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대포의 등장은 그동안의 전술을 확 바꿔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공성전이 개떼같이 몰려들어 성벽을 타고 올라가는 형태였다면, 14세기 초반부터 사용되기 시작된 초기 대포들의 도입으로 인해 성벽을 부수고 돌입하는 형태로 변하였다. 그렇기에 굳이 대포는 이동을 자주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고, 그것은 곧 단점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이 대포들은 거대하면서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살상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고정되어 있는 건축물. 특히 성벽을 부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어느새 전장에 제일 보기 쉬운 물건이 되었다.
대포는 주로 두 가지로 만들 수가 있는데, 청동과 철이었다.
청동이야 금속 특유의 특성으로 인해 예전부터 교회의 종을 만들던 기술공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애용되었고, 철은 기술적 문제로 인해(특히 균일하지 않으면 깨어지는 특성) 실용화 되기가 매우 힘들었다.
전장식 포 중에서도 청동대포들은 전장에서 녹이 잘 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애용되었다.
물론 원자재는 철이 청동보다 쌌으므로 일부 철을 이용하여 대포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쓰디쓴 고배를 마셨고, 그나마 철 대포라고 하는 것들도, 부식과 그 품질 때문에 거의 사장되어 곧 유럽은 엄청난 청동의 부족현상을 겪게 된다. 곧 청동의 가격의 급등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청동의 가격급등이 결국 근 미래에 어떤 국가에게 엄청난 기회를 주게 될지는 이때는 아무도 몰랐다.
근데 왜 지금까지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가?
사실상 대포의 인식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살상용’이 아닌 ‘파괴용’이었기 때문에 크기가 계속 커졌다는 것. 하지만 그 크기만큼이나 엄청난 무게에 기동성을 제한받게 되고, 결국 1385년 알후바로타 전투에서 카스티야 군대는 엄청난 크기의 돌을 발사하는 대형 사석포(대포의 초기형태)를 무려 열 여섯문이나 보유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대포가 없던 포르투갈의 군대에게 깔끔하게 발리고 만다.
여기서 한 국가는 이 대포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바로 프랑스.
프랑스하면 대포!
15세기의 프랑스 포병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대포의 단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대포의 소형화에 힘써서 1494년 샤를 8세의 군대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때 나름 포술좀 쩐다고 생각하던 이탈리아 군들은 프랑스의 소형대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매우 작은 이 대포들은 말에 끌고 다닐 수 있고, 장전이 빠르고, 성벽만이 아니라 대인전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기존의 대포의 상식을 뒤 엎어버린 것 이다.
하지만 쓸데없이 기사나, 기마병이나 이런것을 좋아하던 유럽인들 답게 조그만 물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대포들은 발사간격도 길도 쓸데없이 크기만 큰 것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하지만 16세기 말에 이르러서 공격력을 유지하면서도 기동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당시 에스파냐는 대포가 필요했지만, 당장 대포를 제작할 수 있는 숙련공이 부족해서 대부분 외국에서 대포를 사오는 형편이었다.
거기다가 대포의 값은 또 얼마나 비싼가?
내수산업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여 인플레에 쩔어있던 에스파냐를 지탱해 준 것은 전적으로 에스파냐가 신대륙에서 삥 뜯어온 엄청난 양의 귀금속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의 소식통은 이것을 비꼬아 “서인도 제도에서 오는 금이 에스파냐에 하는일은 비가 지붕에 하는 일과 같다. 한바탕 쏟은뒤 흘러가 버린다.” 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프랑스 에스파냐도 나왔는데 그 동안 영국은 뭘 하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영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다행히 매우 알뜰 살뜰히 국가 재정을 모아놨던 아버지 헨리 7세 때문에 헨리 8세는 초기에 돈을 펑펑 써대면서 여러 국가에서 대포를 수급할 수 있었다. 다만 얼마안가 결국 재정 파탄을 맞게 된다.
그러나 신대륙에서 원주민 등꼴을 빼먹는 에스파냐와 달리 영국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거지신세였다. 그렇기에 그는 국내에서 철을 이용하여 대포를 만들어 외국에 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가 말렸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 서식스에 용광로를 만들어 제철소를 세운 그는 숙련장인이었던 랄프호지를 끌어들여 최고의 집단을 만들었고, 그리고 정말 천운으로 영국의 주철대포는 그 후부터 이름을 만방에 날리게 된다.
남들 다 실패한 주철 대포가 영국에서는 성공한 이유는 그 이후에야 알려졌는데, 서식스의 원광(철의 원석)에는 인 성분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주철임에도 대포의 갈라짐이 덜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서식스 장인들의 제철 공정 기본 원칙을 준수했기 때문인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픈 것이라 하겠다.
이 영국의 대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정말 엄청난 장점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일단 단점으로는 내구성 문제로 인해 청동대포보다 두꺼워야 했고, 그 결과 무게가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이 있다. 녹이슬어서 쓰기 힘든것은 옵션이다.
하지만 이 단점을 전부다 메꾸고도 남는 엄청난 장점은 바로 ‘싸다’는 것이었다.
싸면 좋은 것 아닌가?!
당시 청동대포는 철대포의 4배가격.
그 말은 청동대포 1개 살 가격으로 4개의 대포를 살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 영국인들은 시장에 싸고 그나마 쓸만한 물건으로 대포시장의 평정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영국의 주철대포는 그 ‘싼’가격으로 인해 재정의 압박을 받던 유럽(각국도 청동대포를 사느라 거의 재정이 바닥이었다. 에스파냐만 제외하고)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당연히 수출 판로도 바로 뚫렸고, 영국은 대포판매로 인한 이익에 정말 콧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 우수한 철제대포를 결국 적국의 손에 넘긴다는 생각에 영국은 1574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령 하에 제작 대포수를 국내에서 사용되는 숫자로 제한하게 된다. 당연히 수출량이 급감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웃기게도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수출허가장을 못받자 교묘한 빼돌리기가 시도되었다.
1623년에는 많은 네덜란드 선박들이 영국인 소유인 것처럼 위장하여 영국산 대포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항이 서식스 주의 치안판사들에게 고발되기도 했다.
또한 그 후에 에스파냐가 영국에서 주철대포를 수입할 수 없게되자 개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언급했다시피 기술공이 거의 전멸하여 외국으로 다 도망간 상태였다), 그나마 네덜란드는 영국의 대포를 모방하여 1620년대에 주철대포를 만들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주철대포는 영국이외의 국가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많은 대포들이 다 어디 쓰인걸까?
그것은 바로 그 당시 각국에서 경쟁적이던 범선에 있었다.
범선의 대중화는 해상전에 대포의 수요를 급증 시켰다.
1. 1300년대 이후 지중해 무역선의 주 돛대에 사각 돛 도입
2. 하나 돛에서 세 돛대로 변화
3. 15세기동안 무역선 적대용량의 엄청난 증가
4. 공격과 방어에서 대포에 대한 의존도의 증가
이러한 발전은 지중해식도 북방식도 아닌 혼합형 배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사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범선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돚에 의존하는 긴 배-갤리선-이 전함으로, 돛에 의존하는 배-중세 돛단배, 범선의 초기형태-는 무역선이라는 분업을 확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중해에서 17세기 말까지 함대의 중추는 결국 오로지 갤리선이었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베네치아 뿐만 아니라 제노바, 투르크, 몰타기사단에도 적용되었다.
이 말은 17세기 말까지도 지중해에서의 전투는 적의 배에 올라타는 백병전 위주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벗뜨. 1화에서도 밝힌 것처럼, 지중해에서는 무리없이 항해가능한 갤리선은 대서양의 사나운 파도와 남서풍을 버텨낼 수 없었다. 더군다나 먹는건 또 얼마나 먹는가? 사람머릿수가 증가하니 물자를 많이 실어야 하고, 또 사람의 수가 부족해지면 운용이 불가능 한 단점도 있었다.
때문에 15세기를 거치면서 대서양의 세력들은 점점 범선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 것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것은 영국인이었다.
여기서 잠깐!
범선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군선으로서 범선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이전부터 초기형태 범선들은 애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국의 우수한 대포를 실은 영국의 범선들이 사략행위를 시작하면서 범선에 너도나도 대포를 달기 시작하는 범선의 군선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음화에서는 드디어 갤리온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