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한번 올렸던 글을 이것저것 수정하면서 프롤로그 형태로 다시 써봤습니다.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아이온2의 공명전과 전쟁 콘텐츠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보상 구조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전장에는 누군가는 아티팩트를 공격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적의 키스크를 파괴하고 길목을 막으며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많이 죽고,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며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그 희생에 걸맞은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구조가 과연 맞는 것일까.
그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고, 직접 비판하는 글을 쓰기보다는 아이온2의 세계관을 빌려 하나의 소설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시간 괜찮으시면 편하게 읽어보시고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글이 아이온2 김남준 디렉터님께도 한 번쯤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게임을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전장에서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는 플레이어들도 함께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를 한 번쯤 고민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써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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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축복받지 못한 자들
칼날이 가슴을 꿰뚫었다.
푸른 날개가 힘없이 접혔다.
데바의 몸이 검붉은 늪 위로 쓰러졌다.
검끝은 마족의 키스크를 불과 한 걸음 앞에 두고 멈췄다.
닿지 못했다.
시야가 꺼졌다.
그리고 다시.
푸른 빛이 눈을 찔렀다.
데바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푸른 키스크 앞이었다.
죽었던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되돌아올 때마다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
경험.
그리고 축복.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자신이 몇 번째 죽음을 맞았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끝내 생각나지 않았다.
그 순간.
늪지대 너머에서 검은 날개가 다시 밀려왔다.
“다시 간다!”
누군가 외쳤다.
데바는 아무 말 없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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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 활성화까지 삼십 분.
지휘실 중앙에 놓인 푸른 수정구 위로 희미한 빛 네 개가 떠 있었다.
각각 하나의 포스를 뜻하는 불빛이었다.
하나의 포스는 네 개의 파티.
각 파티는 다섯 명.
과거에는 수정구 위를 열 개의 불빛이 가득 채우던 시절도 있었다.
수백 명의 데바가 하나의 명령에 움직였고.
출정 시간이 다가오면 포스를 편성하는 것만으로도 지휘실 전체가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남은 불빛은 네 개뿐이었다.
단장은 말없이 수정구를 바라봤다.
그 희미한 빛들이 오늘 전장에 설 수 있는 전부였다.
“단장.”
부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늪지대 입구로 가실 겁니까?”
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수정구 옆에 펼쳐진 전장 지도로 향해 있었다.
중앙에는 세 개의 아티팩트가 표시되어 있었다.
활성화와 동시에 천족과 마족은 아티팩트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아티팩트에 더 오래 칼날을 겨눈 데바일수록 더 많은 축복을 받는다.
그 축복은 데바를 강하게 만들었다.
더 강한 무기를 들게 했고.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릴 수 있게 했다.
때문에 모두가 아티팩트 앞으로 달려가고 싶어 했다.
그곳은 주신의 빛이 닿는 자리였다.
싸운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모두가 아티팩트를 공격한다면.
누가 마족을 막을 것인가.
누가 적의 키스크를 부술 것인가.
누가 계속해서 부활하는 검은 날개를 늪지대에 붙잡아 둘 것인가.
마족을 막지 못하면 아티팩트를 공격할 수 없다.
적의 키스크를 남겨두면 죽인 마족이 계속해서 되살아난다.
결국 누군가는 아티팩트에서 등을 돌려야 했다.
주신의 축복을 포기하고.
빛이 닿지 않는 늪지대로 향해야 했다.
그들은 아티팩트에 손을 대지 못한다.
아티팩트를 공격한 시간도 남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마족을 막아도.
아무리 많은 키스크를 부숴도.
아무리 처참하게 죽고 다시 일어나도.
주신은 그들의 희생에 축복으로 화답하지 않았다.
축복은 아티팩트 앞에 남아 있던 자들에게 내려왔다.
단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누군가에게 축복을 포기하라고 명령해야 했다.
⸻
“늪지대 후미에 마족의 키스크가 수십 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부관이 지도 위의 검은 표식을 가리켰다.
“아티팩트가 활성화되면 저곳에서 마족이 계속 부활할 겁니다.”
“알고 있다.”
단장이 짧게 대답했다.
“우주 레기온 전인원 늪지대 입구로 집결한다.”
부관의 손이 멈췄다.
단장은 지도 위 늪지대 후미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전부 늪지대 후미로 돌린다.”
“전부 말입니까?”
“아티팩트 활성화 오 분 전.”
단장의 손가락이 검은 표식 위를 천천히 훑었다.
“송곳처럼 파고든다.”
“하지만 우리의 키스크를 늪지대 입구를 비워두면 이전쟁은 불리해집니다“
“그곳엔 그래도 천족이 있다.”
단장이 말했다.
“죽으면서 달려들어간다.”
지휘실 안이 조용해졌다.
“사지가 찢겨도 앞으로 간다.”
“쓰러지면 키스크에서 부활한다.”
“다시 달려간다.”
“마지막 하나까지.”
단장의 손가락이 가장 깊숙한 곳에 표시된 검은 키스크 위에서 멈췄다.
“모두 부순다.”
부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명령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티팩트를 공격할 기회도.
주신의 축복을 받을 기회도.
전부 포기하라는 명령.
오직 천족의 승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고.
다시 죽으라는 명령이었다.
“모두 죽기만 할 뿐입니다!.”
부관이 힘겹게 말했다.
단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얻는 것은 없을 것이다.
승리하더라도 축복은 다른 이들의 몫이다.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몇 번 죽었는지 기억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 않으면.
오늘의 전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다.
단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천족이 슬리하지 않느냐”
“레기온 전 인원 집결!!.”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
수정구 위의 네 개의 불빛이 흔들렸다.
잠시 뒤.
푸른 날개를 펼친 데바들이 하나둘 지휘실 밖으로 향했다.
누구도 자신이 어떤 임무를 맡게 될지 묻지 않았다.
누구도 축복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단장은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오늘도 저들은 가장 먼저 죽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다시 검은 날개를 찾아 달려갈 것이다.
몸이 찢기고.
기억이 닳고.
축복을 잃으면서도.
승리를 위해 끝없이 되살아날 것이다.
단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정구 위로 번지는 푸른 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신이시여.”
“어째서 가장 희생하는 자에게는.”
“축복을 내리지 않으십니까.”
아티팩트 활성화까지 남은시간 10분.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축복받지 못할 자들은.
이미 죽으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