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춘부는 신돈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며 공민왕 밑에서 찬성사, 시중 등을 역임한 고려의 관리였다.
1371년 신돈의 역적모의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아들 4형제도 모조리 관노로 편입되었는데 그중 한명이 이옥이다.
1372년 강릉에서 왜구를 물리친 사실을 안 공민왕은 크게 감동하여 면천을 시켜주고 안장 갖춘 말을 하사하였다.
이 후 우왕 때 복권되어 1387년(우왕 13)에는좌상시(正三品)를 거쳐 강릉도절제사를 역임하며, 동해안을 오랜 기간 왜구로부터 지켰다.
이 이야기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조선의 <용재총화>에도 기록되어 있다.
훗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원종공신(原從功臣) 칭호를 주었고, 政敵들을 가차없이 살해하던 권력자 이방원도 왕위에 오른 뒤 이옥에게 판한성부사(正二品), 검교 참찬 의정부사, 개성유후사 유후 등의 높은 벼슬을 주고 태종 9년에 돌아가시자 정절공(靖節公)의 諡號와 함께 3일간 조회를 정지한 특별대우를 한 것으로 볼 때, 태조 이성계와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