옜날옜적에 카라촌이라는 작고 조용한 농촌이있었드랬어요.
그 촌은 젊은 일손이 늘 부족했습죠. 하지만 몇몇 마을에서는 끝없는 품종개량과 연구로 대도시 못지않은 성과도 거두는 기업형 농장과 거부들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하루하루 소일거리로 연명하는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그마저도 일손이 모자라 전 재산을 처분하고 큰 도시에 노동자로 떠나가는일들이 자주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심하나는 정말 좋았던 카라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고을을 관대한 카라촌 이라고 불렀습니다.
밤이면 읍내방송에서 늘 이런저런 사람사는 사연들을 서슴없이 방송하며 꽃을 피웠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국가에서 대도시로 이민정책을 지원하는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때에 기회를 놓치지않은 많은 역량있는 젊은 일꾼들이 농사를 때려치고 감옥과도 같던 카라촌을 훌쩍 떠나버리고 맙니다. 이를 카라촌브레이크라고 불렀죠.
하지만 정들었던 이웃과 추억들을 차마 버리지못한 소수의 젊은이들과 노인들만이 카라촌을 쓸쓸히 지키게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릿고개 못지않은 혹독한 가난과 궁핍한 환경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던 농촌에 새로운 개발의 바람이 불게되었습니다. 바로 농촌끼리의 행정구역 병합정책이었죠.
사람들은 여기저기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몇몇마을들은 축제분위기에 풍악을 울리며 신나게 춤도 췄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많은 인구의 유입으로 인한 빠른 산업화로 대도시로의 도약을 꿈꿨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은 같지않았습니다. 농촌과 농촌의 결합은 대도시라는 허무한 꿈을 꾸던 소박한 농민들은 농촌과 농촌의 결합은 또다른 농촌이라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 것이죠.
처음엔 줄촌의 젊은이들과 잘 어울리지못하는 카라촌젊은이들이 서로간의 배척하는 분위기도있었지만 이내 파워농촌으로 전락해버린 같은 처지에 동질감을 느끼며 자연스레 융화되어 갔습니다.
젊은이는 여전히 부족했고 노인들은 일을 할수있는 여력이없었으므로 동남아,연변등에서 많은 값싼 일꾼들이 유입되어 약초와 광물들을 미친듯이 채집,채광하여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소일거리로 연명해오던 몇몇 소상인들은 파산을 면치못하고 옷한벌 변변히 사 입지 못하여 취직은 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속에도 기회는 있는법. 값싼 노동력의 짱깨들이 제공하는 물품들을 대량 구매할수있었던 몇몇 거상들은 경매장을 독점하기 시작하며 막대한 이윤을 챙기기 시작했드랬어요. 줄촌에 우는 어린아이마저 그 이름을들으면 울음을 멈춘다는
'엔x' 라는 거상이 나타나 소상인들의 씨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도 결국 정부의 외국인노동자 견제정책에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나가고 그동안 일을 하지않고 소비에 익숙하던 많은 줄촌 카라촌 주민들은 갑자기 없어진 공급에 당황하여 여기저기 파산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몇몇 진보적인 젊은이들은 좀 더큰 25인이 함께 짓는 농사를 계획하고 이는 성공을 했고 더많은 인원투입에 더많은 재미와 수확물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농장에 인원부족이라는 대도시에서는 있을수없던 25인 농장하나가 소 농장의 인원난을 초래하는
어처구니 없는 부작용도 생깁니다.
이웃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굶고 병들어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종종 들려옵니다.
이때에 몇몇 젊은이들은 짧은시간에 재미를 볼수있는 사는걱정없는 피라미드(lo?) 에 빠져 줄촌을 영영 떠나버립니다.
이미 떠나버린 그들은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친지, 가족 이웃들은 이 줄촌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날을 기대하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아직도 바라고있습죠.
하....
씁쓸하다...
줄촌+카라촌= 조금 더 넓은 농촌 = 어쨌든 농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