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아트 갤러리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도전아님] Ravel Bolero..

아이콘 Cosmicgirl
댓글: 7 개
조회: 2417
2011-10-28 10:44:49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 ~ 1937)

최근 모리스 라벨의 대표작 중 '볼레로(Bolero)'의 이면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이 방영되었었다. 공중파 방송과 방송시간의 한계 때문인지 알맹이는 쏙 빼 먹고 변죽만 울리다 만 꼴 이었다.
멜로디가 169번 반복된다는 둥, 전 세계에서 15분에 한 번 꼴로 연주 된다더라 는 이야기 따위가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별 도움이 될거 같지도 않을 뿐더러 볼레로가 탄생 하게 된 배경과 그 음악이 후에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등에 대해서도 부실하기만 하였다.
또한, 작품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이란 단어는 딱 한번 언급되었을 정도이니 방송을 보고 난 후 '그래서 어쨌다고?'라는 뭥미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나의 걸작? 물론 볼레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볼레로는 음악을 담고 있지 않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다. 마치 이상의 오감도 같은 파격적인 형식의 관혁악곡에 대한 그의 코멘트는 더욱 아리송하기만 하다. 끝을 모르게 반복되는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가 그의 치밀한 계산결과라는 분석에는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이를 두고 세간에는 다양한 해몽이 존재한다.

신화의 구조를 닮았다, 기계화된 현대사회가 창작의 모티브였다, 붕괴된 바벨탑의 나선모양이다, 볼레로는 음악의 종착역이다...
이러한 주장엔 왠지 느낌표는 없고 물음표만 달게 된다.




이것이 볼레로???
1563년 브뢰겔作 [바벨탑]


라벨이 볼레로에 음악 아닌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에 관해서는 나중에 짚어 보기로 하고 볼레로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먼저 알아 보자.
80년대 초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쥴리 앤드류스와 당시 섹스 심볼로 명성이 자자하던 보 데릭이 출연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에로틱 코미디영화 '텐'이 국내에 개봉하였다.당시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나는 그 영화를 금호동의 한 명화의 전당에서 보게 되었는데, 영화는 그저 그랬음에도 오로지 한 대사와 장면만 아직껏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육감적인 여인(보 데릭)이 남자를 유혹하여 침대로 이끌기 전 음악을 틀며 이렇게 속삭이거든...


'최고의 섹스뮤직은 볼레로에요'


들릴 듯 말듯한 타악기 소리로 시작하여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를 끝 모르게 반복하며 점차 고조되다 웅장한 피날레로 끝을 맺는 라벨의 볼레로는 여러모로 성행위를 연상하게 한다. 입김으로 상대의 귓 볼을 간지럽히는 전희, 인체의 모든 수의근을 동원하여 상대를 탐닉하다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과정이 볼레로의 크레센도 전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텐'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보 데릭의 남편이자 감독인 존 데릭은 몇 년 후, 아예 대 놓고 '볼레로'라는 제목의 B급 에로영화를 만들어 자신의 부인을 주연으로 발탁하여 출연시키기도 하였다(존 데릭 감독은 이 영화로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생애 첫 번째(!) 최악의 감독상을 수상한 경력이 말해주듯 대부분 그의 작품을 아는 이가 드물고 나도 본적이 없다, 또한 그의 부인 보 데릭도 최악의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라벨의 볼레로에 녹아 있는 관능적 코드가 이성애자들의 오감에 작용한 흔적은 이렇듯 표면적이며 인류문화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고 보기에는 무리이다.

이에 반하여 이성애자와는 다른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남긴 볼레로와 관련된 족적은 우아하고 섬세하며 방대한 스케일 담겨져 있으며 은밀하고 흥미로운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모리스 라벨은 동성애자였는가?

라벨은 드뷔시와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가였지만 베일에 둘러 쌓인 그의 사생활 때문에 동성애자 쪽에 무게를 두는 사람도 이 물음에 단정하여 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볼레로'의 탄생 과정과, 곡 발표 이후 전개되는 사건과 인물을 더듬어 보면 어느 정도는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또한 그가 볼레로에 담아 냈다는 음악이 아닌 '무엇'이 과연 '무엇'인지도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다 루빈스타인(Ida Rubinstein,1885-1960)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전위적인 여성 무용가 '루빈스타인'이 라벨에게 발레 곡을 의뢰하여 볼레로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화가 고흐 못지 않게 불행한 삶을 살다 간 무용의 신(神) '니진스키'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함을 의미한다.신이 부여한 재능의 한계를 넘어 섰기에 그는 신이라 불렸으며 발레에서 남성무용수(발레리노)의 역사는 니진스키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뚜렷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 십 년은 자라고, 십 년은 배우고, 십 년은 춤추고, 그리고 나머지 삼십 년은 암흑과 침묵 속에 가리어진 육십 평생." 이란 표현이 설명하듯이 신으로서 찬란한 영광을 누린 시간 보다는 정신질환과 가난에 시달리며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결국 비극적인 삶을 고통스럽게 마쳐야만 하였다.

그가 생전에 짧은 천국, 긴 지옥을 맛보게 된 원인을 소속 발레단 '발레 뤼스'를 이끌던 디아길레프와의 강압적인 동성애 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도 발견되고 있지만 니진스키의 생애에서 보이는 여러 해프닝중에는 그가 과연 명백한 이성애자였는지 의문스러운 대목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바슬라브 니진스키 (Vaslav Nijinsky,1890-1950

"나는 무대 연출에 그런 것을 접목시켜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을 한층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하였다.나는 니진스키의 의상을 좋아했다.- 프레디 머큐리"
프레디의 leotard(쫄쫄이)무대 의상은 니진스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니진스키에게 영광과 상처를 안겨 준 디아길레프가 이끌던 '발레 뤼스(Ballet Russe, 러시아 발레단)'에는 볼레로를 의뢰한 루빈스타인이 몸 담고 있었고, (이 쯤되면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그녀는 동성애자lesbian였다) 그녀의 일생에는 발레만큼 큰 영향을 준 연인(戀人) 브룩스 로메인이 있었다.

미술가였던 브룩스 로메인은 남장을 한 여인의 초상화로 자신의 이반적인 성 정체성을 표현하는 작업을 해 왔는데 자신의 이름 마져 여성스러운 본명인 베아트리체를 버리고 중성적인 브룩스로 바꾼 인물이다.

프랑스에서 당대의 수 많은 문화예술계인사, 지식인들과 폭 넓게 교류하며 레즈비언의 색채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브룩스 로메인은 자신과의 결별에 깊게 상심하는 루빈스타인을 위하여 'Weeping Venus’라는 제목의 그림을 남기게 된다.




Weeping Venus 1917 (Brooks, Romaine, 1874-1970)


약 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이런 인물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던 동성애자 루빈스타인이 자신이 구성할 안무에 사용할 곡을 의뢰하기 위해 역시 동성애자로 의심(?)받던 작곡자 모리스 라벨을 찾아 갔다. 그녀는 라벨에게 과연 어떤 음악에 '무엇'을 담아 달라 주문하였겠는가...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라벨은 의뢰인의 주문사항을 무시 한 채 곡을 쓸 수 있었겠는가...

그 해(1928년) 11월. 라벨의 '볼레로'는 루빈스타인의 안무와 여성무용수들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며 1961년 모리스 베자르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볼레로에는 '포르노 그라피'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되고 그 역시 동성애자(게이)였다.


80년대 국내에 TV로도 방영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크켰던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는 실존 인물인 루돌프 누레예프(무용가), 에디트 피아프(샹송 가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자), 글렌 밀러(재즈 뮤지션) 4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대작이다. 이 영화는 모리스 베자르의 동성연인이자 휘하 발레단원이었던 '조르주 돈'에 의해 새롭게 안무된 볼레로가 남성미와 동성애적 관능미를 뿜어내며 강렬한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이전 루빈스타인에 의해 창작된 여성 군무에서 남성 군무로의 성 전환과, 안무가의 성적취향의 연관성을 떼어 놓고 보기에 어색함이 느껴짐은 그들의 삶과 예술을 지배했던 원초적 에너지의 근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1981 (원제: Les Uns Et Les Autres)




무용가 조르주 돈은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기이하게도 연결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출생과 에이즈로 사망한 연도가 거의 비슷하며, 프레디 역시 발레를 사랑하였고 두 사람 모두 게이였다는 점(내가 이전 글에 프레디는 이성애자도 양성애자도 아닌 모호한 성적정체성을 지녔었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편의상...).






그리고...프레디는 생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스위스의 몽트뢰(Montreux)를 자주 찾았고, 사후에 그의 동상이 그 곳에 세워질 만큼 프레디에게는 각별한 곳이었다.

조르주 돈의 동성연인이자 그의 후견인과도 같았던 모리스 베자르 역시 프랑스인이지만 거의 평생을 스위스에서 지낸 그가 아름다운 몽트뢰의 호숫가를 생소한 곳으로 남겨 둘 이유가 있었겠는가.

두 명의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아티스트, 스위스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호숫가, 자신의 연인과 흡사한 또 한 명의 동성애자(프레디).

한때 난 섹스를 위해 살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신기(?)한 일이다. 한때 난 극도로 문란했고 모든 면에서 무절제 했지만...(프레디 머큐리)

프레디는 천상의 재능만큼이나 넘치는 정욕과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몽퇴르에서 베자르와 마주쳤을 확률을 0으로 놓기에는 만족해 주는 조건들이 따라 주질 않는다. 프레디는 사생활이 노출 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인물이고 모리스 베자르 역시 조르주 돈의 사후에 프레디 추모영상을 보고 그 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밝혔지만...
연인 조르주 돈을 잃은 슬픔으로 다시는 볼레로를 무대에 올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모리스 베자르는 어찌된 영문인지 프레디를 추모하며 라는 작품을 헌정하고 2007년 11월 그의 연인 뒤를 따라 먼길을 떠났다.


참고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50 (나카가와 유스케)
프레디 머큐리 - A Life, in His Own Words edited (Greg Brooks & Simon Lupton)
시베리안님의 블로그 blog.naver.com / wany02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 Lesbian Art Archive






______출처 : 딴지일보 ________

Lv36 Cosmicgirl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갤러리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최근 HOT한 콘텐츠

  • 와우
  • 게임
  • IT
  • 유머
  • 연예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