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피곤해..”
8:45.. 나의 뜨거웠던 밤은 하늘 나라로..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밤새 편의점에서 일을 한 나였다. 잠시 꺼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켜고, 집으로 가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핸드폰이 켜지면서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뭐야..”
문자 오는 소리에 놀라 아는 사람한테 문제라도 생겼나 해서 불안한 마음에 문자를 확인 했는데 주인공은 다름 아닌 피노였다.
[천폭]
[대답하라 천폭]
[대답하라 했다. 씹지 말아라]
[아놔.. 너님 레알 디질래요?]
[혹시 일 하다가 손님이랑 싸워서 경찰서 갔나?]
[내 문자 씹으면 너님 평생 마법사]
[문자 또 씹었으니 너님 흑마법사]
정말 알 수 없는 단어의 연속이었다. 마법사는 뭐고, 흑마법사는 뭐란 말인가.
[왜 그러는데?]
난 답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답장을 보냈다. 버스가 마침 도착하여 자리에 앉았더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잠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다.
[너 왜 내 문자 씹어?]
[아.. 씹은거 아냐.. 일 할때는 원래 꺼놔]
[근데 왜 씹어?]
이 여자가.. 내가 분명히 일 할 때는 꺼놓는다고 했는데..
[씹은게 아니라.. 꺼놓았다고!!]
[응]
내게 돌아온건 짧디 짧아 너무 짧은 응이라는 한 글자였다. 아침부터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 같았지만, 찌루 씨와의 즐거운 만남을 위해서는 참아야만 했다.
[넌 근데 안 자고 뭐하냐?]
[9시인데 자고 있으라고?]
[그것도 그렇군.]
[밤새 그림 그렸다]
의외의 한마디였다. 밤새 뭔가를 집중할만한 사람은 아닌거 같았는데.
[의외라고 생각했지?]
이 여자.. 무섭다..
피노는 밤새 그림을 그렸다. 물론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답장을 기다렸다고 보는게 맞는걸지도 모르겠다. 피노가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샤워를 하러 거실로 나갔을 때 찌루가 씻기 위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여어. 동생”
“응? 언니 앙용”
“씻을거냐?”
“씻어야지.. 하암.. 졸려..”
“언니도 씻어야 하니까 얼른 씻어”
“같이 씻으면 되지 뭘..”
피노는 순간 얼굴이 붉어져서 찌루에게 화를 냈다.
“너! 너! 어떻게 같이 씻자는 말을 할 수 있어!!”
“오바하기는.. 동생 그것도 여동생이 언니한테 같이 씻자는데 뭐가 이상하다고..”
“그..그것도 그렇네..”
“언니 요즘 밤에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야?”
“무슨 무리?”
“어제 밤새 그 남자분이랑 문자라도 주고 받은거 아냐? 큭”
피노는 얼굴이 빨개져서 찌루를 쳐다 보았다. 찌루가 보기에는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 같았지만, 피노는 자기 속도 모르는 찌루에게 화가 났다.
“아냐!!”
쾅!
“뭐야.. 왜 저래..? 싸웠나?”
찌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화장실로 들어 갔다.
난 버스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집에 가면 잠만 자겠지만, 이렇게 알바가 끝난 후 버스에서 잠시 조는 것이 더 행복했다.
[얌마. 천폭]
아.. 제발..
[왜? 자는데 깨우지마]
[자? 집이야?]
[아니. 버스]
[11시까지 도서관으로 와라]
[응?]
[찌루 소개 시켜 달라면서]
방금전까지만해도 쏟아지던 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만난지 이틀 밖에 안된 피노지만, 처음으로 이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오케이!]
[씻고 와]
[응!!]
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날아 갔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도 반겨 주는 사람이 없어 돌아 올때마다 쓸쓸한 이 오피스텔이 왠지 오늘따라 아름답게 보였다. 오피스텔 뿐이 아니었다. 산처럼 쌓인 설거지도, 집 안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들도 아름다워 보였다.
난 엄청난 속도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내 몸 곳곳을 적셨고, 향긋한 비누향기가 내 코를 찌르는 듯 했다. 다 씻고 나왔을 때 시간이 9시 45분. 나의 집부터 아름다운 찌루 씨가 일하는 도서관까지는 어림잡아 15분이면 충분했다.
“크큭. 너무 빨리 가면 좀 남자답지 않은듯 하니 잠시 쉬다 나가볼까?”
난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티비를 켰다. 티비에서 아름다운 아나운서가 오늘의 아침 뉴스를 읽어 주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찌루 씨의 얼굴과 겹쳐 졌고, 마치 나에게 사랑한다 속삭이는 듯 했다.
“천폭 씨. 오늘 날씨는 많이 춥데요. 그러니까 옷 따듯하게 입어요. 그게 싫으면.. 음.. 음.. 감기 걸리지 않게 내가 꼭 껴안아 줄께요”
마치 찌루 씨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아아.. 이런 것이 행복이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망상에 빠져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