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엔씨소프트 노동조합 '우주정복' 송가람 지회장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22개 |
엔씨소프트 노동조합 '우주정복' 송가람 지회장은 회사 내 권고사직, 대기발령 방식과 사례에 대해 말하다 멈췄다. 그리고서 자신이 말한 내용을 기사에 싣지 말아달라 요청했다. 그 방식의 피해자가 재직 중이고, 내용을 언급하면 특정될 수 있어서다. 송 지회장 뜻에 공감해 구체적인 사례는 쓰지 않았다.

엔씨소프트에 노동조합이 지난 10일 설립됐다. 우주정복은 노동조합 별칭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의하는 행복한 회사'란 뜻이다. 우주정복은 과거 엔씨소프트 캐치프레이즈였다. 이때 우주정복은 '우리 모두가 주인 되는 정의로운 복지 사회를 만들자'라는 의미였다. 노조가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를 패러디한 셈이다.

엔씨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다. 이미 넥슨, 스마일게이트, 웹젠, 네이버, 카카오 노조 등이 민주노총 산하 IT위원회에 있어 서로 연대하기 수월하다. IT위원회는 엔씨 노조 설립을 지지했다.





▲ 엔씨소프트 노동조합 '우주정복' 송가람 지회장

우선, 간단히 자신을 소개해달라.

= 게임업계는 2005년 한빛소프트에서 시작했다. 그 이후로 계속 게임 개발을 이어 나가고 있다. 엔씨소프트에는 2021년 입사했다. 지금은 L2M(리니지2M)에서 기획을 맡고 있다.


노조를 설립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

= 사실, 엔씨 내에는 노조 설립에 대한 희망과 요구가 계속 있었다. 또한, 과거에 설립을 시도한 사람이 여럿 있었단 걸 확인했다. 그때 나는 옆에서 지켜보는 처지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게임업계 안에서도 엔씨소프트가 조금 더 경직된 조직문화이다. 그래서 노조 설립 총대를 메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결국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종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전에 설립을 추진했던 분들은 그 마지막 결심과 행동을 많이 어려워했던 거 같다.

여러 번 엎어지는 걸 봤다. 그런 상황들을 보며 '이거 정말 할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도 처음엔 내가 총대를 멜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 총대를 메면 힘을 보태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이번 노조 설립 제안자가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들었다. 현재는 900명 가까이 들어가 있는 그 방이다. 나는 그 방의 세 번째 참여자다. 방에 들어갈 당시 이번에는 정말 행동하지 않으면 노조가 생기지 않을 거 같더라. 그래서 그 방을 만든 사람한테 바로 만나자고 했다.

시기적으로도 여러 일이 있었다. 왜 지금 노조가 생겼냐는 것인데, 최근 사내 간담회에서 전 세계 경제 상황이 어렵고, 회사도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 것까지는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회사가 직원을 대하는 자세였다. 그 당시 일론 머스크가 트윗했던 게 있다. 요약하면 재택근무를 할 사람은 그냥 퇴사하라는 거였다. 대표님이 일론 머스크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간담회에서 굳이 그런 말을 노골적으로 해야 했나 싶다. 더 좋게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일론 머스크 관련한 대표님 발언이 못 할 말은 아니었다고 본다. 다만, 4천 명이 넘는 직원들을 모아놓은 간담회에서 그런 날 것의 발언은, 회사가 직원을 보는 시선이 어떤 것인지 직원들끼리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일들이 있었다면?

=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니어 개발자가 많이 나간 일이 있었다. 그 공백을 주니어 개발자가 잘 메꿔서 프로젝트가 나왔다. 그런데 사실 시니어들이 나갔던 이유는 마땅한 보상이 따르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사측에서 "나간 사람들은 실력이 없었고, 남아 있던 사람들이 고생해서 프로젝트를 잘 살려냈다"라는 발언이 있었다. 이런 건 하나의 사례다.

중요한 건 뉘앙스다. 정확한 단어는 조금 다를 수 있는데, 나가는 사람한테는 실력이 없고 못 하는 사람이고 우리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 잘하고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라던가, 네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고, 엘리트 개발자들은 다 우리 회사 오고 싶어 한다는 식의 말이 있었다.

그런 발언들이 많은 직원을 화나게 한 도화선이 됐다. 그리고 단톡방에 모인 직원들의 불만이 연료가 됐다. 그렇게 노조 설립 추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노조 설립을 본격 추진한 시기는 언제인가?

= 정점을 찍은 건 올해 2월과 3월 사이다. 3월에 연봉 협상이 있었고, 2월에 인센티브가 지급됐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어려우니 인센티브나 연봉 인상이 저조할 수 있단 분위기가 있었다.

그 와중에 회사 공시를 보니 임원 보수나 인센티브가 역대급이더라. 이게 단순히 임원이 많이 받았다 문제가 아니다. 같은 회사라는 한배를 탄 입장에서 일반 직원은 힘들고 임원은 역대급 최고 인센티브를 가져가는 게 맞는 걸까.

하나의 인센티브 문제 때문에, 하나의 발언 때문에 이 상황이 온 게 아니다. 결국에는 회사가 일반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쌓이고 쌓였다.


노조 설립 성명문을 보니 가족경영, 임원 중심의 관료적 조직문화를 지적했다.

= 대표님 사례는 너무 알려져 있다. 최근 엔씨웨스트 적자 문제를 보니, 관계가 전혀 없는 임원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계속 버틸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또한, 대표님 외에도 임원진 중 가족과 같이 재직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 임원 사례는 모르는 직원이 많다. 드러나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어서다. 엔씨 직원이 4천 명이 넘는데, 어느 조그마한 팀이 있다. 그 팀에는 팀장밖에 없다. 팀원 없이 혼자 있으니 다른 직원과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적다.

우리 조직만 해도 200명이 넘는데, 그 팀장이 사무실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으면 우리 조직원 그 누구도 팀장이 누군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그러다 그 팀장 가까이 일하는 직원이 모 임원이 와서 그 팀장과 사담을 나누는 걸 들었다. 그제야 임원과 팀장이 서로 형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식으로 알게 되는 거다.

임원과 팀장 사이 문제는 없을 것이다. 행정적인 절차도 모두 준수했을 것이다. 다만, 대표님의 가족 경영이 회사 전반에 녹아있단 느낌이 있다.


지적했던 불법 연장 근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 조심스럽긴 하지만 확실하게 확인된 내용이다. 회사에 근로 시간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출퇴근 버튼을 누르면 정해진 시간 이상으로 일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할 수는 없는데, 여러 가지 꼼수가 있다. 예를 들면 출근 버튼을 늦게 누르고 시작한다던가, 2시간 먼저 일하고 출근 버튼을 누르는 식이다. 이것을 위에서 종용하는 분위기가 있다.

왜 확인된 내용이라고 말하면, 그렇다고 초과 근무를 아예 안 챙겨주지는 않는다. 월말에 정정 신청 시스템이 있어서, 웬만하면 직원들이 정정 신청을 한다. 그게 월 근무시간을 넘길 수는 없다. 어쨌든 그전에 출근 버튼을 누르지 않고 일한 다음에, 다음 달 1일이 되면 정정 신청을 한다. 지나간 내용이니까 수정하는 게 된다. 시스템상으로 넘어가지는 못하지만 수정하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정해진 근로 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회사에 와 2시간 일하고 출근 버튼을 누르고, 퇴근 버튼을 누르고 2시간 더 일한다. 그런 식으로 하루 몇 시간씩 더 일하게 된다.

회사 시스템은 주 52시간이 넘어가면 아예 출입이 안 되게끔 되어있다. 법을 어기지 말라고 회사가 그 시스템을 만든 건데, 일을 더 할 수밖에 없다. 일정을 맞춰야 하니까. 사실 주 52시간만 일해서는 출시 일정을 못 맞추는 상황이다. 그러니 일반 직원 입장에선 일을 좀 하고 출근 버튼을 누르게 된다.




어떻게 개선되길 원하는지?

= 일단 법을 지키자는 거다. 최소한의 법을 지키고, 그다음을 얘기해야 한다. 많은 것을 개선하고 싶다. 다만,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한다.


권고사직과 대기발령에 관해 얘기해달라.

= 권고사직을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대기발령 경우에 과거 넥슨의 R팀에 해당하는 '데브팀'이 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드랍되면 다른 팀에 가거나, 데브팀에 가는 거다. 모두가 다른 팀에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팀마다 TO가 있고,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 다른 팀으로 못 간 개발자는 데브팀으로 가서 대기하게 된다.

문제는 일단 데브팀으로 넘어가면 회사에서 보는 인식과 대우가 확실히 달라진다. 사실상 회사 직원으로 안 보는 느낌이다.

잘 다니고 있다가 부서 이동을 하게 되면 간편한 절차를 통해 옮길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데브팀에서 가려면 아예 다른 회사에 이직을 하는 거처럼 준비해야 한다. 취업준비생이 이력서를 쓰는 거처럼 서류를 준비하고 면접도 새로 봐야 한다. 일반적인 취업 준비의 전체 과정을 다시 겪게 된다.

데브팀에 가면 팀 이동을 위해 써야 하는 서류도 일반적인 팀 이동 때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팀 이동을 하면 서류는 정말 간단하게, 자기 기술과 포트폴리오 정도만 작성한다. 데브팀에서 서류를 준비할 때는 출신 학교부터 시작해 몇 년도에 연봉이 얼마였는지, 하나하나 다 적어야 한다. 그냥 취업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현재 데브팀에는 몇 분 정도가 있는지?

= 그 일을 겪다 보면 심적으로 힘들어 자진해 퇴사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인원 변동이 계속 있다. 현재 기준으론 열 분인가 열두 분 정도 계신 것으로 안다.


어떻게 개선되길 원하나?

= 데브팀에서 이동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부서를 이동하는 수준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기서 TO 문제가 발생한다. A팀의 TO가 50명이고, B팀의 TO가 50명일 때, B에서 A로 1명이 가면 TO가 51명과 49명으로 바뀐다. TO를 가져가는 거다. 문제는 데브팀에는 TO가 없어서 가져갈 TO도 없다. 빈자리가 생겨야만 데브팀이 지원이라도 해볼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데브팀에 있다 보면, 계속 거기서 놀 수는 없으니 단순 노무를 권유하기도 한다.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비개발 업무 권유를 받으면, 그 개발자는 멘탈이 터진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폐쇄적 평가 및 보상제도를 지적했다.

= 금액을 말하는 게 아니다. 회사가 힘들면 적을 수도 있다. 일반 회사 대부분 통보식이지만, 그래도 최종 사인하기 전에 면담 절차가 있다. 엔씨는 깜깜이 식으로 진행된다. 연봉 협상 액수는 바뀐 급여가 처음 나올 때 알 수 있다. 얼마가 올랐는지 직원 스스로 계산해야 한다.

엔씨는 급여가 보통 새벽 1시에서 2시쯤에 입금된다. 25일이 월급날인데, 25일 새벽에 입금되면 다음 아침에 출근해 서명을 하는 거다. 그 과정은 깜깜이로 진행된다.


그 외에 문제가 있다면?

= 비서가 아닌 평범한 일반 직무인데 임원이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담배 심부름, 동사무소 서류 떼오기, 당근마켓 중고거래 대신해오기, 애들 이민 보낼 때 필요한 서류 준비하기 등. 나도 게임업계에 꽤 오래 있었지만 이런 일까지 시키는 건 잘 못 봤다.




노조 가입자 수를 알 수 있을까?

= 나도 정확히 모른다. 10일 오전 9시에 노조 설립을 알리고,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관련 업무를 보지 못했다.


당장의 목표는 무엇인가?

= 가족 경영을 문제로 보지 않는다. 잘하면 할 수도 있다. 가족 경영을 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상식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엔씨웨스트 사례는 상식을 넘은 수준이다.

그보다 문제는 군대식의 상명하복 문화다. 인사팀은 엔씨가 수평적인 문화, 소통을 많이 하는 문화라고 홍보한다. 실제는 다르다. 예전부터 그런 말이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그런 이율배반적인 현상 때문에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를 개선하고 싶다.


노조 설립 과정을 지켜봤는데, 좀 특이했다.

= 단톡방이 오픈됐다보니, 사실 노조 설립 준비가 다 노출됐다. 당연히 회사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갔다. 비밀리에 했다면 물 밑에서 준비를 많이 했을 텐데, 여건이 못됐다. 넥슨노조, 스마일게이트노조, 네이버노조 등이 정말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빠르게 진행됐음에도 크게 구멍 난 것 없이 설립할 수 있었다. 넥슨노조, 스마일게이트노조 등이 주말에도 계속 만나주며 일을 도와줬다.


단톡방을 보니 가입 인증이 많이 올라오더라.

= 분위기는 좋다. 숫자 팩트는 확인하지 못했다. 분위기로만 비교했을 때는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노조 설립 당일보다는 좋다고 생각한다. 노조를 기대하던 직원들이 이미 많아서 첫날 분위기는 조금 뜨거운 거 같다. 일단 목표는 과반 노조이다.


주위 반응은 어떤지?

= 일단 다들 좋아한다. 설립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들 해줬다. 연락처가 공개되다 보니 응원한다는 메시지도 많이 왔다.


총대를 메기 전에, 마지막까지 고민한 지점이 있었나?

= 개인적으론 확신했다. 다만, 주위 호응이 어느 정도로 실제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노조라는 것은 혼자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수의 집행부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조합이니, 모여야 진행이 된다.

가장 많이 문의받은 게 노조에 가입한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냐는 거였다. 아무래도 신원 공개를 많이들 꺼렸다.

이해된다. 회사에 오래 계신 분들부터 새로 오신 분까지, 회사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된 거 같다. 괜히 눈 밖에 나면 안 되니까. 직장 생활에선 평범한 얘기일 수 있는데, 엔씨소프트에선 그 수준이 좀 다른 거다. 이 부분이 마지막까지 걱정이긴 했다.


마지막으로, 김택진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한번 뵙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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