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6분 간 엿본 '스텔라 블레이드', 과연?

동영상 | 정재훈 기자 | 댓글: 38개 |

지난 2019년, 김형태 대표의 시프트업이 '프로젝트 이브'라는 이름의 신작을 공개했을 때, 사실 그리 큰 기대를 받진 못했다. 김형태 대표의 업력이야 대단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시는 '니케: 승리의 여신'도 출시되기 이전이었기에 시프트업이 보여준 건 오로지 '데스티니 차일드'뿐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추가 정보가 공개되며 꾸준히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작품 이름 또한 프로젝트명을 떼고 '스텔라 블레이드'라는 꽤 있어 보이는 이름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기대만큼의 우려가 남아 있었다. '도전하지 않으면 계속 비슷한 것만 만들게 된다'는 김형태 대표의 발언에는 십분 공감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개발사를 향한 우려의 시선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을 조금은 내려두어도 될 것 같다. 2024년 2월 1일, PS 진영의 신작을 소개하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서 스텔라 블레이드는 독점작 중 첫 번째 타이틀로 소개되었다. 소개가 이어진 시간은 무려 7분. 이중 6분은 게임 트레일러였고, 남은 1분은 김형태 대표의 인사였다.



▲ 이번 발표에 직접 등장한 김형태 대표

그리고 이 6분 간, 스텔라 블레이드는 이전의 걱정 대부분을 불식할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텔라 블레이드의 출시 예정일은 4월 26일. 미처 석 달이 넘지 않은 현 시점은 일반적으로 주요 개발이 전부 끝나고 마지막 QA와 디버깅을 진행하며 골드행을 준비하는 시기일 거다. 사실상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서 크게 변할 건 없다는 뜻.

그러니, 한번 더 자세히 보자 이 6분이라는 시간 속에 담긴 '스텔라 블레이드'의 이모저모를 말이다.


어색했던 인형 얼굴, 괜찮을까?

최초 공개부터 최근까지, 스텔라 블레이드의 가장 큰 매력이었으며 동시에 거부감의 요인이 되었던 주인공 '이브'의 아리따운 얼굴은 여전하다. 시대가 변하고, 게임 산업이 성숙할수록 게임 캐릭터에 대한 미적 기준도 밑도 끝도 없는 미형 캐릭터에서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감안한 미형으로 변화했다. 물론, 현실성에 너무 파묻혀 '미형'마저 잃게 되면 도리어 욕을 먹곤 하지만, 너무 예쁘고 잘생기기만 한 얼굴이 거부감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다.



▲ 최근에 보기 어려운 '대놓고 예쁜' 얼굴

그럼에도, '스텔라 블레이드'의 '이브'는 여전히 이전의 감성대로 대책없이 예쁘다. 국산 게임들의 특징 중 하나가 캐릭터 조형의 미적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것인데, 그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표정 변화도 별로 없는 편인데다 아이섀도가 무척 짙어 '너무 인형같다'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꽤 마음에 걸리던 부분인데, 이번 트레일러를 통해 그 배경이 드러나며 걱정을 크게 덜 수 있었다. 1년 전 공개되었던 스토리 트레일러는 인류가 종말을 맞은 지구에서 이브가 싸우고 있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트레일러에선, 이브의 어깨에 어떤 짐들이 얹혀 있는지를 묘사한다.

이브는 지구 멸망 당시 쉘터 역할을 한 우주 콜로니에서 파견된 강하병단의 일원이며, 인류 멸망의 주범인 '네이티브'와 싸워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띄고 지구에 첫 발을 디딘, 사실상 지구 초행이다. 게다가 함께 파견된 부대원은 전부 실종되거나 사망하고 혼자 남은 상황. 생김새에 대한 묘사를 빼두고 생각해보면, 난생 처음 보는 곳에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갔는데 와보니 나밖에 없는, 도무지 표정을 펼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 모든게 다 낯선 상황을 감안하면 뭐

달리 보면, 이브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 예를 들어 이브의 조역인 '아담'이나 '릴리'의 감정 묘사는 그리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다. 세계가 대충 망한 상태다 보니 다채로운 감정을 보여주진 않지만, 짊어진 무게 외에 낯섦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브에 비하면 감정 표현에 다소 여유가 있는 상태란 뜻이다.



▲ 주변인들의 감정 묘사는 썩 나쁘지 않은 수준이며



▲ 이브도 이전에 비하면 표정에 감정이 좀 실리는 편

때문에, 게임 내에서 보여주는 이브의 무표정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이브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이브의 감정이 어떤지, 그런 것까지 트레일러를 통해 알 수는 없지만, 비교적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출하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트레일러 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이브가 보여주는 무기질적 모습 또한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액션 어드벤처의 왕도를 따르는 디자인

'스텔라 블레이드'는 현 시대 액션 게임을 이루는 대부분의 조각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게임 UI를 한번 보자. 이번 트레일러에서 공개된 UI 구조는 이렇다.




왼쪽 스틱으로 이동하고 오른쪽 버튼으로 스킬을 누르는 일반적인 배치다. 당연히 공격과 방어 버튼은 최근 액션 게임들의 추세대로 범퍼와 트리거 버튼(L1,L2,R1,R2)에 배치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은 버튼이 그것뿐이니 말이다. 달리 말하면, 3인칭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컨트롤 메타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게임의 진행 양상은 소울라이크 장르와 유사한 점이 많이 보인다. 보관 양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체력 회복용 텀블러, 휴식을 취할 때마다 텀블러와 소모품이 충전되지만 적 또한 리스폰되는 기본 시스템 등이 그렇다.



▲ 휴식을 취하면 적이 다시 적이 등장하는 어디서 많이 본 시스템



▲ 소모품은 간이 거점에서 보충 가능, 화폐 기준은 '골드'다

성장 시스템 또한, 일반적인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문법을 따른다. 트레일러 영상 곳곳에 마치 파편처럼 드러나는 게임 요소들을 보는 순간,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즐긴 유저들은 직감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스토리 진행 과정에 따라 새로운 기능(더블 점프 같은)이 해금되고, 스킬 트리를 찍으면서 액션의 폭이 늘어난다. 처음부터 과한 조작이 필요하지 않게 기능을 제한해두고 진행에 따라 하나씩 해금하면서 서 게이머의 적응을 돕고, 동시에 서사적 장치로도 사용하는 방법인데, 어쌔신 크리드나 갓 오브 워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 특정 기능들은 진행에 따라 해금되고



▲ 스킬을 찍을 때마다 액션의 폭이 커진다

월드 디자인은 게임 상에서 완전히 확인할 수 없으나,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서브 퀘스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나온 필드를 다시 가야 할 수 있다는 것. 허브 지역인 '자이온'의 존재,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지형들,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간이 휴식처와 휴식을 하면 소모품과 체력을 보충되지만 동시에 적들도 리스폰된다는 것 등이다.



▲ 보조 퀘스트 수주도 가능한 허브 시티 자이온



▲ 각 지역마다



▲ 지형적 특색이 꽤 뚜렷하다

반면, 다른 게임에서 쉬이 찾아보기 힘든 '스텔라 블레이드'만의 장점도 트레일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브'가 입고 다니는 의상이다. 다른 액션 어드벤처 게임은 여러 복장이 존재하긴 하지만 생김새는 별 차이 없거나 거적데기에 가까운 경우도 있고, 결국 성능 따라 입다 보니 한껏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스텔라 블레이드는 누가 시프트업 아니랄까 봐 이브의 의상에 엄청나게 힘을 주고 있다.

심지어 등장하는 의상들이 죄다 퀄리티가 보통 이상이다. 6분 짜리 트레일러에서 볼 수 있는 의상만 해도 20여 종에 이르는 수준. 전부는 아니지만, 트레일러에 나오는 의상들을 모아 봤다(일부 의상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 초점이 흩어져 있다).



▲ 이 짧은 영상에서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은건지


시프트업... 카메라 좀 치는데?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예로부터 '액션'을 내세운 국산 게임은 수도 없이 많았다. '액션'을 강조한 게임은 마치 즉각적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 일단 플레이는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느낌을 주기 쉬웠기에, 개발 주체나 홍보 단에서도 액션을 내세우는 건 꽤 쏠쏠한 방법이었다. 실제로, 액션 연출을 잘 만드는 개발사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액션이 좋다는 건 단순히 얼마나 더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구현하는지, 그리고 동작을 크게크게 해 호탕한 느낌을 내는지와 같은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카메라'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별 볼일 없는 애니메이션도 카메라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다루냐에 따라 굉장한 임팩트를 줄 수 있고, 심지어 카메라 속도 조절이나 순간적인 떨림, 일시적인 톤 조절을 통해서도 액션감을 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카메라 다루는 실력이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텔라 블레이드'의 카메라 워크는 훌륭하다. 그냥 괜찮다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훌륭하다. 이 장면을 한번 보자.




이 장면은 세 가지 카메라워크가 들어가 있다. 일단 화면이 기본적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며 전투 상황을 입체적으로 비추고, 이브가 발로 상대의 갈비를 걷어차는 임팩트 순간의 재생속도가 그 전후와 비교해 확연히 빠르며, 마지막으로 타격 순간 화면이 빠르게 줌인-줌아웃을 해냄으로서 마치 게이머가 이브의 움직임에 동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 애니메이션만 치면 꽤 흔한 액션인데, 카메라워크를 더해 역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트레일러 내에서, 이런 장면은 꽤 자주 찾아볼 수 있다.



▲ 고개숙인 이브의 정수리를 잡음으로서 진짜 모든 힘을 다 하고 있구나 싶은 모습을 연출하는 컷도 있고



▲ 카메라 진행 방향을 섞고 속도 조절을 통해 액션감을 연출한 장면도 있으며



▲ 이브의 움직임 중앙에 카메라를 두어 더 역동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국산 게임 중 이 정도로 카메라를 잘 다루는 게임을 몇 번 본 적이 없다. 과거의 데빌메이크라이나 닌자 가이덴 시절의 카메라 워크가 나올까봐 상당히 걱정했는데, 일단 트레일러에서 본 것만 치면 갓 오브 워나 마블 스파이더맨이 부럽지 않은 카메라 연출을 보여준다. 어쩌면 PS 독점의 혜택으로 퍼스트 파티 스튜디오들의 노하우를 습득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액션이 저런 식으로 연출될 수는 없다. 카메라가 자주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조작이 어려워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투는 고정 카메라로 진행되다 특정 적을 처치하거나 보스전의 중간 이벤트에서나 저런 연출들을 볼 수 있을 거다.



▲ 단 한 번 나와도 게임 전체의 액션 수준을 대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주 볼 수 없어도 이 장면들이 결국 작품 전체의 액션 수준을 대변한다. 갓 오브 워의 전투 대부분은 그냥 숄더뷰 형태로 도끼를 휘두르는 장면이지만, 갓 오브 워의 액션을 생각하면 슬로우 모션으로 토르의 턱주가리를 후려치는 장면이 생각나듯 말이다. 달리 말하면, '스텔라 블레이드'가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수준이 별도의 연출이 아니라면, 적어도 액션 면에서는 뭇 게임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여러분이 궁금해 할 만한 소식을 더 붙인다. 모핑 있다.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동료 기자가 묻길래 '아 이것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찾아보니 확인할 수 있었다.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첫 6분이 아깝지 않았다

객관적 시선에서, PS 진영의 상반기 기대작의 첫 번째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스텔라 블레이드의 트레일러는 무척 훌륭했으며, 트레일러는 결국 게임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짧은 수단이다. 영상을 본 게이머가 머릿속에서 얼마나 게임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느냐가 결국 트레일러의 가치 기준이다.

그리고, 이번 영상은 시프트업이 추구하는 스텔라 블레이드의 가치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충 망해서 주인공이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최소한의 동기부여를 위한 숙명적 세계, 뚝심있게 추구하는 미형의 주인공, 그리고 최상위 티어들과 겨뤄도 딱히 밀리지 않을 액션 구성과 카메라 연출까지.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많이 보여 주려다 중심을 잃고 게이머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는 트레일러가 적지 않은 지금, 아주 명확하게 추구하는 방향을 설명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게임이 메인 요리라면, 트레일러는 잘 해봐야 전채 요리다. 결국 가치는 게임 본편에서 나오는 것. 몇몇 게임 시리즈는 지금도 트레일러만 못하단 평을 듣는다. 트레일러보다 과하게 더 훌륭할 필요도 없다. 그저 더 못하지만 않게, '예약구매 트레일러'라는 이번 영상을 보고 게임 구매를 결정한 이들이 후회할 일만 없도록 만들면 그거로 충분할 것이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