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이슈 갤러리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기타] (220,284)=1?.. 2?.. 0!!

아로새기다
댓글: 4 개
조회: 322
추천: 1
2026-11-06 19:28:51
어린시절 처음 약수를 배우던 때였죠.
24의 약수를 적으라고 하면 1부터 차례로 찾아내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다 적고 나서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싫었죠.
1, 2, 3, 4, 6, 8, 12, 24
이렇게 적고 나면 분명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정말 다 적은 걸까? 혹시 하나를 빠뜨린 건 아닐까?
답을 적는 것과 답이 맞다고 확신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였어요.

그래서 궁금했죠.
방법이 없을까?
적어도 약수가 총 몇 개인지 알 수만 있다면,
내가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신할 수 있을 텐데.
이 질문의 답은 다음해에 경우의 수를 배우고
또 몇 년이 지나 소인수분해를 배우고 나서야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라고 이해했죠.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것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라는건 저한테 중요한 가치관으로 남게 되었어요.

그리고 몇 년 동안 머릿속에 약수가 가득했으니
자연스레 눈길이 가서 머릿속에 남는 것들이 있었죠.
완전수
부족수
초과수
그리고 친화수
그렇게 220과 284는 자연스레 기억에 남게 됐어요.
220의 진약수를 모두 더하면 284가 되고,
284의 진약수를 모두 더하면 220이 되는.
서로의 내부에 상대가 들어 있는 숫자, 그걸 친화수라 부르죠.

그리고 얼마 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알게 됐어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과의 한쪽엔 220을 다른 한쪽엔 284를 적어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사랑의 의식이었다고.
그게 실제 역사인지,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당시의 나에게는 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요.
내 모든 것이 네가 되고, 네 모든 것이 내가 되는.
서로를 향해 닫혀 있는 두 사람.
어릴 때 나는 그런 관계가 정말 어딘가에 존재할 것을 꿈꿨어요.
그리고 친화수는 친구수라고도 불리죠
그런 사람을, 그런 관계를, 꼭 연인의 대상으로 꿈꾼 건 아니에요

그래서 친화수는 저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게 되었어요.
세상 어딘가에 나의 284가,
그리고 내가 220이 되어야 할 존재가 있을 것만 같았죠.
시간이 흘러 청년기에 접어들고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라고요.
이렇게 생각한 후부터
(220,284)=1?.. 2?.. 0!! 이라고 프로필에 써놓곤 했는데,
아는 동생이 “암호에요?” 하길래
친화수에 대해 설명하고 나에게 이런 관계가 한명? 두명?
만나고 싶었지만, 아직 못 만났고 영원히 그럴 것 같다 했더니 
“아하~!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단 말이구나” 하더라구요.
아.. 그건 아닌데 하면서도 뭐라 말하기 힘들더군요.

역시나 더 살아보니 정말 틀렸던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어요.
내가 틀렸던 건 나 자신을 220이나 284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죠
숫자는 변하지 않아요.
220은 언제나 220이고,
284는 언제나 284죠.
반면 사람은 변해요
사람은 하나의 숫자로 정의되지 않아요.
하나의 역할, 하나의 의미로 설명되지 않아요.

친화수는 반드시 초과수와 부족수로 이루어져 있어요.
220은 초과수죠. 자신보다 가진 것이 많은 숫자에요.
284는 부족수죠. 자신보다 가진 것이 적은 숫자에요. 
많다 적다 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기준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지식이나 경험, 노동력일 수도 있죠.
누구나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부족한 채 살아가니까요.
그렇게 둘이 만나 넘침이 없는 관계가 된거죠.

그리고 사교수라는 것도 있어요.
A의 진약수를 더하면 B가 되고, B의 진약수를 더하면 C가 되고,
C의 진약수를 더하면 D가 되고, D의 진약수를 더하면 A가 되는.
그리고 완전수라는 것도 있죠.
숫자 6처럼 자신의 진약수를 더하면 자신이 되는.
사람은 하나의 숫자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요.
누구나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
초과수가, 부족수가, 완전수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이어지고 이어져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사교수 같은 관계도 역시 살아가며 한 번쯤은 만나게 되죠.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이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야.
이런 고백도 의미 있죠.
세상에서 가장 좋은 노래는 이 노래야.
세상에서 가장 존경 할 사람은 이 사람이야.
이런 정의도 의미 있죠.
다만
내가 바로 이 순간 듣고 있는 단 하나의 노래.
그리고
내가 바로 이 순간 교류하고 있는 단 한 사람.
그 노래가 어떤 노래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위에 써 놓은 의미 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220,284)=1?... 2?... 0!!
이건 나와 사람의 관계 그 자체를 설명하려 만들었지만,
결국 관계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단 한 순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숫자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잘못된 수식이죠.
정답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수정할 일은 없을 거에요
이제 저에겐 질문인 거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괜찮아요.



P.S.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건 아니죠.
아~ 좋네! 하는 순간도 있고,
별 가치 없다 느껴지는 순간도, 잊고 싶은 순간도,
그리고 악몽 같은 순간도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 좋았던 기억이 무덤덤해지기도 하고,
별것 아니었던 순간도, 잊고 싶은 순간도 추억이 되곤 하지만,
악몽 같은 순간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모든 순간을 이야기 할 때
글에 어떻게 같이 담아야 할까 고민했지만,
애써 섞지 않기로 했어요

그냥
하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단락에
또 다른 건 내가 세상을 견디는 단락에
구별해서 넣으려구요.

초 인벤인

Lv91 아로새기다

(220,284)=1?.. 2?.. 0!!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