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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정정화 지사 - 그녀는 조자룡이다. 작은 몸 전체가 담(膽)덩어리다.

영원한하늘
댓글: 1 개
조회: 754
추천: 2
2026-02-22 03:45:46

https://youtube.com/shorts/mX_4wibMEY4?si=EBJTki76yDxJXvHA

아래 내용은 제미나이 검색을 긁어 온겁니다. 
간략히 요약한 내용이니 상세 생애를 알고 싶으신분은 따로 검색해보시길.. ^^;


정정화(鄭靖和, 1900~1991) 지사는 27년간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책임지며 '임시정부의 어머니' 또는 '안주인'이라 불린 독립운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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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생애와 활동
  • 망명과 투신: 1910년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가 집안인 김의한 지사와 결혼했습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이 상하이로 망명하자, 이듬해 자신도 합류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 자금 조달의 밀사: 자금난에 시달리는 임시정부를 위해 목숨을 걸고 6차례나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자금을 모으고 운반하는 위험한 밀사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 임시정부 수호: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8,000km가 넘는 임시정부의 피난길을 함께하며 김구 등 주요 요인들의 식사와 생활을 뒷바라지했습니다. 1940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의 훈련부장을 맡아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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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 이후와 기록
  • 장강일기(長江日記): 해방 후 1991년 91세로 서거하기 전까지 자신의 투쟁 기록을 담은 회고록 『장강일기』를 남겼습니다. 이 기록은 임시정부의 일상사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 서훈: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혹은 1990년 보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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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지사의 시아버지이신 김가진 선생의 생애는 아래와 같습니다.

김가진 선생.
정정화 지사의 시아버지인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1846~1922) 선생은 대한제국의 대신(장관급) 출신 중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을 결행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전북일보 인터넷신문전북일보 인터넷신문 +2
1. 대한제국의 관료 및 외교관
  • 관직 생활: 안동 김씨 가문 출신으로, 조선 말 문과에 급제하여 농상공부대신, 법부대신 등 고위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 외교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재외공관 상주 외교관으로서 일본과 유럽 등에서 활동하며 근대적 국제 안목을 쌓았습니다. 특히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대한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애국계몽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WikipediaWikipedia +5
2. 74세의 노구로 결행한 망명
  • 작위 반납: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일제가 수여한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이후 이를 부끄럽게 여겨 반납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 조선민족대동단 조직: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 최대 비밀 항일 조직인 조선민족대동단을 결성하고 총재로 추대되었습니다.
  • 상하이 망명: 1919년 10월, 74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아들 김의한과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3
3. 서거와 역사적 평가
  • 임시정부 국장: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1922년 서거하였으며, 임시정부 최초의 국장(國葬)으로 치러졌습니다.
  • 명필가: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도 유명하며, 독립문의 현판 글씨를 쓴 인물로 유력하게 추정됩니다.
  • 서훈 논란: 아들(김의한)과 며느리(정정화)는 모두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았으나, 김가진 선생 본인은 과거 작위를 받았던 이력 등의 논란으로 인해 오랫동안 서훈이 보류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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