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1857-1920)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허조의 후손이지만 그가 태어났을 당시 이미 가세가 어려워 어려서 줄곧 부모와 농사일에 진력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후 줄곧 망국의 한을 품었던 그는 일본인들의 한국 이주가 늘어나 조선인의 이권이 침탈하는 상황에 분개하여 1918년 8월경 군위군 의흥면으로 통하는 마을 근처 도로 곁에 세워진 비석에 다음과 같은 격문을 붙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충성이란 곧 목숨을 다하고, 마땅히 힘을 다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도(道)와 임금을 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다르지 않는데,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기겠는가. 너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나라 일의 주인이 되었으니, 나라 잃은 백성이 어찌 아프지 않으며, 너희들이 어찌 원수가 아니겠는가. 너희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지만 우리에게 역량이 없어 어찌해볼 수 없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고종을 모실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낼 계획으로 터를 고르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소위 보안법 위법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20년 4월 22일 만기출옥 후 3일 만인 24일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고향 마을인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효의공 허석 의사 순국 기적비(孝義公許碩義士殉國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 출처 꺼무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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