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 싱글겜이 돈 안 되면 팁 주면 되잖아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26개 |
"왜 얼굴에 심통이 붙은 줄 모르겠어? 저 사람들은 그 돈으로 먹고산다니까."

최근 미국 출장 다녀왔을 때 일을 동생에게 털어놓으니 한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일식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후 계산하던 차. 주문부터 서빙까지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종업원이 나갈 때는 잔뜩 심술 난 표정으로 좋은 하루 되라고 쏘아붙였다. 그렇게 소리 지르면 오던 좋은 일도 껌쩍 놀라 달아나겠더라.

아차차, 생각해보니 팁을 주지 않았다. 계산을 위해 카드를 주니 들이민 태블릿. 주르륵 적힌 팁 비율을 누르지 않고 그냥 결제 메뉴를 터치했다. 그렇다고 저렇게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봤어야 했나. 동생은 팁 문화가 당연하다 보니 가게에서는 직원들의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준단다. 팁을 제대로 받아 부족한 일급을 채우고, 그걸로 생활하는 거다.

그런 이유라면 줄 수도 있지. 그런데 의문도 든다. 저렇게 카드로, 태블릿으로 결제하면 팁은 가게가 챙기는 거 아닌가? 내가 준 팁은 온전히 직원에게 돌아갈까? 왜 가게가 정당하게 줘야 할 돈을 내 팁이 대신해야 하는가?

게임에도 팁을 주자는 마이크 이바라의 개념에는 이런 물음이 빠졌다. 좋은 게임에 팁을 주면 그건 온전하게 자신의 열정을 바친 개발자의 지갑에 돌아갈까? 아니면 이미 배부른 회사의 입으로 들어가는 걸까?




얼마 전까지 블리자드의 사장이었던 마이크 이바라는 훌륭한 싱글플레이 게임들이 주는 놀라운 경험은 풀프라이스 가격인 70달러보다 더 큰 가치를 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10달러, 20달러를 기꺼이 낼 수 있으니 이러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순전무결한 세상이라면 나는 이바라의 팁 아이디어를 깃발을 들고 환영하며 소개하러 다녔을지도 모른다. 봉사료, 사례금, 후원은 이미 온라인 세계에서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사람들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게임에 펀딩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준다. 실리적인 이득 하나 주는 거 없는 전파 너머 스트리머에게 즐거움의 보상으로 월급을 긁어 퍼주는 사람이 낯설지 않다.

이러한데 좋은 게임에 팁 주는 게 뭐 그리 특별한 일일까? 아니 이바라는 오히려 팁을 시들해져 가는 게임 시장에 해결책쯤으로 봤다. 방대해지는 인건비와 게임 개발비, 게임 가격은 그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실패의 리스크는 게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살이 붙는다. 큰 투자가 이루어진 게임들의 실패에 근래 대형 게임사는 직원 칼질을 계속한다. 그래서 선택하는 게 중소 규모, 그리고 수익화를 길게 끄는 멀티플레이 게임, 그리고 모바일이다.

이바라가 싱글 플레이 게임에 팁 아이디어를 낸 것도 이들은 추가 수익화가 어려운 부류이기 때문일 거다. 좋은 싱글 플레이 게임에 팁을 주면 과도한 수익화 전략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상만큼 녹록지 않다. 디렉터, 프로듀서, 디자이너, 아티스트, 엔지니어 등등. 내가 주는 팁은 누구에게 주는 것인가? 결국 그것은 팁 시스템 안에서 회사를 통해 건너가게 된다. 내가 주는 팁 온전히 개발자에게 건너가게 될지도 확인 수 없다.

이바라가 언급한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 '갓 오브 워', '레드 데드 리뎀션2', '발더스게이트3', '엘든 링'은 팁 주기가 가려운 훌륭한 게임이다. 하지만 반대로 수많은 개발자가 투입되고,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게임이기도 하다. 어느 한 명의 노력이 게임의 성공을 이끈 게 아니다. 큰 수익을 낸 회사의 배만 불릴 수 있다.

미국의 레스토랑처럼 변할 회사도 떠올려봄 직하다. 팁 문화를 정착시켜 가뜩이나 오르는 인건비를 억제해 임금을 줄이는 그런 미국의 식당. 개발자에게 제공해야 할 보상을 구매자에게 전가된다.

문득 군대에 있을 적 어느 높으신 분이 문득 스친다. 일부 간부 반대에도 병사들 땅 파는 게 힘드니 전화선은 매설하지 말고 전봇대 위로 올리라던. 낮은 전봇대 사이로 주렁주렁 늘어졌던 전선은 큰 차량이나 전차에 걸려 툭하면 끊어졌다. 복구는 우리 몫이었다. 물론 스스로는 병사들 생각했다고 자랑스러워했겠지.

높은 위치에 오래 있던 마이크 이바라도 이 아이디어를 내며 기가 막힌 해법이라고 생각했을까? 게임 가격, 과도한 수익화 전략, F2P와 규모의 축소 등 여러 문제가 두드러지는 지금 게임과 비용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주주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직원들을 슥삭 잘라내는 높으신 분들이 고민 없이 번쩍 낸 아이디어는 썩 와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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