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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시간이 많이 흘러 꺼내보는 그 날의 기억

아이콘 환생맨
댓글: 10 개
조회: 3704
추천: 11
2025-05-01 06:13:42
제목에 적었다시피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꺼내보는 기억이라 누락이 좀 있을 수 있지만

왜곡이나 변형은 전혀 없는 일임을 맹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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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확장팩 어둠땅 때의 일이다.

지금이야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체력 저하와 집중력 하락으로 인해 주에 4바퀴 주차도 힘겨워 하는 나이지만 조금 젊었던 그때의 나는 와우에 대한 열정이 넘쳤었다.

정공에 쐐기팀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 열정을 얼추 짐작하리라 믿겠다.

그 일은 수요일에 일어났다.

쐐기팀 일정이 끝난 이후 내가 가지고 있던 돌은 역병 몰락지.

당시 역병 몰락지는 숏컷 루트를 알고 있고 말드락서스 성약단이 있으면 다른 던전들에 비해 1~2단 정도 낮은 난이도로 평가되는 돌이었다.

내가 들고 있던 단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글로벌에 나오기에는 좀 높은 단수였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내 클래스는 힐러. 

이미 십자가가 하나 있다는 안정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수요일이라 할 게 없는 사람들이 넘쳐났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글로벌에 잘 보이지 않는 꿀돌로 갱신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던 것일까.

채 10분이 되지 않아 파티는 풀파가 되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딜러 셋이 함께 신청왔다는 점.

전부에 블러드를 모두 보유한 1티어 딜러들이라 옳타꾸나하고 받았던 기억이 있다.

파장을 탱커에게 넘기고, 돌 꼽는 재떨이 앞에 모이니 탱커가 모두 디스코드로 올 것을 요청했다.

사실 난 이미 쐐기팀을 하면서 갱신했던 단수이기에 디코까지 할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지만 디코까지 부를 정도로 간절하구나라는 생각에 디코에 들어가 듣기만 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했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탱커, 딜러들은 각자 마이크를 켜고 '이런 꿀돌을 글로벌에 풀어준 힐러님 너무 감사하다.', '힘내서 가보죠.'라는 훈훈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 훈훈함은 곧 삐걱이기 시작했다.

탱커가 루트를 설명하자 딜러가 대번에 '그것보다는 이게 어떨까요.'라는 반박을 한 것.

딜러라고 마냥 따르라는 법은 없으니 반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딜러가 제시한 루트가 특별하거나 굉장한 시간단축을 가능케하는 루트는 아니었다.

최신화된 루트라는 점이 특이사항이었고 탱커가 제시한 좀 예전 루트로 가도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탱커는 딜러가 제시한 루트는 살펴본 후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자 훈훈함 대신 기묘한 싸함이 흘렀지만 일단 탱커의 루트대로 가기로하고 카운트가 올라가고 돌이 박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전술했던 요소 '숏컷 루트'. 역병 몰락지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기억하겠지만 이 던전은 숏컷 루트가 꽤 다양하다.

처음에 투물을 먹고 큰 놈을 넘어가자마자 좌우 중 어디로 가느냐, 1넴 앞에 있는 슬라임을 처리하고 바로 1넴을 들어가느냐, 아니면 쿨을 맞추기 위해 다음 무리를 잡고 1넴으로 돌아오느냐 등등.

그렇기에 합이 중요하고 분명 탱커가 디코까지 불러서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딜러는 제시되지 않은 몹 무리를 쳐버렸다.

그것도 풀링 첫 무리를.

아마 그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가서 몸에 배어버린 기억이 툭 튀어나왔을 뿐.

예상치 못한 몹 팩의 증가로 당연히 차단과 CC가 모자라게 되었고, 결국 첫무리부터 전부가 빠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 명이 또 죽어 뛰어와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투물을 쓰고 넘어왔으니 그냥은 올 수 없는 상황. 

죽고 대부하는 사이, 탱커가 책임소재를 들춰내기 시작했다.

'설명 할 때 저건 안 데려온다고 했는데, 치신 분 누구죠.'

숨통을 조여오는 침묵.

모두가 알고 있다.

아마 당사자는 더 잘 알고 있겠지.

결국 딜러는 실토하고 만다.

'죄송합니다. 헷갈렸어요.'

이 숨막힘을 털어내기 위해서일까, 그와 같이 왔던 다른 딜러들이 분위기 환기를 위해 노력했다.

'누구누구님 긴장했어요? 탱커님이 가자는 대로 가야지 딜러가 막 나서고 그러는거 아니야.'

그러나 탱커는 첫무리부터 자신의 계획이 흐트러진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전히 목소리가 편치 않았다.

'이러면 뭐하러 디코하고 뭐하러 설명을 합니까.'

다시 무거워지는 분위기.

결국 죄송하다고 한 딜러도 사족을 붙이고 만다.

'그냥 제가 가자는대로 갔으면 이런 일이 없죠. 님이 제시한 루트는 좀 구려요. 요즘 고단 아무도 그렇게 안 가요.'

팩트다.

탱커의 루트는 좀 낡았다.

그러나 팩트라고 해서 늘 지지받는 것은 아니다.

낡았어도 시간 내에 도달하면 장땡이고, 무엇보다 사고유발자의 발언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원래라면 힘이 실리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함께 온 다른 둘의 딜러와 함께다.

'솔직히 그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굳이 예전 루트로 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고가 난 건 죄송한데 적당히 커버했으니 그냥 가죠.'

이미 부활 스킬은 시전 완료가 됐고 누운 자는 일어났으나 탱커는 움직이지 않는다.

기분이 상해도 단단히 상한 것이 분명하다.

디코로 들리는 그의 거친 음성.

'하, 씨발. 존나 역겹네.'

직접적인 욕설에 딜러들도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씨발? 야! 말 다했어? 씨바알?'

'그래, 씨발. 서로 똥꼬 빠는 건 괜찮고, 씨발은 듣기 싫어?'

'좆같이 못하는게 아가리에 걸레를 물었나!'

'길드원들끼리 그 지랄로 다니면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

딜러들이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사이, 탱커의 화살이 나를 향했다.

'힐러님, 저 새끼들 아는 사람이에요?'

나는 어느때보다 빠르게 채팅을 쳤다.

[ㄴㄴ]

'저런 양심도 없고 실력도 없는 새끼들이랑 쐐기 못하겠어요. 나갑니다.'

파탈 직후 울리는 디코 퇴장음.

'저, 저 미친새끼를 봤나.'

'또라이 아니야?'

'못하는 탱이 부심만 존나 부리네 씨발.'

딜러 셋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귀환을 타고 파탈을 해버린다.

순식간에 던전 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

그때 내가 읊조렸던 말, 아직도 똑똑히 기억난다.

'내 돌인데... 미친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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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이 일 있고 바로 사사게나 쐐게에 올릴까 하다가 말 나오는 것도 싫고 특정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넘김.

근데 진짜 100% 사실임.

와우하면서 저 정도로 대놓고 디코로 육두문자 써가면서 싸우는 거 들은 게 첨이고 너무 충격이라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음.

저 새끼들 닉네임 기억해둔다고 이 아득바득 갈았었는데 제일 목소리 컸던 딜러 하나 빼고는 이제 다 가물가물함.

Lv73 환생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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