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아트 디렉터가 세계를 '창출'하는 법

게임뉴스 | 강승진 기자 |



  • 주제: '파이널 판타지'의 아트 디렉션과 컨셉 아트
  • 강연자 : 이사무 카미코쿠료 / 프리랜서 아트 디렉터
  • 발표분야 : 커리어 / 아트
  • 강연시간 : 2022.11.17(목) 16:00 ~ 16:50
  • 강연요약: 이사무 카미코큐료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아트 디렉터를 역임했다. 이번 세션에서는 그의 대표작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주요 케이스 연구로, 아트 디렉션과 컨셉 아트에 대하여 진솔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 ■ 파이널 판타지,현실을 바탕으로

    1999년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한 이사무 카미코큐로는 파이널 판타지10의 BG 아트를 시작으로 파이널 판타지12에서는 아트 디렉터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파이널 판타지의 콘셉트 아트를 담당했다. 2017년 스퀘어 에닉스를 퇴사할 때까지 파이널 판타지12 레버넌트 윙스, 파이널 판타지13, 파이널 판타지13-2, 라이트닝 리턴즈 파이널판타지13, 그리고 파이널 판타지15까지 파판 시리즈 핵심 개발자로 활약했다.

    이에 강연도 자신이 참여한 핵심 아트워크의 개발 과정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파이널 판타지는 같은 시리즈로 묶이긴 하지만, 작품별로 디렉터, 작가가 모두 다르고 공통된 세계관이나 분위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새로운 작품마다 디렉터, 작가가 원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사무 디렉터는 이러한 작업의 시작을 현지답사와 조사로 시작했다. 실제로 게임의 세계관과 어울리는 지역을 정리하고 직접 찾았다.




    파이널 판타지12는 유럽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튀르키예, 예멘 등을 찾아 현지 상황을 조사했다. 게임 파이널 판타지에서 만날 수 있는 중세 거리, 유럽풍의 마을 모습은 이런 식의 현지 사전 답사로 시야를 넓히고 취재하며 만들었다.

    반면 파이널 판타지13은 근미래의 세계를 그리고자 한 작품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현존하지 않는 세계를 그리는 만큼 참고할 만한 문화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지형과 대자연의 모습은 현실을 참고해 만들 수 있는 영역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2억년 전에 만들어진 지형과 고대 지역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훌륭한 참고 자료였다. 미국 전역을 차로 돌아다니며 2주 동안 훑었고 디자이너, 기획 담당 인원 등 6~7명의 팀원이 현지를 취재했다.



    ■ 콘셉트 아트 속 파이널 판타지12, 13, 15




    파이널 판타지12의 콘셉트 아트 역시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취재 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물론 게임 속 세계는 실존하는 건축물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건축물 하나하나를 낱낱이 뜯어보면 오늘날의 문화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12는 중세 유럽, 아랍 국가, 인도, 현대 고층 빌딩 등의 건축물을 섞어 만들었다.

    건물의 실루엣에서는 현대적 감성을, 디테일에서는 중세 느낌에 중동에서 볼법한 모형들을 찾을 수도 있다. 특히 위 사진 중 가운데 이미지는 핵심이 되는 콘셉트 아트로 이를 기반으로 파이널 판타지12를 만들자는 결론이 나왔다.

    이사무 디렉터는 게임 속 캐릭터인 프란과 발프레아를 중앙에 둔 콘셉트 아트의 개발 과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사실 파이널 판타지12의 주인공은 따로 있지만, 팬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라는 확신 아래 이를 중심으로 하는 콘셉트 아트가 제작됐다는 비화 역시 전했다. 특히 게임의 근간 중 하나인 해당 콘셉트 아트는 제작에 1달가량이 소모됐다.




    파이널 판타지13의 하늘 도시 코쿤은 1950~60 년대 활약한 산업 디자이너 루이지 꼴라니의 콘셉 워크를 참조해 만들어졌다. 꼴라니는 유선형 디자인을 선호한 인물로 독특한 그의 작품은 이사무 디렉터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 유선형을 강조한 디자인을 중심으로 실제 세계관이 구축됐다.

    유선형은 단순히 직선이 아닌 곡선이라는 형태적인 부분 외에도 생물이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낸다. 즉, 생물의 모습을 띤 공간에 인간이라는 또 다른 생물이 살아가는 형태를 그려낸 셈이다. 여기에 신체 곡선의 아름다움을 도시에 겹치는 에로티시즘을 통한 조형미를 지향하기도 했다.

    다만, 플레이스테이션3로 출시되는 게임 안에 유선형 디자인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아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해당 디자인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이를 밀어붙였고, 실제로 곡선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미래 세계가 구현될 수 있었다. 이 작업 역시 실제 게임 제작의 밑바탕이 됐는데 스케치에 한 달, 채색에 또 한 달이 걸렸다.




    이사무 디렉터가 마지막으로 관여한 파이널 판타지 작품인 15의 콘셉트 아트는 리얼한 게임 세계 구현이 목표였다. 콘셉트 아트들은 러시아, 동유럽 등 공산 국가의 차가운 느낌을 살리면서도 심플하고, 강한 힘이 느껴지도록 그려졌다.

    특히 당시 워킹데드 등 이사무 디렉터가 즐겨 보던 해외 드라마가 아트 제작의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워킹데드는 좀비와 인간의 대결을 그린 일종의 판타지 세계다. 하지만 그 세계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유사하게 현실적이고 실제로 존재할 듯한 모습을 그린다.

    아트 제작에서도 있을 수 없는 세계지만, 실제로 있을 듯한 판타지 구축이 목표로 설정됐다. 실제로 파이널 판타지15는 구상 단계부터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표지판이나 도로 신호가 존재해 우리가 사는 세계와 비슷한 느낌을 낸다. 이에 색상도 모노톤으로 그 수를 줄여 현실성을 더했다.



    ■ 새(新) 시대와 게임 개발자




    독립 전까지는 게임 개발에만 참여한 그였지만, 프리랜서가 된 이후부터 생각지도 못한 작업 경력을 이어갔다. 그 시작은 교토의 다이토쿠지 사찰 미닫이문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1315년 세워져 긴 역사를 자랑하는 다이토쿠지였기에 게임 콘셉트만 그리던 자신에게 작업 의뢰가 들어온 것에 이사무 디렉터는 의구심이 더 컸다.

    이에 100% 거절의 의사를 담아 사찰의 스님을 만났다. 그때 스님은 무릎을 꿇고 부탁하며 말했다.

    '사찰에 500년 만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현대의 사람이 하지 않아선 안 된다. 지금 현대 문화의 꼭대기에는 게임을 만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절의 새 그림은 그런 사람이 맡아야 한다.'

    이러한 의지를 본 이사무 디렉터는 결국 이 작업을 수락했다. 다만, 포토샵으로 작업하던 그가 손으로 직접 그림 그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날로그 그림이라고는 유화를 배운 게 전부였지만, 미닫이문에 그리는 그림은 종이 위의 작업이었다.

    경험이 없던 그는 당초 2달 반 정도 예상했지만 실제 작업은 쉽지 않았다. 디지털이라면 기둥 하나만 그리면 복사/붙여넣기로 10개도 만들 수 있었지만, 종이 위 그림은 그 10개의 그림을 모두 직접 그려야 했다. 스포이트로 집어내면 끝인 디지털과 달리 여러 색을 하나하나 조합하고 십수 분은 섞어야 겨우 색 하나를 낼 수 있었다.




    결국 절에서 먹고자며 재료 사용 방법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공부하고 그림을 그려 나갔다. 두 달 정도면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작업은 1년 반이 걸렸다. 금박, 특수 붓을 구입하는 비용도 직접 냈다. 절에서 숙식하자 도쿄에서 게임 회사에 다니던 그가 샐러리맨이 싫어 출가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깨달은 점도 있는데 한 번의 실수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은 엄청난 긴장감으로 다가왔는데 이는 곧 작품의 높은 만듦새와 실수 없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수정도, 컷 확인도 불가능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과 디지털 카메라 작품의 차이도 이런 되돌릴 수 없는 긴장감에서 나온다고 배웠다.



    ■ 새로운 출발, 그리고 게임 아티스트의 본질

    애니메이션 작업도 처음으로 참여했는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용과 주근깨 공주의 콘셉트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작업물 모두를 좋다고 말하지는 못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작품만은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그의 작업은 작품 안에서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이자 배경처럼 쓰이는 큰 고래였다. 특히 해당 작품은 대강 예시로 그린 콘셉트 아트와 최종 디자인의 차이를 거의 찾을 수 없는데 단 한 번의 콘셉트 아트가 실 작업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평소 세계관, 배경을 자주 그리던 이사무 디렉터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의뢰받았다고 언급했다. 정확히는 다른 작업을 위해 참여했지만, 많은 제작자가 해당 디자인을 잡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이사무 디렉터에게까지 작업에 관한 요청이 들어오고 그려낸 아트가 단 한 번에 작가, 디렉터의 구상과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고민을 거듭하고, 여러 작업물을 제시해 겨우 확인을 받는다.

    용의 성은 고래와 달리 콘셉트 아트를 그리고 그려도 '이거다!'라는 답을 쉬이 얻지 못해 헤맸다. 결국 작품이 가진 설정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린 그림을 제시해 겨우 확인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디테일을 추가해 실제로 작품에 적용됐다.




    애니메이션 작업과 게임에서의 작업 차이는 배경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게임에는 레벨 디자인이 존재한다. 단순한 그림 한 장 안에서도 여기가 입구, 저기는 출구,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곳 등 작업 간 무의식적으로 레벨 디자인을 설계하고 이를 작업물에 적용한다.

    애니메이션은 그런 요소가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신의 연속성이지 출발 지점과 결말 지점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직전 컷이 작업물과 전혀 다른 느낌이더라도 연속된 영상에서 봤을 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완성된 결과가 된다. 오랜 기간 게임 개발자였던 이사무 디렉터에게 그런 논리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작품 안에서 독특한 그림풍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CG로 만든 배경이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고 만화 같은 느낌의 검정 외곽선 대신 입체감을 주는 흰색 선을 주로 사용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 새로운 시작과 게임 아티스트의 본질

    한편, 이사무 디렉터는 정해지지 않은 오리지널 기획을 구상 중이다. 별다른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 6개월간 지인들과 만화에 도전해보고자 했던 그는 연재 만화를 위한 세계관에 스토리, 플롯까지 엄청난 양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CG 애니메이션의 제작 권유 역시 받아 어떤 식으로 이를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작품에 대한 콘셉트 아트를 현장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강연이 마무리된 후 콘셉트 아티스트의 업무와 그림 실력에 관한 질문에 이사무 디렉터는 현업에서 오랜 기간 일한 이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사무 디렉터는 보통 하나의 작품을 위해 약 30개 정도의 디자인을 만든다. 1개가 합격을 받으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는 작품이 29개라는 의미다. 어떨 때는 그 수가 10개, 많게는 100개가 될 때도 있다.

    또 그림을 그리는 이라면 기술의 향상에 쾌감을 느낀다. 누군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하는 데에서도 기쁨을 얻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많고 그림 그리는 방법, 툴, 참고할 레퍼런스, 그리고 작업에 대한 많은 투자까지 이어진다. 과거에는 커리어 전체를 통해 겨우 발전시킨 경지를 현대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한다.

    이사무 디렉터는 그림을 잘 그리고, 누군가 칭찬을 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 핵심은 디자인이며 콘셉트 아티스트의 본질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무언가, 조형에 집중하고 그것을 창출하는 게 콘셉트 아티스트의 본질이며 그림을 잘 그리는 것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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