하여 이에서 그치려는 것은 곧 미신(微臣)의 간곡한 회포입니다. 감히 꾸밈 없는 정성을 진달하여 우러러 고명(高明)하옵신...임금이 윤허하지 않고 이에 비답(批答)하기를, "어려움을 극복한 임금은 어진 보필에 힘입는 법이라, 기구(耆舊)를 택하여 임용하였으니,...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 6월 24일 갑자 1번째기사 / 최윤덕이 병을 이유로 사직하니, 윤허하지 않다
좌의정(左議政) 최윤덕(崔閏德)이 전(箋)을 올려 사직하니, 그 말에 이르기를, "하늘이 높으나 듣는 것은 낮아서 반드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고, 공(功)은 적은데...다하지 않음. 이명(離明) 임금의 밝으심. 건단(乾斷) 임금의 판단. 하였다 . 임금이 비답(批答)하여 윤허(允許)하지 않고 말하기를, "대개 들으니 장상(將相)의 직책은 반드시 내외의 권한을 겸한다. 들어오면 고굉(..

세종실록 69권, 세종 17년 9월 6일 갑술 3번째기사 / 호조 판서 안순이 사직하나 허락하지 않다
호조 판서 안순(安純)이 사직하면서 말하기를, "신은 본디 용렬하고 어리석으며, 또한 조금도 보답함이 없는데도 지나치게 임금의 은혜를 입었으니, 실로 분수에 넘은 일입니다. 아주 적은 공로로써 보답하고자 하여,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하여금 안심하고 병을 치료하도록 하여, 얼마 동안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70권, 세종 17년 11월 25일 임진 1번째기사 / 이조 판서 이맹균이 사직하려 하나 허락하지 않다
것으로써 두려워했는데, 어찌 사직(辭職)하려는 계책이 없었겠습니까마는, 다만 몸이 유도(有道)한 세상을 만나 차마 성상을 멀리 떠날 수가 없어서, 감히 갑자기...사직(辭 職)하기를 청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은 지금 나이 70에 가까우니 노병(老病)이 번갈아 일어나서, 형체는 파리하고 기운은 피곤하며, 눈은 어둡고...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71권, 세종 18년 3월 26일 임진 3번째기사 / 허조가 사직을 원하나 허락치 않다
진술하여 직사(職事)를 해임하기를 원하였으나, 성상께서 간절히 불쌍히 여겨 윤허하지 아니하고 특별히 조참만 면제하여 병을 요양(療養)하게 하시니, 은혜가 너무 후하여 황공함이 더욱 간절합니다. 신은 본디 용렬한 사람으로써 다행히 성명(聖明)을 만나, 성상의...간절함을 본받아 그대의 경제의 방법을 힘쓸 것이다. 사직하는 것은 마땅히 윤허하지 않겠다." 하였다.

세종실록 72권, 세종 18년 6월 2일 정유 1번째기사 /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영의정 황희(黃喜)가 사직하여 아뢰기를, "신은 천성이 원래 용렬하고 어두운데다가 학술조차 거칠고 엉성하온데, 근일에는 귀마저 어둡고, 노병(老病)이 갈마들어 공격하오며,...대신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여 도리어 재이(災異)를 부르게 하고, 주야로 걱정하심을 드리게 되오니 참으로 황공하와 몸둘 바를 알지 못합니다. 바라옵건대,...주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72권, 세종 18년 6월 7일 임인 1번째기사 / 의정부 찬성사 안순이 사직하기를 원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의정부 찬성사(贊成事) 안순(安純)이 상서하기를, "신은 자질이 본래 용렬하고 경솔한데다가, 학문도 또한 거칠고 서투른데, 지나치게 성상의 은혜를 입사와 벼슬이 숭품(崇品)에 이르렀습니다. 언제나 떨리는 마음을 품고 물방울과 티끌만한 작은...약 쓰는 데에 전심하게 하옵시고, 남은 목숨을 보전하게 하옵소서." 숭품(崇品) 종1품 품계의 별칭.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74권, 세종 18년 9월 21일 계축 2번째기사 / 경상도 감사 박규의 사직을 윤허하지 않다
경상도 감사 박규(朴葵)가 병으로 사직(辭職)하니, 윤허하지 아니하고 인하여 글을 내려 이르기를, "지난번에 경(卿)이 더위병[暑症]으로 앓는다는 말을 듣고 의원을 보내어 병을 묻게 하였더니, 이제 경이 사직한 것을 보고 여러 증세가 함께 발하였음을 자세히 알게 되므로, 내가 심히 염려하노라. 그러나, 금년은 도내(道內)의 흉년든 정도가 다른 해에 비할 바가 아닌즉,...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 4월 26일 을유 1번째기사 / 이순지가 사직하기를 상언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이순지(李純之)가 상언하기를, "신의 부자가 여러 번 전지를 받자와 신으로 하여금 상복을 벗고 나와 벼슬하게 하시매, 신이 이미 이 달 20일에 진정서를 올려, 상제를 마치기를 빌고 원하였으나 윤허하심을 얻지 못하오니, 혼백이 떨어져서...도로 거두시고 병든 몸을 수양하게 하여, 짧은 시일의 상을 마쳐서 끝없는 슬픔을 조금 펴게 하옵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78권, 세종 19년 8월 12일 기사 1번째기사 / 이조 판서 권도가 사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이조 판서 권도(權蹈)가 상언하기를, "신은 본래 어리석고 용렬한 몸으로 오랫동안 〈성상의〉 덮어 길러 주신 은혜를 입사와 빠르게 높은 품질(品秩)에 올라,...그 전하의 은혜를 받음이 어찌 크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고 그 상언장(上言狀)을 돌려주며 말하기를, "권도가 이조 판서의 사면(辭免)을 여러 번 청하였으니, 내 장차 고쳐 제수하겠다."...

세종실록 78권, 세종 19년 9월 4일 신묘 1번째기사 / 지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긴 수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선성(先聖) 태종. 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고 의금부 제조로 고치라고 분부하였다. 당초에 말생이 청렴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오랫동안 외방으로 축출당했다가 돌아와서 직첩을 받고 곧 중추원...겸임했다가 대성(臺省)에서 여러 번 제조에는 마땅하지 못하였다고 청했으나 결말이 없었다. 오래 되어 마음이 불안함으로 이에 사직하기를 빌었다.

세종실록 78권, 세종 19년 9월 5일 임진 1번째기사 / 도승지 신인손이 사직하기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도승지 신인손이 사직하기를 빌면서 말하기를, "신은 천성이 본래 용렬하고 어리석으며 또 학술도 없었으나, 다행히 벼슬자리에 올라서 외람되게 성은을 입사와, 여러 번 좋은...하여 주시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 당초에 경기도 원평부(原平府)에 관물을 축내고 도망간 사람의 토지가 있어서 매우 기름졌었다. 관청에 둔전으로 한 지가 오래...

세종실록 80권, 세종 20년 3월 3일 정해 4번째기사 / 평안도 관찰사 박안신이 사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평안도 도관찰사 박안신(朴安臣)이 나이 70이 되었다는 것으로써 전문(箋文)을 올려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1권, 세종 20년 4월 14일 정묘 1번째기사 / 황희가 사직전을 올리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가 전(箋)을 올려 사직하기를, "성상을 사랑하고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대의(大義)는 비록 마음속에 간절하오나, 힘을 펴 반위(班位)에 나가기 어려운 것이 있어,...청한 것을 내가 모두 윤허하지 않았는데, 사간원에서 또 청하기를, ‘영의정 황희(黃喜)는 국가와 더불어 휴척(休戚)을 같이할 위치에 있으면서, 사리각(舍利閣) 중수의 공사를...

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 11월 26일 병오 2번째기사 / 예문관 대제학 권제가 사직을 청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예문관 대제학 권제(權踶)가 사직하여 아뢰기를, "신은 어려서부터 병이 많았는데, 이제 50이 넘어서 몸이 쇠약하고 피곤함이 더욱 심하옵니다. 지난 여름에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뒤로 병을 무릅쓰고 직무에 봉사하였사오나, 또 식상(食傷)하는...먹게 하여 길이 성상의 은덕을 입게 하옵소서." 식상(食傷) 먹은 음식이 소화되지 않음.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 12월 25일 을해 2번째기사 / 평안도 도절제사 이천이 노모의 봉양을 들어 사직을 청하다
평안도 도절제사 이천(李蕆)이 상언하기를, "신은 성질이 본래 용렬하고 어리석사와 특별한 재능(才能)이 없사온데, 다만 성상의 지우(知遇)를...역시 오랫동안 혼정신성(昏定晨省)하지 못하여서 자식된 직분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부모를 그리는 정의[烏鳥之情]를 잊기 어렵사옵니다. 비옵건대, 신의 관직을 파면하시어...봉양하게 하옵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6권, 세종 21년 9월 22일 정묘 2번째기사 / 이징옥이 사직을 청하다
전 판경원도호부사(判慶源都護府事) 이징옥(李澄玉)이 상언하기를, "신을 기복(起復)시켜 경상도 도절제사를 삼으셨으나, 신이 모상(母喪)을 마치지 못하였고, 또 신의 아비의 나이가 88세이오니 곁에서 모시어 임종(臨終)을 보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6권, 세종 21년 9월 27일 임신 2번째기사 / 집현전 부수찬 박팽년이 사직을 청하다
집현전(集賢殿) 부수찬(副修撰) 박팽년(朴彭年)이 상언(上言)하기를, "신이 학술이 거칠고 소루하여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어, 한가한 데에 있어 글을 읽을 뜻이 있으나, 말씀을 하려다가 못한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신의 조그마한 정성을 양찰하시와 신의 직책을 면하게 하여 구구(區區)한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7권, 세종 21년 11월 21일 을축 3번째기사 / 좌의정 허조가 위독하여 사직을 청하니 허락하지 아니하다
좌의정 허조(許稠)가 병이 위독하여 사직(辭職)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않고 말하기를, "경은 본래 나이가 많고 또 오래된 병이 있으나, 다만 큰 일을 재결(裁決)하고자 할 뿐이었소. 근래에 밤낮으로 근고(勤苦)하므로 내가 그 숙질(宿疾)이...이로 인하여 병이 될 줄을 생각하지 못하였었소. 내가 일찍이 이를 생각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오. 경은 안심하고 병이나 조섭하오." 하였다.

세종실록 87권, 세종 21년 11월 24일 무진 1번째기사 / 좌부승지 허후가 아비의 병으로 사직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휴가를 주다
좌부승지(左副承旨) 허후(許詡)가 아비의 병이 더 위독하므로 사직(辭職)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고 휴가를 주었다.

 세종실록 88권, 세종 22년 3월 24일 병인 2번째기사 / 좌찬성 이맹균이 전을 올려 사직을 청하다
잘 잊는 것은 화자(華子) 와 같아서 선후(先後)를 기억하지 못하옵는데, 무슨 얼굴로 어진 이를 방해하오리까. 마땅히 나이를 들어 사직(辭職)할 것이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겸용(兼容)의 도량(度量)을 넓히시고 박애(博愛)의 어지심을 미루시어, 신이 한가한 곳에 나아가 양병(養病)하려는 것을 불쌍히...옛날 중국의 잘 잊기로 유명한 사람.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 4월 26일 무술 3번째기사 / 우의정 신개가 사직을 청하다
우의정 신개(申槪)가 상언(上言)하기를, "신이 수족의 골절이 아파서 구부렸다 폈다 하기가 건삽한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어서, 많은 방법으로 치료하였으나 낫지 않고, 또 노둔하고 박루(樸陋)함으로써 그릇 국은을 입어 재보의 자리를...기르면 거의 조금 연장하여 길이 성은(聖恩)을 입을 수 있겠사오니, 청하건대, 신의 직책을 면하여 주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 5월 1일 임인 3번째기사 / 예문 직제학 남간이 사직을 청하다
예문 직제학(藝文直提學) 남간(南簡)이 상언(上言)하기를, "이제 신을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를 제수하시었는데, 신이 한열(寒熱)이 오가는 병을 앓아서 날로 더욱 심중하여 종사(從仕)할 수가 없습니다. 약은 효력이 없고 병 증세는 더욱 심하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하건대, 신의 직책을 해면하여 주옵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 5월 6일 정미 2번째기사 / 함길도 도관찰사 이숙치가 노환으로 사직을 청하다
함길도(咸吉道) 도관찰사 이숙치(李叔畤)가 상언하기를, "신이 을묘년에 비로소 인음(引飮)의 병을 앓아서 마음으로는 치료할 수 있으리라 하였더니, 지금...쇠할 것이오니, 엎드려 상재(上裁)를 바랍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고, 인하여 전지하기를, "지금 알타리 가운데 도망하여 배반한 자가 아직 다 본업에 돌아오지 않고 올적합(兀狄哈)의 성식이 서로 이어 끊어지지...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 6월 22일 임진 2번째기사 / 도승지 김돈이 사직을 청하다
도승지(都承旨) 김돈(金墩)이 사직하여 말하기를, "신이 병세가 날로 깊어져서 음식 생각이 없고 머리와 눈이 어둡고 어찔어찔하여 사지에 힘이 없어, 여러 달 사진(仕進)을 못하여 자리를 비우고 일을 폐하였으니 신의 직사를 파하시기를 비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 7월 14일 갑인 1번째기사 / 사간원 좌사간 대부 김중곤이 사직하다
지난 4월 일에 신에게 본직(本職)을 제수하시니, 신이 비록 어리석고 늙었으나 몸과 마음을 다해 만에 하나라도 보답코자 하여, 명을 받던 그날 길에 올라 직(職)에 나아간 것이 지금 두어 달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나이 75세이고 기력이 쇠하여 능히 보답하지 못하오니, 시골 집에 돌아가서 여생(餘生)을 마칠 수 있기를 청합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 8월 10일 기묘 1번째기사 / 판중추원사 조말생이 하직하다
판중추원사 조말생(趙末生)이 전문(箋文)을 올려 사직하기를, "족(足)한 줄을 알고 그만둔다는 것은 선철(先哲)의 격언(格言)이오며, 늙었음을 고(告)하고 돌아감은 예경(禮經)의 떳떳한 법입니다. 감히 옛법에 의거하여 고명(高明)하신 들으심을 더럽히옵니다....사람의 축수와 숭산(嵩山)의 만세 소리로 천세(千歲)의 높은 나이를 송축하겠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 10월 27일 경인 1번째기사 /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다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늙고 병이 있다는 이유로 사직을 청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예문관은 한가한 벼슬이므로 경이 비록 병이 있을지라도 조섭(調攝)할 수 있으니, 혹시라도 사직할 생각은 말라." 하였다. 말생은 학식이 있고 이치(吏治)에 능하며, 또 재상의 체통(體統)을 알아서, 태종의 대우와 사랑이 특이하여 오래 정권을 잡으니, 이로 인 하여 남의...

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 11월 7일 경자 3번째기사 / 행 성균 사성 윤상이 사직하기를 청하나 윤허하지 않다
행 성균 사성(行成均司成) 윤상(尹祥)이 나이가 70에 가까왔다고 하여 사직하기를 청하매, 도승지 조서강(趙瑞康)이 아뢰기를, "이 사람은 나이가 비록 늙었사오나 학술(學術)이 정명(精明)하고, 또 덕행(德行)이 있사와...또한 많사온데, 이제 만약 윤허하시면 여러 생도들이 실망할까 심히 염려되 옵니다." 하니, 임금이 그렇게 여겨, 윤상에게 벼슬에 나아가기를 명하였다.

세종실록 95권, 세종 24년 1월 4일 병인 3번째기사 / 이인화가 어머니의 상제를 마치고자 사직을 청하다
비록 무지한 무부(武夫)이오나, 성효(誠孝)의 천성(天性)이야 어찌 다른 사람과 다르오리까. 이미 아비에게 자식 된 정을 펴지 못하였고, 또 어미에게도 정을 펴지 못하여 불효함이 이에 이르니, 낯이 부끄러움을 어찌 감당하오리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이 여막[廬]으로 돌아가 상제(喪制)를 마치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니, 윤허하지 않았다.

세종실록 97권, 세종 24년 7월 28일 병술 5번째기사 / 경기 관찰사 윤형이 어머니의 병으로 사직하고자 하다
경기 관찰사 윤형(尹炯)이 어머니의 병으로 사직(辭職)하고자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98권, 세종 24년 11월 24일 경진 1번째기사 / 중추원 사 권제가 병으로 사직하나 윤허하지 않다
중추원 사(中樞院使) 권제(權踶)가 병으로 사직(辭職)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98권, 세종 24년 12월 25일 신해 2번째기사 / 우의정 신개가 사직을 청하는 전문
적합하지 못한데도, 다행히 형통(亨通)한 기회를 만나서 갑자기 선발(選拔)의 은전(恩典)을 입게 되었습니다. 벼슬이 사조(四朝)를...사직(辭職)을 청해야 되겠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신의 분수를 아는 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의 치욕(恥辱)...윤허하는 명령을 내리시와 번거로운 직무를 벗게 해 주소서." 견마(犬馬) 임금에 대한 자기에 겸칭.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101권, 세종 25년 9월 3일 갑인 1번째기사 / 우의정 신개가 사직을 청하다
우의정 신개(申槪)가 상언(上言)하기를, "신은 소시(少時)로부터 병이 많았사온데, 나이 이제 70에 여러가지 병이 모두 생겨서 정신이 혼매(昏昧)하여, 진헌(進獻)하는 방물(方物)을 봉(封)해 싸는 것은 막중한 일이온데, 신이 수석으로 있으며...직무를 갈아주시어, 신으로 하여금 분수에 편안히 있으며 쇠(衰)한 연령을 조양(調養)할 수 있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105권, 세종 26년 윤7월 13일 경인 3번째기사 / 판중추원사 이명덕의 졸기
나아가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무오년에는 다시 지중추원사로 되었다가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옮기었다. 신유년에는 병으로 사직하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고 인순부 윤(仁順府尹)을 제수하였다. 계해년에는 또 나이 만 70세가 되었다고 하여 치사(致仕)하기를 청하니 윤허 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지중추원사로 기용(起用)되었으며, 이 해 여름에 이르러...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 4월 13일 병진 4번째기사 / 어머니 병으로 사직을 청한 중추원 부사 마변자에게 약을 내려주다
중추원 부사 마변자(馬邊者)가 어머니 병 때문에 사직을 청하니, 윤허하지 아니하고, 약을 내려 역마(驛馬)를 주어 보냈다.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 4월 23일 병인 3번째기사 / 도진무를 제수한 김문기가 사직하기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전 수 봉상시 윤(守奉常寺尹) 김문기(金文起)가 계모의 상(喪)을 만나 옥천(沃川)에 있었는데, 함길도 도절제사 박종우(朴從愚)가 추천하여 도진무(都鎭撫)로 삼으니, 문기가 상서(上書)하기를, "신의 어미가 일찍...아프고 민망스럽거늘, 하물며, 신은 본디 옹졸하고 약하여 무사(武事)에 익숙하지 못하오니, 신의 임명을 바꾸옵기를 바라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110권, 세종 27년 12월 5일 갑진 3번째기사 / 영중추원사 최윤덕의 졸기
승진하였다. 여름에 다시 전문(箋文)을 올려 정부(政府)는 사면하고 다만 안무(安撫)의 직임만을 행할 것을 빌었으나, 또 윤허하지 않았다. 병진년에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가 되었다. 경신년에 계모(繼母)의 상중(喪中)에 있었고, 복(服)이 끝나매 다시 영중추원사를 시켰다. 갑자년에 나이가 70세에 가까와서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 5월 13일 병술 1번째기사 / 경기 도관찰사 허후가 어머니 병으로 사직하기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경기 도관찰사 허후가 어머니 병 때문에 사직을 청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기는 가까운 곳이므로 어버이를 보살피기에 어렵지 않겠고, 또 동생이 있지 않느냐." 하고,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110권, 세종 27년 12월 5일 갑진 3번째기사 / 영중추원사 최윤덕의 졸기
직임만을 행할 것을 빌었으나, 또 윤허하지 않았다. 병진년에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가 되었다. 경신년에 계모(繼母)의 상중(喪中)에 있었고, 복(服)이 끝나매 다시 영중추원사를 시켰다. 갑자년에...갑자년에 나이가 70세에 가까와서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을축년 11월에 궤장(几杖)을 내렸는데, 이때에 병으로 심히 위독하였다. 일어나서 명(命)을 배수(拜受)하려 하니,...

세종실록 112권, 세종 28년 4월 25일 임술 2번째기사 / 도승지 유의손이 병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도승지(都承旨) 유의손(柳義孫)이 병(病)으로 사직(辭職)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112권, 세종 28년 5월 11일 무인 2번째기사 /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코자 상서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조말생(趙末生)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재주롭지 못한데도 지나치게 성은(聖恩)을 입었고, 겸하고 늙고 병들어서 여러...만나 화곡( 禾穀)이 풍등(風登)하지 못하여, 백성의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여 창고를 열러 진휼(賑恤)하매 국고(國庫)가 텅 비었는데, 지금 농삿달을 당하여 비가 시기를...하늘의 견책에 보답하소서."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112권, 세종 28년 6월 27일 계해 3번째기사 / 병조 판서 안숭선이 병으로 사직하기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병조 판서 안숭선(安崇善)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은 기질이 본래 잔약하고, 또 조그만 지식도 없는데, 그릇 성상(聖上)의 알아주심을 입어서 빛나고 종요로[華要]운 벼슬을 고루 지내고, 빨리 높은 품질(品秩)에 옮겼사온데, 복(福)이 지나쳐...생명을 보존하게 하소서." 허한(虛汗) 원기가 허약하여 나는 땀. 현훈(眩暈) 정신이 어뜩어뜩하여 어지러움.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실록 114권, 세종 28년 11월 28일 임진 1번째기사 /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벼슬을 그만두겠다고 상서하였다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조말생(趙末生)이 상서하기를, "신(臣)은 본디부터 풍질(風疾)을 앓고 있사온데, 나이 70세가 되매 이미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었는데도 특별히 성은(聖恩)을 입사와 관위가 신하의 극상(極上)에 이르렀으니,...납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신(臣)의 지극한 심정을 살피시와 전리(田里)에 돌아가기를 허가해 주시옵소서." 하였으나, 윤허(允許)하지 않았다.

 세종실록 124권, 세종 31년 5월 27일 병오 1번째기사 / 한재로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영의정 황희가 한재(旱災)로 인해 상서(上書)하기를, "신의 나이가 90에 가까운데, 공이 없이 녹을 먹으오니, 청하옵건대, 신의 직책을 파하여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하소서." 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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