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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아이온2의 문제점은 성장 시스템이 아니라 운영 철학에 있다

아이콘 헬미새
댓글: 4 개
조회: 864
추천: 5
2026-10-20 04:11:42
한국 MMORPG를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코어 유저층부터 탄탄하게 형성해야 한다. 단순히 많은 유저를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유저들이 게임에 애착을 갖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 시스템이나 파밍 콘텐츠만으로는 부족하다. 롤플레잉의 의미대로 유저들이 게임 안에서 서로 어울리고, 때로는 유치하게 놀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좋은 MMORPG는 모든 순간에 명확한 목표와 보상을 제공하지 않아도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접속하고 어울릴 이유가 있는 게임이다. 이러한 관계와 분위기가 형성되면 특정 콘텐츠가 다소 부실하더라도 게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생긴다. 나는 이런 요소가 게임의 저점 방어에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온2는 이러한 롤플레이의 본질보다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수치를 올리는 과정에 지나치게 치중한, 껍데기만 RPG인 성장 시뮬레이터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성장이 게임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맹목적인 목적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성장의 결과로 새로운 경험과 관계, 경쟁과 협동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성장을 위해 다시 정해진 과정을 반복해야하기만 한다면 유저들은 언젠가 지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챗바퀴 안에서도 사람마다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PVP를 즐기고, 누군가는 PVE를 원한다.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는 없다.

PVP 유저에게는 경쟁할 상대가 필요하다. 반대로 PVE 유저에게는 PVE 콘텐츠를 즐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PVP를 즐기는 유저의 재미를 위해 PVE 유저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도 안 되며, PVE 유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PVP의 재미를 무조건 억제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유저를 동일한 콘텐츠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플레이 방식이 공존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일부 유저들이 주장하는 PVP 아이템의 완자화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인지 의문이다. 기존 유저와 신규·복귀 유저 사이의 스펙 격차를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템의 완자화가 결국 PVP에 참여하지 않는 유저까지 PVP 콘텐츠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접근 방식부터 잘못된 것이다.

PVE를 주로 즐기는 유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유저는 PVP에 별다른 흥미가 없고, 경쟁보다는 던전 공략이나 레이드, 캐릭터 육성을 즐긴다. 그런데 완화 이후 PVP 유입을 위해 추가된 특정 보상을 얻기 위해서 억지로 PVP에 참여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콘텐츠를 억지로 수행하며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 숙제를 처리하는 시간으로 바뀐다. 운영진은 PVP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참여율을 높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PVP에 대한 반감만 키울 수도 있다.

보상을 미끼로 유저를 특정 콘텐츠에 참여시키는 것과 그 콘텐츠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PVP를 활성화하고 싶다면 PVP를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보상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콘텐츠로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은 운영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단순한 PVP 아이템 완자화보다 PVP와 PVE의 성장 체계를 완전 분리하는 방향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PVP 스펙업은 PVP 관련 재화로만 가능하게 하고, PVE 스펙업은 PVE 콘텐츠에서 얻는 재화로 진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각 콘텐츠를 즐기는 유저가 자신이 선택한 플레이 방식 안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PVP를 하지 않으면 PVE 성장에 불이익을 받고, PVE를 하지 않으면 PVP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식으로 한쪽의 성장을 다른 쪽에 종속시키지 않는 것이다.

나는 김남준 디렉터가 게임의 장기적인 운영과 유저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게임을 운영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장 속도를 조절하고, 이벤트를 통해 유저를 복귀시키고, 특정 콘텐츠의 참여율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다양한 성향의 유저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어떤 구조가 유저를 정착시키며, 어떤 정책이 장기적으로 유저 이탈을 유발하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특히 한국 MMORPG 시장은 생각보다 좁다. 새로운 게임이 등장했다고 해서 다른 게임을 하던 유저들이 대규모로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정착한 게임을 떠나 새로운 게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려면 그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경쟁작의 운영 문제나 사건·사고, 콘텐츠의 지루함 등으로 유저들이 이탈할 계기가 생겼을 때 비로소 다른 게임이 그 수요를 흡수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결국 경쟁작에서 발생하는 유저 이동의 흐름과 자사의 게임이 제공하는 매력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이러한 시장에서 퍼주기 or 완자와 같은 카드를 반기별로 반복해서 꺼내 드는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완자가 기존 유저의 복귀나 성장 격차 완화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른 게임을 즐기던 유저가 아이온2로 넘어올 이유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완자는 이미 관심이 있는 유저의 복귀를 돕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신규 유입을 보장하는 만능 카드가 될 수는 없다. 유저를 끌어올 만한 게임 자체의 매력과 시장의 유입 기회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반복적인 완자 정책은 단기적인 관심만 유도하고 장기적인 경쟁력은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다.

결국 MMORPG의 장기적인 수명은 유저를 얼마나 빠르게 성장시키느냐, 얼마나 많은 보상을 제공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유저들이 왜 이 게임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지, 다른 유저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성장 시스템은 그 경험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어야지, 게임의 모든 것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아이온2가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아이템을 완자화하거나 보상을 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PVP와 PVE의 공존을 위한 구조를 설계하고,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며, 각자의 플레이 성향을 존중하는 성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단기적인 복귀 유도 정책에 의존하기보다 유저들이 게임에 정착할 만한 근본적인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MMORPG 운영은 유저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왜 이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는 아이온2의 문제가 단순한 콘텐츠 부족이나 특정 아이템 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운영 철학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Lv61 헬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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