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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테고리는 일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크문 전문기술퀘스트마냥 텀이 길어져 버렸다.
며칠전에도 글을 쓰긴 했지만, 글쓴이는 3일 전부터 오늘까지 대구에 갔다왔다.
명절이라고 간건 아니고, 친한 고향 친구놈이 결혼한다길래 이건 가야겠다 싶어서.
이 친구놈 이야기도 썰로 풀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 나중에 기회되면 풀까 함.
9월 1달동안 같은 신부랑 결혼식만 3번 하는 경우라면 분량 꽤 나오겠지?
어쨋건 결혼식 보고 사진도 찍고 밥도 먹고. 간만에 만났던 고향 친구놈들이랑 인사도 하고.
난 다시 서울로 올라왔음. 중간에 기차시간이 2시간쯤 비길래 서점가서 책 둘러보다가
'스랄: 위상들의 황혼'이랑 'V For Vendata' 2권을 사버림. 돈이 아깝진 않았음. 무거워서 힘들었지;
어쨋건 기차를 타니. 무궁화라 그런가 꽤나 시끌시끌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핸드폰 소리 확 키운다음
노래 들으면서 책이나 보고 있었지. 역을 몇개쯤 지나서...김천쯤이었나? 뻐근해서 몸 좀 풀려고
책을 덮고 고개를 들었는데 옆에 웬 아가씨가 서있네? 분명 기차는 출발한지 좀 됐는데?
뭔가 싶어서 보니 뭔가 꽤 커보이는 짐을 들고 있는데, 좌석 위에 짐 올려놓는데까지 들지를 못하고 있었음.
계속 그러고 있는거 보니 내 옆자리구나 싶더라. 그러고 있다가 그 아가씨랑 얼굴이 마주침.
"그거, 올려드려요?"
"네? 아...네 고맙습니다"
뭐, 짐이 좀 크긴 하더라고. 들어보니 '좀 무겁긴 하네' 싶었는데 그런 꾸러미가 2개나 있었으니.
올려주고 난 일어난김에 세면대 가서 좀 세수나 하고 오자 싶어서 갔다왔음.
갔다오니까 내 자리에 웬 카페라떼가 하나 있네?
"아까 고마웠어요. 이거라도 드세요."
"네? 아..뭐 힘든거도 아닌데. 고맙습니다."
솔직히 짐 2개 들어준게 그렇게 막 생색낼 정도로 큰 일은 아닌데. 저런걸 받으니 나도 좀 당황하긴 했음.
이어서 그 아가씨가 하는 말 들어보니, 열차 출발하고 10분 넘게 지나도록 낑낑대고 있었는데 내가 처음
말을 걸었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기차 중간에 카페칸 가서 하나 사왔다 그러네.
뭐, 나야 귀에 이어폰 꽃고 책만 보고 있었으니 몰랐다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고 있었던 건가 싶긴 하더라.
어쨋건 그렇게 난 창가쪽 내자리에 앉고. 그 아가씨는 통로쪽에 앉았고. 기차는 서울을 향해 가는중이었음.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됐길래 노래는 포기하고 그냥 책만 봤음. 그러고 있는데, 통로 반대쪽에 있던 꼰대 한분께서
한잔 꺾으셨는지 폰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더라고. 보통 전화오면 밖으로 나가는거 아닌가?
저러다 끊겠지 싶어서 그냥 참고 있었는데 이 꼰대님은 머리에 브레이크라는게 없나보더라고.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내용도 과격해지는게 계속 듣고 있기 짜증나더라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였음. 몇명은 그냥 귀막고 눈감고 있고. 그렇게 한 5분을 넘게 소리지르다가
드디어 눈치를 챈건지 씩씩대면서 밖으로 나가더라고. 이제 좀 조용해졌구나 하고 있었는데 누가 날 부르네?
"저기요..."
"네?"
"저기...죄송한데 자리 좀 바꿔주실 수 있으세요? 무서워서..."
그러니까 대충 자리가 [사람/꼰대 (통로) 아가씨/나] 이런식이었음. 원래 통로쪽 자리는 별로 안좋아하긴 하지만
아까 카페라떼 받은 것도 있고 해서 별말없이 바꿔줌. 역시나 꼰대님은 전화하고 들어와서도 분이 안풀리는지
제풀에 씩씩대더니 그냥 눈감고 자더라고. 이제 좀 조용해졌구나 싶어서 아까 보다가 덮은 책을 보기 시작하는데...
한 30분쯤 지났나? 갑자기 오른쪽 어깨에 뭐가 닿더라고. 뭐지? 싶어서 처다보니 아까 그 아가씨가 자고 있는데
기차가 흔들려서 그런가...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네? 깨우기도 뭐하다 싶어서 그냥 그대로 내비두고 계속
책이나 보고 있었음.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는가 얼굴 빨개지더니 죄송하다고 계속 그러길래 괜찮다고 함.
뭐, 아까 꼰대님이 고래고래 소리지른거에 비하면 진짜 별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결국 V for Vendeta는 다 보고, 나도 살짝 졸려서 그냥 책 앞에 끼워두고 등 기대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아가씨가 뭐랄까...참 재미있더라?
1. 목을 90도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다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딫혀서 깬다.
2. 잠깐 정신 차리고 다시 잔다.
3. 목을 왼쪽으로 꺾어서, 그러니까 내쪽으로 기울여서 자다가 깬다.
4.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잔다.
위 과정을 적절히 반복하더라고. 계속 창문에 머리 찍는게 좀 그래서 4번 과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말을 걸었지.
"저기요."
"네?! 아 진짜 죄송합니다."
"아니 뭐, 화난건 아니고. 그러다 목 다칠거같은데. 서울가시는거면 그냥 이쪽으로 기대고 자세요."
"네...?! 아...너무 죄송해서..."
"어차피 저도 잘꺼니까 신경안써도 되요. 그러다 진짜 목 나갑니다"
사실 내가 말해놓고도 다시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했음. 근데 이 아가씨가 진짜 많이 졸렸나보더라.
저렇게 말하고 그냥 등 기대고 눈 감고 있으니까, 진짜 내쪽으로 머리 딱 붙이고 편하게 자더라고.
뭐 기차 안에 에어컨은 빵빵하게 나오고 있다보니 별로 덥지도 않고 해서 그냥 어깨 좀 잘 받쳐주고 나도 잤음.
서울 도착했다고 방송 나오는거 듣고 둘 다 깸. 짐 혼자 내리지도 못해서 올려놨던 짐 내가 내려주고 같이 나옴.
개찰구 나와서 그냥 인사하고 제갈길 가야지 하고 있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시는가 계속 따라옴.
"어 방향이 같은가보네요. 어디로 가세요?"
"아...네, 저 왕십리쪽이요."
"어? 저도 왕십리쪽인데. 서울 사시나봐요?"
"어 그쪽도요?! 아...저는 집은 김천인데 학교때문에 혼자 살아요"
"그럼 한양대생이신가보네요?"
"네?! 아...네 어떻게...?"
"딱 봐도 대학생이신데, 학교 때문에 왕십리나 행당동에 산다 그러면 90%는 한양대생이라는 소리죠."
"아...그럼 그쪽도 한양대...?"
"뭐...전 지난달에 졸업해서 이젠 학생은 아니네요."
"네?! 아...졸업하셨구나. 어려보이셔서 학생이신줄 알았어요."
"...기차에서 불편하게 자시더니, 아직 잠이 덜 깨셨나보네요. 들어가서 씻고 자세요"
뭐, 지하철에서 저러면서 왕십리까지 왔음. 도착하니까 이 아가씨가 오늘 진짜 고마웠다면서 자기가 커피라도
사겠다길래 그냥 그러라고 하니까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숍으로 가길래 이번엔 내가 놀람.
커피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보니 코드가 맞는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짐.
"피곤하실거같은데, 내일 휴강이신가봅니다? 자체휴강은 안하실거같고."
"아 맞다...오전수업인데, 시간이 벌써..."
"들어가서 잘 씻고 푹 자세요. 그래야 목도 멀쩡할겁니다."
"네?! 아...죄송했어요 오늘 진짜..."
"사과는 여러번 하면 오히려 진정성이 떨어집니다. 별로 미안할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아...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인사성이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성격이 유순한 사람인지...별거 아닌 일로 계속 고맙다는 소리 들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더라. 가는길에 연락처 물어보길래 그냥 상대방껀 안물어보고 내꺼만 알려주고 헤어짐.
설마 며칠뒤에 '도를 아십니까?'나 '김미영팀장입니다' 류의 전화가 부쩍 늘어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