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의 비스마르크급 전함 1번함 비스마르크
1944년의 비스마르크급 전함 2번함 티르피츠
함명 | 기공 | 진수 | 취역 | 비고 |
| 1936년 7월 1일 | 1939년 2월 14일 | 1940년 8월 24일 | |
| 1936년 11월 2일 | 1939년 4월 1일 | 1941년 2월 25일 | 1944년 11월 12일 격침 |
1번함 비스마르크는 영국 수송선단을 박살내기 위해 출격해 영국 해군의 자존심을 굉침시키고 동행하던 신형 전함 1척도 중파시켰으며 적 수상함대와 전투를 벌여 마지막까지 치열히 싸웠을 뿐 아니라 영국 해군에게 자매함 티르피츠에 대한 공포와 과대평가를 심어주었다.2번함 티르피츠는 비스마르크가 심어준 과대평가를 통해 노르웨이 항구를 전전하면서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북해에 연합군 해군 전력을 상당히 묶어두었으며 뢰셀스프룽 작전(Operation Rosselsprung)에 참가해 수송선단 PQ-17을 궤멸시키는 데 일조했다.
비록 자신이 직접 수송선단을 포격하지는 않았지만 티르피츠를 놓쳐버린 영국 해군이 수송선단을 산개시키면서 유보트와 항공기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국 해군은 대부분의 소련행 물자를 이란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서 보내야
했으며 티르피츠를 견제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게 했고, 결국 영국 공군이 톨보이를 끌고 온 뒤에야 가라앉힐 수 있었다.다만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영국의 착각과 헛발질이 주요한 성공요인이었다. 사실 비스마르크 추격전 자체는 나치 독일 해군 수뇌부의 작전 입안부터 마무리까지 모조리 실패한 사례이며 실제 전투에서도 대공사격의 미흡성 등으로 인해 승조원들의 전투능력도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영국 해군이 무리하게 낡은 순양전함과 함께 마무리 공사도 안된 최신예 전함을 같이 내보낸다든지, 무리한 근접전 시도로 인한
피해가 컸으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영국의 대실책이 듣보이는 전투였다.
교전 후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함장 존 카터럴 리치 대령이 보고서에 첨부한 후드 격침 당시의 목격상황을 직접 그린 스케치
( 영국의 관점에서는 이런 과대평가는 후대에 반면교사를 삼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사례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군대의 특성상 실수하면 전략적, 전술적 요소에서 큰 변동과 반동을 불려오며 특히 전함 같은 경우는 치명적인 실수 하나이거나 다수의 실수가 모이게 되면 전투교리가 말 그대로 꼬이기 때문이다. 일본제국 해군의 점감요격작전이라든지 진주만 공습 등과 같은 경우를 봐도 이런 실수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다음 실수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며 전쟁에서는 그 실수로 국가의 존속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국이 스스로 실수한 것에 대한 과대평가는 자기들의 실수를 숨기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후대에 이런 실수가 곧 큰 피해로 되돌아온다는 교훈으로 남기기 위함이기도 하다.)란 말도 있지 말입니다.
비스마르크의 침몰에 대해 영국 측은 '격침'을 주장한 반면 독일 측은 '자침'을 주장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비스마르크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생존한 승조원들의 증언을 통해 은근슬쩍 자폭설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비스마르크의 잔해를 조사한 결과 수문이 열려있는 것이 확인되기는 했고, 승조원들의 증언을 참고할 때 지침 시도가 실제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자폭설을 따르더라도 방어구조가 '최대한 격침당하지 않기' 컨셉이라 격침당하지 않았을 뿐, 최후의 전투에서 영국 전함 '킹 조지 5세'와 '로드니'에게 얻어맞고 44분의 교전만에 앞서 언급한 얇은 장갑을 가진 주포탑과 바벳이 박살 나면서 모든 포탑이 파괴되었으므로 이미 전투불능 상태였다.
이후로는 단순히 두들겨맞았는데, "최대한 거리를 줄여가며 두들겨패는" 독트린에 충실히 따르는 영국 전함 두 척이 근접거리로 너무 접근한 탓에 현측만 죽어라 포격한 덕분이었다.
20km 이상의 거리에서 갑판을 두들겼으면 비스마르크가 저렇게 전설로 남지도 못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상황에서 영국 해군이 비스마르크를 내버려뒀다고 하더라도 비스마르크가 자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포격전 이전에 비스마르크는 뇌격기의 공격으로 키가 부러지고 꺾여서 방향전환을 할 수 없는 신세였기에 격침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며, 자침시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격침이라고 봐야 한다.
후드가 운 좋은 럭키샷(?)에 당한 건 물론이거니와, 당대 신예 전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마저 두들겨패 쫓아내, 영국 해군 입장에선 진주만 공습급으로 치욕스러운 패전을 안겨준 데다가, 당시 영국 수상인 처칠이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노이로제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영국의 비스마르크급에 대한 집착은 비스마르크가 격침되고, 여러 번의 공습으로 이미 앉은뱅이가 된 2번함 티르피츠를 초중량 항공폭격으로 항구에서 뒤집어 버린 후에야 해소되었다.
(뒷태샷이 어두워서 말입니다 항구를 변경.)
그동안 모아둔 토큰으로 오늘 진수한 비스 41이지 말입니다.
정규트리 비스와 차이점이 스킬과 주포 집탄과 수동으로 부포 사용 정도? 골쉽이라는것에 큰 메리트이지 말입니다. 응????????????
(미 전함 뉴저지를 원했으나 매일 접속이 어려워 적당한 현실과 타협 하였지 말입니다.)
아!!!! 불현듯 생각난 비스41 뽑을려고 현금 투자한 오징어 아재요 비스41 구입했나영?? 아재~ 응답을
쉽린이 일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