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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핵심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이렇다 저렇다.

Jinun
댓글: 35 개
조회: 2644
추천: 31
2026-08-28 13:10:57


전대 이후 축제여야할 분위기로 봐서는 무슨 아사리판 같습니다.

존나 개통쾌합니다. 
내 말 안듣다 지지율 떨어지는 걸 보며 쌍수를 들고 춤이라도 추고 싶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까?
글쎄요.

국힘과 그 지지자들에게 공격당한 건 훈장이었습니다. 
좌익, 빨갱이, 간첩,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 저능아, 좌빨 탈출은 지능순, 뭐 별의 별 멸칭이 다 있었겠지요.
다만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대척점에게 맞는 건 예상된 일이고, 
상처는커녕 내 가치관이 그들과 온전히 다르다는 확인이었습니다. 
맞을수록 선명해지는 종류의 매이자 일종의 상입니다.
오히려 가열차게 맞을 수록 오르가즘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동지라 믿었던 자들, 내 의지를 대의한다고 믿었던 자들에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명, 반역, 신천지, 반란군이라 불러줄 때는 다릅니다. 
그건 논쟁도 토론도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믿고 30년을 서 있었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생깁니다. 
상처의 깊이가 다른 게 아니라 종류가 다릅니다.

성장을 위해 약자의 희생이 가능하다는 쪽과, 희생을 의도할 수 없다는 쪽은 물과 기름입니다. 
절대 같이 못 갑니다.
그러나 희생은 어차피 발생하니 최소화하자는 쪽과, 
발생한 희생은 반드시 제도로 보상해야 한다는 쪽은 같은 가치관 안의 방법론적 차이일 뿐입니다. 
얼마든지 같이 갑니다. 
드잡이를 하든, 혀를 섞든, 싸우면서도 같이 갑니다.


지난 대선의 공통분모는 분명했습니다. 
내란 세력에 대한 엄정한 단죄, 그리고 그 부역을 일삼은 검찰 권력의 소거. 
이것은 정책 항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인 민주주의가 협상 대상이 아님을 천명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니라면 반증하십시오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그런데 전당대회를 전후로 이런 말들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검찰개혁은 신중해야 한다. ' '검찰개혁은 국민이 피해를 본다.' '이제는 국힘과도 현실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존나게 많이 듣던 문장입니다.

친일 청산하면 누굴 데려다 일을 시킬 건가. 
청산했으면 나라 망했다. 
과거는 잊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자.
80년 전에 이 말이 통했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문장을 우리 편이 하고 있습니다.


검찰개혁이 과하다는 분들을 위해 대표적인 것만 짧게 정리하겠습니다.
박정희 때 인혁당 재건위 사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8명에게 사형을 확정했고, 18시간 뒤 전원 집행됐습니다.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고 자백은 고문으로 받아냈습니다. 
2007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 32년 걸렸습니다.

전두환 때 부천서 성고문 사건 
1986년 검찰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 성적 모욕 행위는 근거가 없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가해자는 불기소, 피해자는 징역 1년 6개월
6월항쟁으로 정권이 흔들리고 나서야 재수사가 이뤄졌고 가해자는 징역 5년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진실을 몰랐던 게 아닙니다. 
정권이 안 흔들렸을 뿐입니다.

노태우 때 유서대필 사건 
1991년 강기훈은 친구의 유서를 대신 써줬다는 혐의로 기소돼 3년을 살았습니다. 
유일한 증거였던 필적감정서는 위조였습니다. 
2015년 무죄. 
24년 걸렸습니다. 
검찰과거사위는 검찰이 불리한 증거는 감추고 유리한 것만 골라 감정을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설계였다는 뜻입니다.

김영삼 때 전두환(박정희 다음의 개새끼) 기소 
문민정부입니다. 
1994년 10월 검찰은 12·12를 기소유예했고, 1995년 7월 5·18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했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5공화국이라는 새 정권을 창출해가는 정치적 행위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 문장을 기억하십니까? 이 희대의 개소리를? 
전두환의 검찰이 한 말이 아닙니다.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의 검찰이 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들과 내가 가장 아플 노무현 때의 논두렁 시계사건 
2009년 5월 13일, 권양숙 여사가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가 나갔습니다. 
기자는 리포트에서 검찰이 밝힌 내용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열흘 뒤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논두렁이라는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대검은 자료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아직도 노무현에 대한 10대와 20대들의 조롱의 정서가 공기처럼 떠돌아 다닙니다.
정권은 다섯 번 바뀌었습니다. 
검찰은 단 한 번도 안 바뀌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나은 이야기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강기훈 사건은 올해 5월 파기환송심으로 35년 만에 모든 법적 판단이 끝났습니다. 
결론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검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부당하게 공소를 제기했다는 주장은 끝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필적감정서가 위조였다는 건 인정됐는데, 그걸 들고 사람을 감옥에 보낸 조직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변호인단은 진실을 기다려온 피해자에게 또 하나의 절망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무려 35년입니다.

논두렁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사팀은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됐고 무혐의를 받았습니다.
부천서도, 인혁당도 다르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무죄는 수십 년 뒤에 나왔고, 그 사람들을 법정에 세웠던 이들은 대개 아무 일 없이 살았습니다. 
몇몇은 승진했고 몇몇은 로펌으로 갔습니다.

요즘 경찰을 향한 비토 정서가 강합니다. 사건들을 보면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경찰이 사고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감찰이 붙고, 수사를 받고, 다음 날 기사가 나고, 관리자가 국회에서 불려나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사고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35년이 걸리고, 그러고도 조작기소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경찰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건 검찰이었습니다. 
검찰을 기소할 수 있는 건 검찰뿐이었습니다.
경찰이 검찰보다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경찰은 통제를 받았고 검찰은 안 받았습니다.
그 차이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없애자는 것이 검찰개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젠 남의) 당은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올해 7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논의되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아홉에서 열 명가량의 의원이 신중론을 이유로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에 반대했습니다. 
원내지도부는 결론을 유보하고 숙의 기간을 뒀습니다.
낯익습니까. 
2022년 검수완박 때도 정확히 같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국민이 빠진 개혁이 되면 안 된다는 속도조절론이 나왔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반대 서한이 돌았습니다. 
그때 그 반대에 반대했던 한 사람은 결국 당을 떠나 개혁신당으로 갔습니다.
4년이 지났고, 대통령이 바뀌었고, 내란까지 겪었습니다. 
그런데 문장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법이 통과된 뒤인데도 당 안에서는 형소법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기류가 흐릅니다. 
대표는 검찰이나 경찰 어느 한쪽 편도 들지 말라고 합니다.
어느 한쪽 편도 들지 말라. 균형 잡힌 말처럼 들립니까.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편을 들었습니다. 
그 편을 들겠다고 해서 표를 준 겁니다.

그리고 형소법 통과 후
7월 31일 본회의에 재석 178, 찬성 175, 반대 2, 기권 1.
법이 통과되자 민주당은 논평을 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남용해 온 검찰을 개혁하라는 국민의 명령에 국회가 응답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문장입니다. 
다만 3주 전 그 명령에 브레이크를 밟았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회의록과 표결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름을 여기 적지 않겠습니다. 
궁금한 분은 직접 찾아보시면 됩니다. 공개된 자료입니다.
말리던 사람이 다 되고 나서 앞줄에 서는 것. 
그게 신뢰를 바닥에 처박는 일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설전과 규정은 분명히 다릅니다.
당내의 지지자들끼리 오가는 험한 말은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개인에게는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걸 관철하려 할 때 논증보다 힘이 쉬운 건 어디서나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이 지지자를 규정하는 건 궤가 다릅니다. 
개인의 욕설에는 권한이 없고, 당의 분류에는 제도가 따라붙습니다. 
개인이 누굴 가짜라고 부르면 그건 단순히 욕입니다. 
당대표가 부르면 그건 명단입니다. 그리고 낙인입니다.

신뢰.
내란을 일소하고, 군부와 자칭 애국 보수에 창녀처럼 기생하며 
지배이념의 진리가 담긴 법 원리를 도구로 써온 정치검찰과 법 기능공들을 해체하는 것.
검찰이 그런 적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위에 다섯 개만 적었습니다. 
더 필요하시면 말씀하십시오.
그렇게 시작했으면 그렇게 끝내는 것이, 신뢰와 표에 정당이 보답하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약속은 일개 범부가 어겨도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사안입니다.
그렇다면 신뢰를 깨는 대통령과 당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Lv14 Jin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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