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당한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사과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한국 사건 하나만 봐서는 부족하다. 지난 7월부터 석 달 사이, 젤렌스키 대통령실은 같은 방식으로 세 번 사고를 쳤다. 자기 국방장관을 잘랐다가 전국 시위를 불렀고, 헝가리를 멋대로 회원국이라 발표했다가 총리에게 공개 망신을 당했으며,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유엔 연설에서 터뜨려 한국 대사가 귀국하게 만들었다.
세 사건은 겉보기에 전혀 다른 일이다. 하나는 내각 인사, 하나는 지역 협력체, 하나는 포로 송환이다. 그런데 사건이 흘러간 순서는 똑같다. 먼저 발표하고, 상대가 반발하면 놀라고, 사과 대신 "오해"라고 부른다. 이 글은 그 패턴을 페도로우 경질과 카르파티아 8 사건으로 보여주고, 지금 우크라이나가 어떤 처지인지 설명한다.
국방장관을 자르고 총사령관까지 잃다
미하일로 페도로우는 올해 35세다. 2019년 젤렌스키의 대선 캠프에서 디지털 선거운동을 맡았고, 28세에 역대 최연소 장관으로 입각해 우크라이나 행정의 디지털화를 이끌었다. 올해 1월 국방장관이 됐을 때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지지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드문 일이다.
성과도 빨랐다. 취임 직후 일론 머스크를 설득해 러시아군의 스타링크 사용을 끊었다. 미국 전문가는 이를 러시아군 지휘통신에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5월에는 드론으로 러시아군 보급차량을 사냥하는 작전을 시작했다. 반면 60세의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보병과 포병 중심의 구소련식 지휘를 선호했다. 젊은 기술관료와 늙은 장군이 군대를 어떻게 바꿀지를 두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7월 15일, 젤렌스키는 군 수뇌부 회의 직후 페도로우를 경질했다. 이유는 국방부와 군 지휘부의 갈등이었다. 집권당 의원들조차 충격을 받았고, 한 여당 의원은 배신처럼 보인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키이우를 시작으로 최소 16개 도시에서 시위가 열렸다. 전시 국가에서 장관 해임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진 것이다.
젤렌스키는 엿새 만에 시르스키마저 해임했다. 이어 페도로우에게 네 가지 복귀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페도로우는 국방장관 복직만 받겠다고 버텼고, 영상 연설에서 선거를 촉구했다. 결과적으로 젤렌스키는 장관과 총사령관을 둘 다 잃고 정치적 경쟁자 하나를 얻었다. 10월 초 여론조사에서 페도로우는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 부다노우 대통령실장과 함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된다.
8개국 협력체라더니 7개국이었다
9월 18일,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서부 휴양지 부코벨에서 '카르파티아 8'을 출범시켰다. 카르파티아 산맥을 끼고 있는 루마니아·세르비아·폴란드·슬로바키아·체코·오스트리아·헝가리와 EU가 함께하는 경제·안보 협력체라고 했다. 폴란드 총리, 세르비아 대통령, 루마니아 대통령이 직접 왔으니 출발은 그럴듯했다.
그런데 회의장 사진을 보면 이상했다. 탁자에 놓인 명패는 7개뿐이었고, 참가국 국기 가운데 헝가리 국기만 없었다. 헝가리는 키이우 주재 대사대리를 참관인으로 보냈을 뿐, 공동선언에 서명하지 않았다. 젤렌스키는 이튿날에도 헝가리를 회원국으로 불렀지만, 영상에서 헝가리 쪽 얼굴은 한 명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석유였다. 정상회의 부대행사에서 헝가리 정유사 MOL이 우크라이나 국영 나프토가스와 양해각서를 맺었다. 헝가리 국경 지대에 우크라이나용 연료 저장시설을 짓는다는 내용이었다. 헝가리 국민은 이 소식을 우크라이나어 뉴스로 먼저 알았다. 야당이 된 오르반 전 총리의 피데스당이 즉각 공격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폭격하는 전쟁에 헝가리가 스스로 과녁이 되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페테르 마자르 총리는 5월에 오르반을 꺾고 집권한 친유럽 성향 정치인이다. 6월에는 젤렌스키와 헝가리계 소수민족 권리 협정을 맺어 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냈다. 그런 그조차 의회에서 선을 그었다. "초대는 받았지만 가지 않을 이유가 충분했다." 저장시설도 자기 정부에서는 짓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우크라이나의 반응이 사태를 키웠다. 시비하 외교장관은 헝가리의 "불필요하게 대립적인" 발언에 놀랐다며, 오르반은 갔지만 그의 방해주의는 살아 있다고 썼다. 한 시간 뒤 마자르 총리가 그 게시물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 동의 없이 회원국이라 부르는 건 "옆 마을에서 축구팀을 만들었는데, 서로 모르지만 네가 팀원이니 공을 가져오라"는 것과 같다는 비유였다. 외교장관의 글에 총리가 댓글로 응수하는, 외교 교과서에 없는 장면이었다.
상대의 사정을 보지 않는다
세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공통점이 보인다. 상대에게도 국내 정치가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이다. 결정을 발표하기 전에, 그 결정을 받아들일 쪽이 어떤 처지인지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헝가리에서는 마자르가 오르반을 막 꺾은 참이었다. 우크라이나에 가까워 보이는 순간 야당이 물어뜯는다. 그런 총리를 동의 없이 회원국이라 발표하고, 저장시설 계약을 우크라이나 쪽에서 먼저 공개했다. 장관과 총사령관의 충돌을 수습하려다 국민 여론을 읽지 못했고, 시위가 터지고 나서야 총사령관을 바꿨다.
왜 이러는가. 분석가들이 꼽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전시 공보의 관성이다. 젤렌스키는 4년 넘게 연설과 SNS로 국제 지원을 끌어내는 데 집중해왔다. 북한군 포로 공개도 북한 파병의 위험을 드러내 지원을 얻으려는 계산이었다는 게 관측통들의 해석이다. 홍보 효과를 먼저 생각하면 상대국의 사정은 뒤로 밀린다. 둘째, 수습 능력이 없어졌다. 헝가리 사건이 터졌을 때 EU 집행위원회는 이미 3월에 젤렌스키를 공개 질책한 적이 있었다. 오르반 총리의 주소를 군대에 넘기겠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폴란드 대통령은 여름에 젤렌스키의 훈장을 박탈했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에 2차대전 때 폴란드인을 학살한 조직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가장 우호적인 이웃들과 차례로 부딪치는 중이라, 새 사고가 나도 변호해 줄 나라가 줄어든다.
우크라이나 언론이 더 매섭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한국 사건을 다룬 기사 첫 문장에 "우크라이나가 또 다른 파트너를 화나게 했다"고 썼고, 이번 일을 젤렌스키 대통령실의 연이은 외교 실수 목록에 넣었다. 페도로우 경질 때는 한 언론인이 이를 지난해 반부패기관 무력화 시도와 같은 선상에 놓았다. 둘 다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고, 국가와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젤렌스키는 위태로운가. 숫자로 보면 깎이고 있지만 아직 1위다. 10월 초 우크라이나 여론조사기관 레이팅그룹 조사에서 젤렌스키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53%였다.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은 64%였다. 지난 4월 58%, 그 전 62%에서 계속 내려온 수치다. 9월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 조사에서는 53%가 젤렌스키는 이번 임기로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현 정부에 대해 실망을 느낀다는 응답은 44%, 수치를 느낀다는 응답은 33%였다. 그래도 가상 대선 1차 투표에서는 젤렌스키 22.9%, 잘루즈니 20.2%로 근소하게 앞선다.
국내보다 급한 것은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들어 러시아와 경유 공급 거래를 맺고, 이를 비판한 젤렌스키를 향해 우크라이나에 새 대통령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보 지원 중단까지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독일·폴란드가 일제히 젤렌스키 지지를 밝혔지만, 이제 젤렌스키의 버팀목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과 전시 정통성뿐이다. 그 유럽의 이웃들과 차례로 부딪치고 있다는 점에서, 세 사건은 사소한 실수가 아니라 자기 발밑을 파는 일이다.
이 처지가 한국 사건의 배경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비공개 합의는 없었다"고 이미 공개적으로 말했다. 지금 사과하면 그 말이 거짓이 된다. 그래서 시비하 외교장관은 비밀유지 요건을 단계마다 다르게 해석했을 뿐이라며 사안이 종결됐다고 선언했다. 헝가리에도 사과하지 않았고, 페도로우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미국이 흔들고 안에서는 지지가 빠지는 대통령에게, 사과로 자기 말을 뒤집는 일은 세 번째 전선에서 지는 것과 같다. 한국이 받은 침묵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궁지에 몰린 대통령실이 모든 상대에게 똑같이 내놓는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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