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I는 산업이 아니라 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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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일, 13,000개 표적.
2026년 2월 28일 개시된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작전 ‘에픽 퓨리’의 성적표다.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이 레이더·위성·드론·전자통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하고, Anthropic의 Claude가 표적을 분류했다. 인간은 화면 위의 버튼을 눌렀다. 과거 며칠이 걸리던 킬체인이 분 단위로 압축됐다. 팔란티어 CTO 샤얌 산카르는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나중에 돌아보며 말할 것이다. 이것이 AI가 실질적으로 전쟁을 주도한 최초의 대규모 전투작전이었다고.”
이것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저 버튼을 누를 수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대신 눌러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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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이 없는 시대
1970년대, 한국은 독자 핵개발을 포기했다. 미국의 압력도 있었지만, 핵우산이라는 대안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미국이 대신 써 줄 것이다”라는 보장 위에 안보를 설계할 수 있었다.
AI에는 그런 우산이 없다. 이란전의 킬체인은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 사이의 협력이었다. 메이븐 시스템의 25,000개 군 계정은 미군을 위해 돌아갔지, 동맹국의 자율 운용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미국이 한국군에 킬체인 알고리즘과 데이터 접근권을 통째로 넘겨줄 가능성은 극히 낮다. 2028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둔 한국이 자체 AI 킬체인 없이 전작권을 이양받는다면, 그것은 열쇠 없는 차를 인수하는 것과 같다.
뉴데일리는 2026년 5월 칼럼에서 이 문제를 정확히 포착했다. “이란戰이 드러낸 ‘AI 전쟁’ 실상… 과연 한국군이 미군을 지휘할 수 있나.” 전작권을 돌려받아도, 전장의 눈과 뇌가 미국 AI에 의존하는 한, 지휘의 실질은 따라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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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AI 세계
이 문제를 더 넓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AI 세계는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만리방화벽으로 쪼개졌듯, AI도 미국 블록과 중국 블록으로 갈라지고 있다.
미국 쪽에서는 OpenAI가 속도로, Anthropic이 안전으로, Google이 배포력으로 각축한다. Anthropic은 4월에 Mythos Preview를 공개하면서도 사이버 안보를 이유로 12개 파트너에게만 한정 제공했고, OpenAI는 같은 달 GPT-5.5를 시장에 바로 풀었다. 2021년 Anthropic이 OpenAI에서 갈라져 나올 때의 철학적 분기—안전 대 속도—가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중국 쪽에서는 DeepSeek V4가 미국 모델의 10분의 1 가격에 75% 추가 할인을 걸며 14억 내수와 글로벌 사우스를 먹고 있다.
한국은 이 두 블록 사이에 낀 나라다. 안보는 미국, 최대 교역국은 중국. 양쪽 생태계를 다 이해해야 하면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기댈 수 없는 위치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2025년 11월 보고서에서 한국을 ‘AI 중견국’으로 규정하며, 미국의 AI 국가안보각서(AI NSM)에 비해 한국의 안보 통합 전략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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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시를 걷어내면
한국 AI의 현주소를 보자. Stanford AI Index 2026은 흥미로운 비대칭을 드러낸다.
한국은 ‘Notable AI 모델’ 5개로 세계 3위, 인구 대비 AI 특허 밀도 세계 1위(2년 연속), AI 채택률 증가폭 세계 최대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HBM 점유율 합산 80%로 AI 반도체 공급의 핵심을 쥐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AI 강국이다.
그러나 AI 인재 순유입에서는 OECD 38개국 중 35위다. 특허는 쏟아내는데 사람은 빠져나간다. 국회미래연구원은 HBM 80%를 “착시”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AI 가치사슬의 하위 계층(반도체·하드웨어)에 편중돼 있고, 상위 계층(기반모델·플랫폼)은 취약하다. 부품은 세계 최고로 깎는데, 두뇌는 남의 것을 빌려 쓰는 구조다. 이것은 IIT(인도공과대학)의 역설과 닮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험으로 인재를 선발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근본적 발견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CEO였다. 한국도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지만, 그 위에서 돌아가는 모델은 미국 것이다.
국내 LLM 생태계는 유동적이다. 네이버의 CLOVA X 챗봇은 4월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LG EXAONE·SKT A.X·업스테이지 Solar Pro가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에 참여 중이다. 리벨리온·퓨리오사AI 같은 AI 반도체 스타트업도 자라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합쳐도 NVIDIA 한 분기 매출에 미치지 못한다. 규모의 게임에서 정면 승부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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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은 있다, 설계가 없다
이재명 정부는 방향을 잡았다. ‘AI 3대 강국’을 국가 비전으로 세우고, 2026년 AI 예산 10조 1천억 원을 편성했다. 전년 대비 211% 증가. NVIDIA와 2030년까지 26만 장의 GPU 공급에 합의했고, AI 기본법을 시행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챗GPT가 있으니 소버린 AI는 낭비라는 주장은, 베트남에 쌀이 있으니 한국 농사는 필요 없다는 얘기와 같다”고 했다. 인식은 정확하다.
문제는 인식과 실행 사이의 간극이다.
10조 원이 41개 부처, 721개 내역사업에 흩어져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한 사람이 한 곳에서 모든 자원을 총괄했다. 한국의 AI 예산은 과기정통부에 5.1조, 산업부에 1.9조, 중기부에 1조가 각각 배분돼 있고, 부처별 유사사업의 중복과 분류 체계 미흡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지적받았다.
국가AI전략위원회가 2025년 9월 심의·의결권을 갖는 형태로 격상됐지만, 예산 직접 배정권은 여전히 기재부에 있다. AGI 연구소는 약 1,150억 원 규모로 설계됐으나, 설립 주체와 조직 구성이 확정되지 않은 채 예산만 먼저 잡혔다.
가장 뼈아픈 것은 사령탑의 공백이다. AI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신설한 AI 미래기획수석실의 초대 수석 하정우가 2026년 4월 27일, 취임 10개월 만에 사퇴했다. 재보궐선거 출마를 위해서였다. 5월 현재 후임 인선은 난항 중이다. AI를 국가 전략의 핵심이라고 선언한 정부에서, 그 전략의 사령관이 정치적 이유로 자리를 비웠다. 이것이 절박함의 부재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군사 AI도 움직이고는 있다. 국방AI센터가 ‘국방인공지능기술연구원’으로 격상됐고, AI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예산은 전년 대비 78% 증가한 3,402억 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이 금액은 국방예산 65.8조 원의 0.5%다. 2040년 완성이라는 로드맵은, 이란 상공에서 분 단위로 표적이 처리되는 현실과 시간 감각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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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해튼의 교훈
맨해튼 프로젝트는 세 가지로 성공했다. 절박함, 집중, 총괄.
“나치가 먼저 만들면 끝난다”는 실존적 공포가 있었다. 자원이 한 곳에 집중됐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총괄했다. 한국의 AI 전략에는 이 세 가지 모두 부족하다. AI를 경제 성장의 도구로 보는 프레임 안에서는 절박함이 나오지 않는다. 721개 사업으로 쪼개면 집중이 불가능하다. 사령탑이 비어 있으면 총괄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핵과 AI 사이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 핵은 한 번 만들면 억지력이 반영구적으로 유지된다. AI는 매달 새 모델이 나오고, 2개월 전 최신은 오늘의 구식이 된다. 한 번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영속적 맨해튼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 컨트롤 타워를 복원하되, 이번에는 부처 간 예산 조정 실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Unit 8200이나 미국 DARPA처럼, AI 안보 R&D를 한 곳에서 총괄하는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 한국에 사이버작전사령부와 국방인공지능기술연구원이 있으나, 이를 하나의 지휘 체계 아래 묶는 상위 구조가 없다. AI 병역특례 확대가 추진 중인데, 단순 면제가 아니라 군사 AI 프로젝트 참여를 복무로 인정하는 이스라엘식 설계가 돼야 한다. AI 인재 유입 OECD 35위를 뒤집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카드다.
둘. 규모 경쟁을 포기하고, 영역별로 선을 그어야 한다. 군사·정보는 폐쇄망 독자 운용, 행정·공공은 국내 클라우드 하이브리드, 민간은 미국 모델 활용. 전부 독자로 가면 자원이 소진되고, 전부 의존하면 종속된다. 한국이 추구할 것은 “범용 LLM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범용 LLM을 주권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부의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도, 범용 벤치마크 경쟁이 아니라 한국어·행정·군사 도메인 특화로 방향을 잡아야 의미가 있다.
셋. 반도체 강점을 모델과 연결해야 한다. HBM 세계 1위는 AI 주권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NVIDIA는 칩+CUDA+모델을 풀스택으로 묶어 생태계를 장악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를 만들면서도 그 위에서 돌아갈 모델은 별도로 개발하고 있다. 삼성·SK의 HBM과 NPU에 최적화된 경량 모델을 공동 설계하는 구조—같은 성능을 절반의 자원으로 내는 효율—가 한국형 AI의 유일한 차별화 경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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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AI 특허 밀도 세계 1위, AI 인재 유입 OECD 35위. 이 두 숫자 사이의 거리가 한국 AI 전략의 현주소다.
이란 상공에서 AI가 표적을 선정하고 킬체인이 분 단위로 돌아가는 세계가 이미 도래했다.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는 AI 사령탑이 선거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 대비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기술이 아니다. 돈이 아니다. 절박함이다.
‘AI 3대 강국’이라는 슬로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필요하다. 작지만 우리가 통제하는 AI를 먼저 만들고, 거기서부터 확장해야 한다. 절박함, 집중, 총괄. 맨해튼의 세 가지 교훈을 지금 이 순간 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