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어 하나가 참 많은 것을 품습니다.
지지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정의라는 단어 하나만 해도 각자가 가진 기준과 범위가 제각각일 겁니다.
저는 이렇게 나눕니다.
인간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영역이고, 지지는 공적 영역입니다.
내가 바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인가.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키맨이 될 수 있는 사람인가.
이 한쪽의 지지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다른 한쪽의 지지가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범위도 의미도 다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가치에 지지를 보내느냐, 사람에 지지를 보내느냐입니다.
그리고 두 지지는 실패했을 때 갈라집니다
평상시에는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그 가치를 실현하고 있을 때는 둘이 겹쳐 보이니까요.
갈라지는 건 그 사람이 그 가치를 배신했을 때입니다.
가치를 지지한 사람은 그때 그 사람을 버립니다.
지지의 대상이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조건이 사라지면 지지도 사라집니다.
배신이 아니라 계약 종료입니다.
사람을 지지한 사람은 그때 가치를 버립니다.
사람은 남아 있어야 하니까, 남기 위해 기준을 옮깁니다.
원래 그렇게 급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그리고 현실을 봐야 한다고.
서서히 가는 거라고.
그래서 같은 사건을 두고 한쪽은 왜 약속을 안 지키냐 묻고,
다른 쪽은 왜 지금 그 얘기를 꺼내냐 묻습니다.
어느 쪽도 그냥 나쁜 건 아닙니다.
감히 어느 쪽의 지지를 옳다 그르다 나누고싶지도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지지를 무조건 낮게 볼 일은 아닙니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합니다.
제도만으로 굴러가지 않고,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하고, 그 사람이 무너지면 가치도 같이 무너집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사람을 지킵니다.
사람이 살아남아야 가치도 산다는 판단은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노무현을 지킨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때 사람을 지킨 것이 곧 가치를 지킨 것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그 판단이 언제 끝나느냐입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이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을 지키는 것이 가치를 포기하는 방법이 됩니다.
그 전환점을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못 알아채는 사람이 있고, 알면서 모른 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래된 문제입니다.
법이 사람을 다스려야 하느냐, 사람이 법을 다스려야 하느냐.
동양에서는 이천 년을 다툰 문제입니다.
법가는 제도를 믿었고 유가는 사람을 믿었습니다.
어진 임금이 있으면 법은 거추장스럽고, 어진 임금이 없으면 법밖에 안 남는다는 게 그 다툼의 요지였습니다.
사실 서양에서도 별반 다를건 없습니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니 제도로 묶어야 한다는 쪽과, 좋은 지도자가 결국 좋은 정치를 만든다는 쪽이 계속 부딪쳤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택하면서 내린 결론은 전자입니다.
누가 그 자리에 앉든 제도가 버텨야 한다는 것.
그래서 임기를 두고, 권력을 나누고,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지지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도를 믿기로 해놓고 지지는 사람으로 하면, 그건 앞뒤가 안 맞습니다.
우리가 검찰을 문제 삼은 것도 정확히 여기였습니다.
어떤 검사가 앉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구조.
좋은 검사가 오면 괜찮고 나쁜 검사가 오면 망하는 구조.
그게 싫어서 구조 자체를 바꾸자고 한 겁니다.
그런데 그 개혁을 맡긴 사람에 대한 지지가 인치라면, 우리는 인치로 법치를 만들려 한 셈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정당은 도구입니다.
도구가 망가지면 바꾸거나 버립니다.
그래서 탈당이 가능하고, 사표도 던질 수 있고, 신당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냉정해 보이지만 그만큼 정당에 긴장을 줍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지지자가 많은 정당은 함부로 못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정당은 집입니다.
집은 못 버립니다.
그래서 남고, 남았으니 감싸고, 감싸다 보니 밖에서 오는 비판이 다 공격으로 보입니다.
충성도가 높은 만큼 정당은 편해집니다.
안 지켜도 안 떠나니까요.
둘 다 필요하다는 말은 맞습니다. 저 역시 둘 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정당 입장에서는 후자가 편합니다.
어떤 조직이든 조건 없는 지지를 선호합니다.
그래서 정당은 늘 후자를 늘리려 하고, 전자를 불편해합니다.
전자를 부르는 이름도 그때그때 바뀝니다.
강성, 코어, 원리주의자, 그리고 요즘은 반란군...(고민하다 넣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저는 제가 어느 쪽인지 압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 자체가 답이겠지요.
그런데 아직 확신은 없습니다.
제가 30년을 남아 있었던 건 가치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그 집이 익숙해서였을까요.
지금 떠나겠다고 하는 건 가치가 배신당해서일까요, 아니면 사람에게 실망해서일까요.
저는 제가 전자라고 믿지만, 인간은 자기 동기를 가장 늦게 압니다.
그리고 반대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 저를 그리고 비토하는 분들을 반란군이라 부르는 분들도 자기가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믿을 겁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구분합니까?
저는 하나밖에 못 찾았습니다.
내 편이 잘못했을 때 무엇을 하는가.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같은 기준을 꺼냅니다.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다른 기준을 꺼냅니다.
기준을 두 개 가진 사람이 뭘 지지하고 있는지는, 본인만 모릅니다.
미친 소리겠지만 공의 영역에서 원칙을 우선하는 현실은 없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