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연구노트 (팁)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해적의역사 - 스페인대해(카리브해) [2]

아이콘 창고지기벨
댓글: 1 개
조회: 1945
추천: 1
2006-09-11 12:18:49
2) 해적 최대의 전리품
약 2백년 동안 스페인의 가래온선은 대서양을 항해하며 유럽의 상품과 개척자들을 스페인에서 남미로
실어 나르고, 신세계의 보물을 가득 싣고 되돌아 왔다, 16세기의 해적들은 스페인의 이 보물선을 중
요한 표적, 즉 최대의 전리품으로 삼았다.

스페인의 가레온 선들은 단독으로 항해하지 않고 상당한 규모의 보물섬 함대를 이루어서 항해했다.
대규모 함대를 공격하는 것은 위험한 사업이었지만,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 같은 해적들은 보물을 실
은 함대를 줄곧 찾아다녔다. 위험이 적은 표적은 마닐라 갈레온선 이었다. 중무장한 그 배는 필리핀
에서 멕시코까지 매년 단독으로 항해하며, 동양에서 스페인까지 수확물을 실어날랐다. 드레이크가
마닐라 갈레온서, '카카푸에고'를 나포한 것은 해적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

복잡한 행정체계는 이 함대의 연중항해를 보장하면서 보물선단(플로타) 전체를 관리하고, 선단은
필요한 부를 스페인 군주에게 운송했다. 16세기에 스페인 제국의 영토는 유럽과 신세계의 넓은 지역
에 걸쳐 있어서, 왕은 이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신세계의 은을 필요로 했다. 보물선단이 없었다면
스페인은 아마도 파산 했을 것이다. 세비야의 행정관들은 그 당시 최대의 관료조직이었던 스페인 제
국의 행정을 감독했다. 그들은 대서양 횡단 여행을 완전 독점하고, 스페인 군주를 위해 엄청난 이익
을 지켰다.

3)보물선단(플로타)의 연중 운용
스페인 대해의 선단이 1530년 부터 1735년까지 해마다 세비야를 향해 출발했다. 스페인 대해에 들어
오면 선단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티에라 피르메 선단은 포르토벨로로 항해하여, 페루의 풍부한 광산에서 은을 가져와 파나마 지협으로
보내고 항구의 창고에 쌓았다.
갈레온 선은 카르타헤나로 항해하여, 에콰도르의 금, 콜롬비아의 에메랄드,베네수엘라의 진주
를 가져왔다.
온두라스 소선단은 현대 온두라스의 트루히요를 찾아가 중미의 남색염료와 향신료를 실었다.

세 선단은 모두 쿠바의 아바나에 집결한후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귀국준비를 했다. 그외의 선단은 플
로타 가레온 선의 적재 능력에 맞추어 제국의 상품을 운송했다. 남해 함대는 페루의 은을 파나마로 선
적하는 한편 마닐라 갈레온선은 필리핀에서 멕시코의 아카풀코까지 항해했다. 이들 항구에 이르면 보
물은 노새들의 등에 실려 육상 수송 되었는데, 목적지는 스페인 대해의 항구들인 포르토벨로와 베라크
루스 였다.

스페인 대해를 칩입하는 두 가지 목적은 스페인 제국을 혼란시키고 전리품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목
적을 달성하려면 보물선단을 가로채는 게 최고였다. 스페인 행정체계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더
취약했다. 행정이 취약한 항구에 함대가 닻을 내리고 정박했을때 선단의 몇 척의 배를 급습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드레이크가 카르타헤나를 습격한 전술이었다. 드레이크는 동일한 전술에 입
각하여 파나마에서 포르토벨로로 가는 노새의 육상 호송대를 습격하려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7세기 초에 이르러 스페인의 그런 수송체계는 쇠퇴했다. 유럽에는 스페인의 은이 물밀듯 들어가 그값
이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을 확신시켰다. 선단의 규모는 끊임없이 줄어들어 17세기 말에는 그숫자가 10척
이하였다. 1740년에 이르러 보물선단의 체계는 끊어지다시피 했고, 독자적인 전함이 귀중품을 스페인에
실어 날랐다. 그렇게 하여 일찍이 세계의 부러움을 사면 대담한 해적들의 최대 표적이 되었던 상업조
직은 사라졌다.

Lv68 창고지기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