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곤한 간 때문이야-]
“아 ㅆㅂ 뭐야.”
욕설과 함께 섀도어진은 깊은 수면에서 깨어난다. 그는 아직 졸리다.
그저 눈만 감은 채 들리는 소리를 향해서 그의 스마트폰을 찾아내고, 반사적으로 록을 풀고, 알람을 껐을 뿐이다.
‘아 그냥 더 잘까, 화장실이나 들렀다가 자야겠다.’
예상하는 화장실의 위치를 향해서 아직도 감긴 눈으로 그는 걸어가고 있다.
그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하체와 무릎 관절에 통증이 밀려온다.
오래 누워서 그런지 허리도 아프다. 너무 피로한 나머지 예상되는 벽에 기대어 갈 생각으로 손을 뻗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허공일 뿐이다.
“어?”
평상시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그제야 눈을 게슴츠레 떠본다.
이곳은 그의 집이 아니다. 사방이 어두움인 낮선 환경. 반대쪽 벽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온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 벽을 향해 걸어간다. 분명 창문일 것이다.
창문을 열자 강렬한 햇살이 모텔방 안으로 쏟아진다. 폰을 확인하니 오전 9시.
“아 내가 미쳤지…….휴.”
뒤돌아보니 빛은 어느새 침대에 누워있는 전라의 여인을 비추고 있다.
그녀는 창문을 등지고 약간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있다.
작은 음향으로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도 자고 있는 모양이다.
자연 빛을 받은 여인의 몸은 결점 없는 백자 같다.
옆으로 누워서 그러한가, 허리와 둔부를 연결하는 라인이 꽤나 격하게 보인다.
어딘가 모르게 청순하면서도 요염한 여인의 뒤태. 아 그래서 선비들은 백자를 사랑한 걸까?
섀도어진은 그러한 뒷모습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욕망에,
10초전 혼잣말은 잊어버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그녀 곁으로 간다.
우선 얼굴을 보기위해 제멋대로 헝클어진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살짝 정돈한다.
여자는 살짝 입을 벌리고 새곤 자고 있지만 꽤나 미인 축에 속하는 편이다.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연”자로 끝나는 이름이었는데…….
잠시 휴대폰에 저장된 여자 이름 중에 “연”으로 끝나는 이름을 검색한다. 대충 10명이 나온다.
확실히 아는 얼굴을 제외하면 8명.
그래도 끝 글자로만 불러도 별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다시 그녀를 구체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한다.
섀도어진은 검지로 그녀의 가느다란 목 뒤쪽에 살짝 튀어나온 뼈를 시작으로
척추를 지나 엉덩이 골까지 미끄러지듯이 살짝 눌렀다.
보통 여자들과 다르게 등은 잡티하나 없이 깨끗했다. 피부는 예상대로 부드러웠다.
양손 전체를 사용하여 곧바로 희롱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는 그녀는 자고 있고 자신은 깨어있는
이 기묘한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 마음에 마치 신기한 물건을 처음 만지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그녀를 탐색한다.
손가락은 구릉을 넘고, 사막을 지나, 계곡 사이를 건너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결국 검지의 여행은 깊은 우물 근처에서 멈추게 된다.
그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른 우물처럼 보였지만, 우물 속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습기에는
때가 되면 차고 넘치는 우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섀도어진의 검지는 우물 근처에서 수풀과 함께 배회하고 있었다.
우물 안에 들어가 보거나, 아니면 우물근처 도르래의 줄을 당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그녀가 깨어나고 지금 즐기고 있는 그만의 오락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그녀는 곤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장난 속에 그의 세 번째 다리로 서서히 피가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몰랐는데, 우물가를 배회하면서 그는 무언가가 사뭇 이상하다는 점을 느낀다.
뭔가가 달랐다. 분명 매끄러운 평지와 수풀이 있어야 하는데, 무언가 까칠한 것이 지표면에 붙어 있었다.
의아함이 생긴 그는 그녀의 등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거두어서,
직접 눈으로 우물가의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자세를 고쳤다.
까칠한 것의 정체는 휴지였다.
전날 운동이후 뒤처리는 했으나 피곤한 와중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으리라.
불규칙적 장소에 불규칙적 크기로 달라붙은 흉물을 본 순간,
섀도어진이 여자의 육체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욕망과 흥미는 금세 식어버렸다.
물론 모여 있던 피도 서서히 신체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바로 화장실로 걸어갔다.
샤워를 하면서 그는 무릎이 심히 따갑다고 느꼈다.
그의 무릎은 전날 있었던 운동의 양과 강도를 까여진 상처를 통하여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상처가 채 아무르기 전에 다시 상처가 나고, 무한루프를 반복하는 그의 무릎은 흉터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는 피로에 축 늘어진 상태로 샤워를 마치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워 입었다.
여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로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섀도어진은 갑자기 모든 것이 다 싫어지고 귀찮아졌다.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이름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가 잠에 깨어 자신을 바라보는 난감한 상황을 상상할수록 두려워졌다.
물론 여자를 이렇게 두고 혼자 나가는 것이 사내다운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는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뛰어 모텔을 나왔다.
뒤편에 주인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무시하고 무조건 뛰었다.
주말의 아침햇살은 질책하는 듯 그의 눈을 따갑게 쪼이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