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무엇이 5,080명의 게이머를 움직였을까?

포토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45개 |


▲ 이상헌 의원실 이도경 보좌관이 청구인 연명부를 보여주고 있다
한 장에 25명의 유저 서명이 있다

5천여 명의 유저가 '게임위 비위' 국민감사청구에 서명했다. 5천 명 이상의 유저가 다녀간 자리에 쓰레기는 없었다.

29일 이상헌 의원실은 '게임물관리위원회 비위 의혹 규명을 위한 감사원 국민감사청구 연대 서명'을 국회 앞에서 진행했다. 오후 12시 20분 시작한 서명은 오후 6시 33분 종료됐다. 총 6시간 13분이다. 의원실 잠정 추산으로 5,080여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단순 계산으로 1분당 13.6명의 유저가 서명한 셈이다.

진행을 예고했던 지난 27일, 이상헌 의원실 이도경 보좌관에게 언제까지 서명을 진행할 것인지, 29일에 청구 요건인 300명의 서명을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하냐고 물었다. 이 보좌관은 "물론 당일에 300명의 유저가 안 오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다"라며 "요건을 충족할 때까지 서명식을 진행하겠다"라고 말했었다.



▲ 서명을 위해 기다리는 유저들, 가장 먼저 도착한 김태현 씨는 오전 10시부터 기다렸다

걱정은 기우였다. 29일 정오, 이미 2백여 명의 유저가 서명을 하기 위해 국회 앞에 모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유저는 성남에서 출발해 오전 10시부터 기다린 김태현 씨였다. 김 씨는 자신이 하는 '블루아카이브'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잘못된 잣대로 청소년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 공정하지 않아 서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고, 게임위가 앞으로 횡포를 계속할 거 같다는 위협을 받아 이를 막기 위해 서명했다"라고 전했다.

서명 시작 예정 시간은 오후 1시였다. 이상헌 의원실은 예상보다 많은 유저가 몰려 40분 이른 12시 20분부터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유저는 약 250여 명 모였다. 바로 앞 횡단보도를 통해 유저들이 계속해서 모였다. 대기 줄은 점차 길어지기 시작했고, 국회대로를 지나기 시작했다. 결국 대기 줄은 한 차례 꺾여 이어지기 시작했다.

서명이 진행되는 속도보다 모이는 유저 속도가 더 빨랐다. 처음 이상헌 의원실은 한 번에 세 명씩 서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었다. 청구인 연명부에는 이름, 생년월일, 직업, 주소 등을 적어야 했다. 세 명이 한 번 적으면, 대기 줄 끝에 열댓 명의 유저가 모였다.





오후 2시 30분쯤에 유저 입장이 되어 대기 줄 끝으로 가봤다. 빠른 걸음으로 13분 정도 걸렸다. 국회대로를 지나 좌측 여의서로, 국회박물관으로 향했고, 국회박물관 전 문을 통해 국회의사당으로 이어졌다. 이후 국회도서관을 감싸 지나며 건물을 감쌌다. 국회도서관 끝에서 다시 유(U)턴하여 줄은 건물을 두 겹으로 감쌌다. 이때 유저가 줄을 서기 위해 서명대부터 걸어갔다면, 총 7번 꺾어야 했다.

이쯤이면 됐다 싶어 취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밥까지 먹고 나니 오후 4시 30분이었다. 귀가하려 지하철역으로 가니, 여전히 유저 줄은 그대로였다. 귀가하기 전 마지막으로 현장을 보기 위해 갔다. 아까와는 다른 모습으로 서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 오후 4시 30분의 대기 줄 '일부'



▲ 누군가 마련한 간이 테이블을 이용해 유저가 서명하고 있다



▲ 어디선가 카트를 구해와 생수를 나눠주는 유저도 있었다



▲ 먼저 서명을 한 유저들이 다음 유저를 안내했다



▲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다 마신 생수나 다른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유저들

유저가 자발적으로 빠른 서명 진행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2개뿐이었던 테이블은 간이 테이블 10개 이상이 생겨 한 번에 더 많은 서명을 할 수 있었다. 3명씩 받던 서명도 18명씩 진행됐다. 이미 서명했던 유저 10명 이상이 올바른 서명 방법을 안내했다. 어떤 유저는 안내봉을 이용해 질서를 잡았다.

자비로 물을 사 와 나눠주는 유저, 쓰레기봉투를 사 와 물병을 담는 유저, 그 물병의 포장지와 플라스틱병을 분리하는 유저가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이상헌 의원실 개입은 없었다. 자칫하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의심의 시선을 보낼 수 있어 이상헌 의원실은 유저들에게 서명 안내 외 편의를 제공할 수 없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를 감사하라!"
이상헌 의원실이 시작해, 유저가 마무리하다



▲ 김재휘 씨가 태블릿과 핸드폰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서명을 돕고 있다

김재휘 씨는 자신의 태블릿을 이용해 서명을 안내했다. 일몰 이후에 어두워지자 핸드폰 라이트 기능을 이용해 서명하는 유저를 도왔다. 김재휘 씨는 오후 2시 30분쯤 현장에 도착해 3시간을 기다려 서명했다. 그는 "먼저 서명했던 분들이 책상도 구해오고,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라고 자원봉사 이유를 설명했다.

김재휘 씨는 "오늘 온 이유는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기회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 기회를 최대한의 의미가 되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 조영진 씨가 안내봉을 사 와 질서를 유지했다

조영진 씨는 안내봉을 사 와 질서를 유지했다. 왜 안내봉을 들었냐는 물음에 조영진 씨는 "서울코믹월드나 다른 행사도 가봤는데, 줄이 엉키는 문제가 있더라"며 "그런 행사에서 안내봉을 이용해 줄을 세우는 사람들이 생각나 나도 했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이 안내하는 것만 봤지, 직접 해본 것은 처음이다"라고 덧붙였다.

조영진 씨는 안내봉을 근처 다이소에서 5천 원, 건전지를 2천 원에 샀다고 전하며 "이 안내봉으로 혼란이 조금이라도 줄었다면, 7천 원으로 충분히 이득을 봤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서명에 참여한 계기에 대해 조영진 씨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알게 된 이유는 '블루아카이브 사태' 때문, 그런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50억 원을 횡령했다는 소식도 들리더라"며 "비공개 회의를 통해 등급을 상향하고, 스팀 게임도 밴을 계속 하니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 김찬영 씨가 다 마신 생수, 기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김찬영 씨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다른 유저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왜 자원봉사를 했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가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자연스레 쓰레기가 생기게 된다"라며 "아무래도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으면 밖에서 보기 안 좋고, 유저가 쓰레기를 버리고 다닌다는 안 좋은 반응이 생길 수도 있어 예방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 알사탕을 나눠주는 유저

익명을 원한 알사탕맨(닉네임)은 "줄을 2시간 30분을 섰는데, 힘들더라"며 "다른 사람들도 힘들겠다 싶어서 알사탕을 사 와 나눠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품은 땅콩맛 '해태 알사탕'이었다. 이 알사탕을 고른 이유를 묻자 "다른 유저가 이미 사탕들을 사가 나눠줬는지, 이거만 있더라"며 "그래도 이거 맛있다"라고 답했다.



▲ 이현구 씨(파란색)와 안광무 씨(오른쪽)

이현구 씨는 서명하러 온 김에,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 안내 봉사활동을 했다고 전했다. 이현구 씨는 비교적 일찍 와 1시간을 기다려 서명했었다. 약 5시간 더 남아 다른 사람에게 서명을 안내한 셈이다.

안광무 씨는 우리나라 게임업계를 위해 서명하러 왔고, 봉사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게임위를 막지 않으면, 일본의 '빠칭코'와 같은 아케이드 게임만 계속 나올 거다"라며 "이렇게 나서면 우리나라 게임사가 더 좋은 게임을 개발할 거란 기대가 있다"라고 말했다.



▲ 임우열 씨(오른쪽 아래)가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임우열 씨는 생수를 사 나눠주고, 쓰레기봉투를 사 와 분리수거를 했다. 그는 도착했을 때인 오후 2시에 날이 더워 자기 돈으로 생수를 사 와 다른 유저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생수를 산 만큼, 쓰레기가 나올 것을 걱정해 쓰레기봉투도 사 다시 수거했다. 그는 생수와 쓰레기봉투를 사는 데 자기 돈을 23만 원가량 썼다고 전했다.

그는 현장 구석에서 다른 유저들과 함께 맨손으로 쓰레기를 분리했다. 생수통의 플라스틱병과 포장지를 분리하는 작업이었다. 앞의 김찬영 씨가 대기 줄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수거해오면, 임우열 씨와 다른 유저들이 분리하는 식으로 작업이 나눠었다. 그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도 좋았는데, 또 분리수거가 어설프면 안 되니까 이 일을 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 오후 6시 33분경, 서명식이 끝나자 유저들이 기뻐하고 있다

이날 서명은 오후 6시 33분에 끝이 났다. 긴 시간이 끝나자 현장에 남아있던 유저들은 자축했다. 소소한 축하가 끝나고 유저들은 곧바로 현장의 쓰레기와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유저들이 뒷정리를 위해 테이블을 옮기고 있다



▲ 쓰레기봉투를 옮기는 유저들, 왼쪽에 마련된 트럭에 실었다









▲ 5천 명 이상의 유저가 지나간 자리, 쓰레기는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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