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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아트] BL주의)망갤문학 임덕빈X한재호

깨꾸
댓글: 5 개
조회: 1740
추천: 2
2015-01-22 01:23:41

1.짬뽕국물을 쏟은어느날

"불쌍해서 어쩌나....." "대체 저게 왜 서버 컴 위에 있던거야?"


비좁은 서버실 안에서 한 사내가 바닥을 닦으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안타까운 눈초리로 지켜보는 사람들, 몇몇은 그를 책망하기도 하고


몇몇은 혹시라도 돌아올 추궁을 피하려 서로 말을 맞추고 있었다.


"왜이리 소란스러워, 이벤트 준비는 어떻게 됬어"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그들의 지휘관 한재호였다. 시간은 저녁 7시 40분


곧 있을 이벤트를 시작하기 전 준비상황을 살피러 온 것이다.


"저기 그게......" 재호의 등장에 담당자 중 한명이 그의 앞에 나섰다.


"우물쭈물하지말고, 할말만 딱 해"


저번의 이밴트실패로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 선 재호가 그에게 말했다.


"서버상태가 안좋습니다"


어쩔수없이 사실대로 입을 여는 사내, 주변에서 수근거리던 사원들도


숨을 죽이며 재호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서버가...안좋다? 이벤트 시작 20분 전에?"


잠시 숨을 고르던 재호는 화를 주체못하고 테이블에 놓여있던 머그컵을 집어던졌다.


"어떤새끼야"


살쾡이같은 눈을 치겨뜨며 사원들을 둘러보는 째호,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모두 겁먹은 나머지


제대로 말조차하지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시....신참이 그랬어요"


겁에 질린 여사원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재호에게 말했다.


"신참 누구, 설마 또 그 놈이야? 아직도 안잘랐어?"


저번 이벤트 실패의 원인제공자, 그의 이름은 임덕빈이었다.


"죄...죄송합니다!"


걸레질을 멈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재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신입 임덕빈,


나름 경력있는 개발자였지만, 외인구단으로 명성이 자자한 마영전팀에선 풋내기일 뿐이었다.


"죄송하면 다야? 이번엔 또 뭔데? 저번엔 서버시간 잘못 적용시키고 이번엔 뭐 서버 전원이라도 건드렸어?"


"아닙니다!"


잔뜩 겁먹은 덕빈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럼 뭔데, 이번엔 또 뭔 문제인데 새꺄!"


덕빈의 멱살을 붙잡고 윽박지르는 재호, 우물쭈물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덕빈이 말했다.


하지만 화가 날대로 난 재호의 귀에 그의 목소리는 거슬리기만 했다


"크게 말하라고! 오늘 끝을 볼까?"


"짜...짬뽕국물을 쏟았습니다!!"


덕빈은 눈물콧물을 쏟아내며 재호에게 말했다.


덩치에 어울리지않게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던 덕빈은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마음같아선 한대 쥐어패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짬뽕국물....별거없네, 자 다들 일 하자고 일 앞으로 15분 남았어"


의외로 냉정하게 상황을 진행시키는 재호를 보고 팀원들은 어리둥절했다.


"너네 목 날아가기 전까지 15분 남았다고, 뭣들해 서버 내릴까?"


그제서야 사태파악이 된 팀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벤트 시작 5분전, 게임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하필이면 건드린 서버가 로그인서버였다니....모두들 자신들의 운명을


준비하기라도 하는 듯 채념하고 있었다.


"쯧쯧....진짜 못써먹겠구만, 단체로 사직서나 준비해둬"


결국 보다못한 재호는 ds서버럴 우회시켜 임시방편으로 로그인서버를 살리는데에 성공했다.


"팀장님 그렇게 되면 기사단이랑 아레나는"


"니들이 그러니까 안되는거야, 지금 접속이 중요하지 게임이 중요해?"


결국 이벤트시간 1분을 남기고 목표동접자수를 맞추는데에 성공했다.


팀원들은 그의 상황판단력에 감탄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머저리들....야 짬뽕국물, 넌 나 따라와"


째호는 투덜거리며 덕빈을 끌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메케한 담배냄새와 함께 수북히 쌓인 담배꽁초들이 책상위에 겹겹이 쌓여있었다.


"이번 한번만 봐준다, 다 치워"


"네...넵!!"


덕빈은 군소리없이 재호의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재호는 그의 능력을


별로 신임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직하고 순수할 정도로 잘 속아넘어가는 그의 멍청함과


청소실력에 재호는 그를 알게모르게 넘겨주고있었던 것이다.


주머니에서 반쯤 국진 담배곽을 꺼내어 마지막 남은 한개피를 입에 무는 재호,


군말없이 청소하는 그의 앞에 한 모금밖에 안 마신 돗대를 버렸다.


"아 실수"


당연히 의도적으로 한 짓이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 단지 신입을 괴롭혀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군말없이 히죽히죽 웃으며 청소하는 덕빈, 그런 그의 모습에 살짝 짜증이 났는지


재호는 입을 열었다.


"지금 니가 웃을 상황이야?"


"아닙니다"


덕빈은 금새 표정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또 다시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죄송합니다.너무 기뻐서 그만....."


금방 풀이 죽어버리는 덕빈, 이럴때보면 그는 덩치만 큰 아이같았다.


"말해봐, 화 안낼태니깐"


"왠지 디렉터님이면 그렇게 하실것같았거든요....."


"자세히 말해봐"


의외의 말이었다. 신입인 녀석이 자신의 생각을 읽었다?


그것도 얼뜨기인 녀석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재호의 자존심을 긁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신의 오만함이란걸 깨달았다. 덕빈은 말 그대로 순수한


프로그래머였다. 잔꾀부리지않고 정석대로 차근차근, 느리지만 확실하게


얽혀버린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재호는 잠시 패닉에 빠졌다.


"제가 잘못한겁니까....죄송합니다"


재호의 표정을 보고 자신이 또 잘못했다 생각하고 사과해버리는 덕빈,


다시 정신을 차린 재호는 그를 사무실에 남기고 밖으로 나섰다.

"재호 씨, 여긴 무슨일이야?" 재호가 찾아간 곳은 다름아닌 인사과였다.


"그냥, 찾을게 좀 있어서" 거리낌업이 파일철을 검토하는 재호, 신입들의 이력서를


모아둔 서류뭉치를 발견한 뒤 그는 별다른 인사없이 인사과를 빠져나왔다.


"정리는 좀 하고가야지!" 어지럽게 파헤쳐진 서류철들을 정리하며 툴툴거렸다.



복도를 터벅터벅 걸으며 신입들의 이력서를 훓어보는 재호는 덕빈의 이력서를 발견한 뒤


잠시 자리에 멈춰섰다. 별다른 특징도 없고 이력도 없는 사내, 그런 사실에 재호는 속이 끓었다.


가난에 쫒기듯 살며 악착같이 손에 넣은 지금의 지위를 생각하며 재호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무언가 넘을수없는 듯한 거대한 벽을 느낀 재호,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재호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난 뭐가 되는건데...." 허탈하게 벽에 기대며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재호, 마지막에 버린 돗대가 왠지 아쉬워졌다.


재호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정리는 다 끝냈습니다" 잔뜩 긴장한 덕빈이 정리된 사무실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어, 그리고 다음은 없을줄알어"


덕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상기된 얼굴에는 금새 미소가 돌아왔고 덕빈은 90도로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청소도 잘하네, 새끼...." 깨끗하게 정리된 서류들과 찌든 때가 벗겨진 책상 위에 발을 얹으며 재호는 서랍 맨윗칸에서 담배 한갑을 꺼내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동경해본 적이 있던가.....삶에 찌들었던 재호에게 덕빈은 새로운 자극제였다.


"나도 늙었나 봐" 재호는 감성에 빠진 자신을 뒤로 하고 새로운 기획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것만은 하기 싫었지만, 모든 걸 짊어질 때가 온 것이다.


바탕화면에 잠궈두었던 파일 하나를 연다


[기획안 - 추석맞이 키트대잔치]


"일이나 해야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판을 타이핑하기 시작하는 재호, 오늘따라 그의 뒤가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초췌한 모습으로 회의를 나서는 재호, 예상대로 기획안은 극찬을 받으며


통과되었다. 보통은 올라갔다 하더라도 몇번의 재검토가 진행되거나 사장되기 쉬운게 이쪽 바닥의


현실이었지만, 재호만은 달랐다. 그간의 실적과 쥐어짜내기식 운영은 넥슨 안에서도 약소국으로 취급받던


마영전팀을 급부상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팀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이상도 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개발자로서의 양심, 애써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양심을 꾸욱 참으며 악착같이 올라왔지만


이 이상은 한계였다. 더이상 자신을 속일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다들 들었지, 이번 추석 이벤트는 키트로 시작할거니깐 구성품이랑 가격 책정하고 확률은 뭐 알아서들 조정하고...

일단 이게 우선 사항이니깐 준비해둔 업데이트는 추석 이후로 미뤄둬. 늘 하던대로만 하자"


팀원들과의 회의는 그의 일방적인 통보로 끝이 났다. 모두 잘못됬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눈 앞에 보이는 이득, 이것은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라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기에


쓰린 속을 움켜쥐고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팀장님, 이건 아닌거같습니다" 회의실을 나가려던 재호를 멈춰세운 건 다름아닌 덕빈이었다.


"아시잖습니까, 이런건 단기적인 걸 누구보다 잘 아시잖습니까!"


겁많고 소심한 줄로만 알았던 덕빈의 말에 팀원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아직 이 친구가 신입이라 그래요, 팀장님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그의 선임은 덕빈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맞아, 이런거....단기적인거 나도 알아" 재호가 돌아서며 덕빈에게 말했다.


"그런데....알잖아, 원래 이런 게임이란거. 무슨 빛을 보고싶은건데? 구식 엔진에

코드만 드럽게 꼬여있는 이 똥덩어리에서 무슨 빛을 보고싶은건데?"


참고있던 울분을 터트리며 덕빈의 턱을 가격하는 재호, 철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덕빈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래도....이건 아니잖아요" 바닥에 쓰러진 덕빈이 천천히 일어서며 재호에게 말했다.


"아니면 뭘 할수가 있는데! 니가 뭘 할수있는데!"


덕빈의 멱살을 쥐어잡고 윽박지르는 재호, 덕빈은 축 쳐진 눈동자로 재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됐다....그만하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거잖아, 놀 나이는 지났어"


재호는 힘없이 회의실 문을 닫고 건물을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응시생 한재호입니다"


훤칠한 키에 목표의식이 확고해보이는 눈매, 그리고 살짝 긴장했지만 확고한 의지가 보이는


목소리는 면접관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재호씨, 이력이 재미있네요.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셨다고요?"


그의 앞에는 완고해보이는 3명의 면접관이 그를 훓어보고 있었다.


"평소 관심있던 분야여서 준비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됬습니다"


"그런데.....경력이 없으시네요? 이 바닥 아시잖습니까, 경력이 우선이란걸"


면접관 중 한명이 영 탐탁치않은 듯 한숨을 쉬며 그에게 말했다.


"실력은 자신있습니다. 자격증란에 보시면...."


"아니...한재호씨, 자격증은 과정 중에 하나인거 아시잖습니까."


또 다른 면접관이 계속해서 그를 압박해왔다.


재호의 눈 앞은 캄캄해져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실언을 하고 만다.


"전 게임이 좋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한 마디, 이젠 글렀구나 싶어 재호의 눈에선 눈물이 핑 돌았다.


"재밌네요, 방금 그 소리" 그 때 아무말 없던 면접관이 입을 열었다.


면접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려보이는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재호에게 다가갔다.


"이은석 군, 자리에 앉게" 그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면접관들이 그를 말렸다.


"선배님들 이 친구, 저한테 주시죠" 그의 확신에 찬 한마디에 면접관들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확신은 있나?"


"제 눈은 정확합니다"


그렇게 이은석과 재호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은석의 인재등용은 거침없었고, 외인구단으로 불리던 데브캣은 어느덧 넥슨의


주무기가 되어 점차적으로 그 규모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못한 프로젝트의 성과와 거듭되는 개발자와 상부의 충돌은


마비노기영웅전의 쇠퇴를 가져오게 되었다.


결혼을 핑계로 디렉터에서 내려가게 된 이은석은 마지막 부탁으로 지금의 디렉터인


재호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자신은 후방으로 물러났다.


프로젝트의 실패로 완벽하게 몰락한 마영전팀을 다시 살린건 재호의 무모함과


상부의 의견을 수렴한 적극적인 쥐어짜기식 운영이었다.


모두들 꺼려하고 피하던 일을 그는 해냈던 것이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수백건의 욕설과 협박, 모든 공격은 재호를 향해 있었다.


"나, 담배나 배울까 봐"


그도 사람이었다.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마음 아픈


그였다. 애꿎은 담배만 태우며 자신을 탱커라고 애써 참아내는 재호, 하지만 천갈래 만갈래로 찢긴


그의 자존심은 담배연기로도 메울 수 없었다.


회사 앞 밴치에서 잠시 과거를 회상한 재호, 이런 기분이 든 건 오랜만이었다.


"이참에 끊을까" 이번에도 피다 만 담배 한대를 휴지통에 버리며 중얼거렸다.


아래에서 넥슨을 올려다보는 재호는 자신의 사무실 쪽을 바라보았다.


개인공간없이 다락방같은 좁은 비품실을 지금은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니....


재호는 뭔가 결심한 듯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추석 키트대잔치는 생각대로 대성황이었다. 유저를 누구나 잘 알고 있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이 '갈취'할 수 있었다.


차곡차곡 올라가는 캐시사용내역과 함께 기뻐하는 팀원들, 이들도 처음과 달리


많이 더러워져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힘든 길을 헤쳐나오며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은 이는 이 곳에 단 한명, 신입인 덕빈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팀장님, 이번에 보너스 좀 나오겠는데요?"


"김칫국 마시지마, 크게 벌면 그만큼 더 기대하는게 윗대가리들이야."


"헤헤, 잘 알고있습니다 팀장님"


팀장과 팀원, 서로를 미워하고 불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믿을 수밖에없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재호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할래, 이런거" 갑작스러운 재호의 발언에 농담말라며 웃는 팀원들, 하지만 재호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일순간 조용해진 사무실, 입을 먼저 연 건 재호였다.


"농담이야 농담, 이번에 발령받았어. 그냥....잠깐 쉬다 오려고"


애써 웃으며 그들에게 말하는 재호, 발령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는 팀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보고싶을겁니다"


더이상은 볼수없을거란 생각에 눈물까지 글썽이는 자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하자" 재호가 한숨을 쉬며 무언가를 말하려했다.


"내 자리, 신입한테 물려줄까 해."


"하지만 팀장님, 저 녀석이 뭘 할 수 있겠어요"


팀원 중 한명이 재호에게 대들었다.


"아냐, 저 녀석밖에 없어. 우리가 한 짓을 다시 이을순 없어"


서로의 손을 더럽히며 이륙해낸 거짓된 영광, 팀원들은 그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뭐...저쪽에서는 디렉터로 활동해달라하는데 사실상 다시 시작이지"


재호는 이번에 새로 생긴 신생게임의 디렉터로 발령받게 된 것이다. 물론 상부가 원하는 건 돈,


하지만 재호는 변했다. 순수하게 게임을 좋아하던 사내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사무실을


정리한 뒤 다음날 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갑작스럽게 팀장의 자리에 오른 덕빈은 팀원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어리둥절해하며 그닥 좋지못한 모습으로


디렉터를 시작했다. 하지만 재호의 눈은 옳았다. 자신감을 회복한 덕빈은 여러 이밴트들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팀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나도 담배나 배울까" 사무실에 앉은 덕빈은 자신을 괴롭혔던 악마팀장 재호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가 기억하는 재호는 사무실을 가득 메운 담배연기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그의 모습은 염라대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의 카리스마적인 모습이 덕빈은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어디, 나도 앉아볼까" 디렉터로 올라서며 물려받은 사무실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한 덕빈은


이제서야 책상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재호의 흉내를 내며 짧은 다리를 겨우겨우 책상위로 올리는 덕빈,


그리고 담배를 꺼내려하는 재호의 모습을 따라하려는 듯 짧은 팔로 책상 첫번째 서랍을 열려 낑낑거렸다.


"조...좀만 더" 겨우겨우 손끝으로 서랍을 잡아당긴 덕빈, 하지만 중심을 잃고 자리에서 떨어졌다.


"살 좀 빼야겠네....." 자신의 축쳐진 뱃살을 흔들며 중얼거리는 덕빈은 서랍에 놓여있던 종이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갖다 드려야겠네" 하지만 봉투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뭐지, 이력서인가?" 호기심에 봉투를 열어본 덕빈, 내용물은 다름아닌 덕빈에게 보내는 재호의 편지였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때쯤이면 내 흉내를 내면서 의자에 앉아있겠지'


편지의 첫줄은 적중했다. 덕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해서 글을 읽어나갔다.


'내가 한 짓들은 유저 입장에서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이야. 이걸 청산할 사람은 이 팀에서 너밖에없다


그리고 이 편지는 다른 팀원들에게 보여주지마.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 명심하도록'


덕빈은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다시 편지를 읽어나갔다.


'너가 날 대신해 할 일은 내가 남긴 흔적들을 지워줘. 아마 유저들도 끔찍했을거야


내가 남긴 시스템들을 보면서....나도 잘 알고있어. 그들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이 일을 할 수 있는건 너뿐이란 말이 단지 너가 때묻지않은 녀석이어서가 아냐


넌 게임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 이게 무슨 뜻인지는 너 자신이 잘 알겠지.


솔직히 부러웠다. 그 말도안되는 코딩능력이....그리고 마지막으로 째호크는 남겨줘


그렇게라도 해야 죄책감이 좀 줄어들거같어"



편지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자신의 흔적을 지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재호의 모습을 생각하며 덕빈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개발자로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하며 계속 마음 아파했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맡기고 간 그의 배려심은 덕빈에게 확실히 전달됬다.



"야 점프 없어졌어!" "째섭도 통합된다더라"


"와 덕빈이새끼 일 내내, 재호 존나 싫어했나보네"


덕빈은 오늘도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유저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팀장님, 거기서 뭐 하세요?"


"아...아무것도 아냐" 황급하게 인터넷창을 끄며 말하는 덕빈, 여전히 허술한 구석이 많은 사내였다.


"다행이네요, 반응이 좋아요"


"무슨 반응?"


"째 죽이기 말이에요, 어휴 그 인간...지금 뭐하고 사나 몰라"


"아아 그 분.....뭐 게임이나 하면서 잘 지내고 있지않을까?"


어설프게 책상에 다리를 올리며 덕빈은 방긋 웃었다.

2.탕수육소스를 부어버린 어느날

"어어....이거 왜 이러지" 서버실에 틀어박혀 홀로 중얼거리며 전원스위치를 껐다 켜기만을 반복한지도 벌써 30분째다.


야근이었던 덕빈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와 몰래 한잔 걸친것까진 기억이 났지만 일어나보니 탕수육소스 그릇을


부여잡고 서버실에 널부러져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시큼하고 끈적한 탕수육소스는 진득하게 서버컴퓨터를 적시고 있었고, 닦아내면 닦아낼수록 소스는 서버에 감칠맛을 더하듯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침에 임시점검이 잡혔던 터라 조금만 손보면 어떻게든 자기 선에서 끝낼수 있을것만 같았다.


"팀장님? 서버 열어야 될 시간인데요" 그런 상황을 알리가 없는 블레이디안이 초조해하며 덕빈에게 말했다.


"아이씨, 연장 공지 띄워 그리고 왠만하면 나 찾지말고" 혼자 끙끙거리며 서버컴을 두드리는 덕빈, 블레이디안은


괜히 딴지 걸었다간 좋은 꼴은 못볼거라 여겼는지 군말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제발 좀 되라, 짬뽕국물도 버티던 놈이 왜이러니 증말" 서버컴을 쾅쾅 내리치며 윽박지르는 덕빈, 그런다고 말을 들을


서버가 아니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화풀이를 하고있다.


"일단 침착하고......어디보자 서버 판매처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서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덕빈은 서버에 붙어있는 담당직원의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바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거는 덕빈, 착신음이 들리고 덕빈은 발을 동동 굴리며 담당자가 받기를 기다렸다.


"최선을 다하는 00텔레콤입니다."


"여...여보세요? 지금 서버가 망가진거같은데 수리 가능할까요?"


"기종이 어떻게 되죠? 그리고 a/s면 최소 1주일은 걸리실텐데"


"일주일씩이나요?"


"예 뭐....서버란게 튼튼하긴한데 한번 망가지기 시작하면 원인 찾는것도 일이거든요, 일단 증상이 어떻게 되죠?"


"아 그게....탕수육 소스를 흘린거같은데...."


덕빈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담당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실소가 들린 뒤 담당자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좀 봐야될거같긴한데....기대는 안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아니면 임대용을 하나 쓰시는게"


"알겠습니다..." 덕빈은 힘없이 통화종료버튼을 눌렀다. 애꿎은 전원부만 만지작거리며 다시 한번 부팅을 시도하는 덕빈,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움직일 서버컴이었으면 진작에 가동 되었을것이다. 시간은 벌써 오전11시 연장을 한다해도 최소 두시간, 이미 충분히 유저들을 엿먹인 판에


더이상은 무리였다. 잠시 뒤 몰려올 맹비난에 눈 앞이 하예진 덕빈은 그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단축번호 2번을 누르는 덕빈, 그에게 연락한지도 벌써 몇달전의 일이었다. 받지않아도 할말이 없는 덕빈이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 그 밖에 생각나지않았다.


"왠일이냐? 이 시간에 전화를 하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중저음의 보이스, 살짝은 건방져보이면서도 뭔가 기뻐보이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재호였다.


"선배, 바빠요?"


"그럼 바쁘지 안바쁘겠냐. 곧 점심시간인데"


"아 장난하지말고.......나 좀 봐요"


"밥이라도 살라고?"


"증말.....일단 서버실로 와요 꼭"


덕빈은 툴툴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남들이 보면 버릇없는 녀석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두 사람은 허울없이 지내는 사이란 소리다.


잠시 뒤 재호가 빈정거리며 덕빈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서버문제냐? 나보다는 너가 더 잘할텐데?"


"저기 그게....."


"뭐야 짬뽕국물이라도 쏟았냐?"


재호는 재밌다는 듯 실실 웃으며 덕빈을 놀렸다. 하지만 굳어버린 덕빈의 표정을 보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란걸 깨닫고는 웃음을 멈췄다.


"조심 좀 하라니깐....."


플래시라이트를 켠 뒤 서버를 살펴보는 재호, 서버컴 구석구석에 바이러스처럼 번져있는 탕수육소스가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해주고있었다.


"이거.....한건했네 덕빈이"


재호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덕빈에게 말했다.


"어떻게 안될까요?"


덕빈이 묻자 재호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좋게좋게 생각해. 1년 정도 회사에 봉사하면 되겠네. 뭐 앞으로 1년동안 잘릴일은 없단 소리지"


재호의 말에 덜컥 겁을 먹은 덕빈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멍청함에 진저리가 났는지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하 이 자식...아직도 그러냐" 재호는 그런 덕빈이 안쓰러운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그...그치만...."


"기다려봐 어떻게든 해줄태니깐....칠칠맞은 자식"


재호는 뭔가 결심한 듯 서버실을 빠져나왔다.


"여기 공지 담당자 누구지?"


"네? 전데요 무슨 일이시죠"


"점검완료시간 미정 때려박고 기다리고 있어"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아 덕빈이가 시키는거니깐 잔말말고 해"


툴툴거리며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한 재호는 카스온라인 서버실로 향했다.


"에이 잡것....이렇게까지 해줘야되나"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듯 중얼거리며 서버컴을 만지작거리는 재호, 능숙한 솜씨로


서버컴퓨터를 분리한 뒤 서버를 가지고 덕빈에게로 찾아갔다.


"야 찌질이,일단 이거라도 써"


"선배 이거 함부로 건드리면 안되는거잖아요"


"어차피 백업용 있으니깐 임시로 써, 주는거 아니니깐 꼭 돌려주고"


"이건 아닌거같아요, 암만 생각이 없어도 이런거 넙죽받을 사람은 아닙니다"


덕빈이 극구 사양하자 울화가 치민 재호가 덕빈의 배를 가격했다.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서버를 남겨둔 채 씩씩거리며 나가는 재호, 덕빈은 후덕하게 부풀어오른 자신의 뱃살을 어루만지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지체할수없던 덕빈은 임시방편으로 재호가 넘겨준 서버를 연결했다. 다행이도 계정데이터는 공용으로 적용되있던 터라


조금만 손보면 되는 상황이었다.


다소 늦었지만 정상적으로 서버는 오픈되었고 유저들의 화를 잠재우기 위해 덕빈은 늘 그렇듯 삡을 풀었다.


유저들의 화는 확실하게 잠재웠지만 덕빈은 어떻게 재호를 다시 마주할지 난감해하며 재호의 전화번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3.짜장으로 뒤범벅된 어느날

"팀장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간만에 마영전 팀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얼마전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팀장 임덕빈을 동료들이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나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고?" 그들의 축하가 나쁘진 않은 듯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덕빈, 다행이도 별 문제는 없었고


팀원들은 신혼여행은 어땠는지 물어보며 아이처럼 덕빈에게 칭얼거렸다.


"하 이 자식들....애도 아니고 참.....그냥 코끼리 좀 타고 맛있는거 먹고 푹 쉬다 왔어, 궁금한 것들도 많아요 허허"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히는 덕빈, 그런 그를 보며 덕빈을 놀리는 팀원들이었다.


"슬슬 아이디어 회의 준비하자. 이제 곧 방학이다 긴장들 하고"


덕빈은 간단하게 브리핑 한 뒤 자료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팀원들의 표정이 석연찮았다.


"왜들그래, 뭔 사고라도 쳤어?"


"아...아닙니다" 안경을 고쳐쓰며 말을 더듬는 밀얀, 그는 거짓말에 서툰 타입이다.


"하.....좋게좋게 가자 응? 별말 안할테니깐 기분좋을때 말하고 끝내자"


덕빈의 말에 수근거리는 팀원들, 결국 멜진느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게....아이디어 회의 끝냈어요"


"뭐야 나 빼고 니들끼리 했다고? 누가 시켰는데?"


기도 안찬 듯 덕빈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눈을 부릅떴다.


"아니 누가 시켰을거아냐, 누군데 말을 못해"


"재호 선배가...."


밀얀이 겁 먹은 듯 덜덜 떨며 덕빈에게 말하자 팀원들은 그를 질책했다.


"어이가 없네,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온다"


덕빈의 분노는 애꿎은 머그잔으로 향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머그잔은 현재의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산산조각이 났다.


깨진 머그잔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던 덕빈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하다 생각했는지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들었다.


"미안하다.....나 답지 못하게"


덕빈에게서 보여진 재호의 모습에 당황스러워 하는 팀원들, 하지만 누구보다 당황한 건 덕빈 자신이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 회의는 너네 하고싶을때 하자" 박살난 머그잔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축 처진 어깨로 옥상으로 향하는 덕빈,


피지도 않던 담배를 품에서 꺼내어 만지작거리더니 한대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꺼내려던 찰나, 자신이 그런걸 챙길리가 없단걸 깨닫고 입에 물었던 담배를 내려놓는다.


"빌려줘?" 재수없는 미소를 하며 덕빈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 다름아닌 재호였다.


"돼...됐습니다, 담배같은거 안핍니다" 보란듯이 손에 들고있던 담배를 부러트린 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덕빈, 재호는 오히려 그런 그가


재밌다는 듯 씨익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텐데?"


"많죠, 아주 많죠! 하지만 말 안할겁니다!"


덕빈이 씩씩거리며 재호에게 말했다.


"그래, 하지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비키는 재호, 덕빈은 그런 그의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밥이나 먹죠 우리"


"점심 약속? 니 좋을데로 해라"


"아뇨....저녁 말입니다. 얼마전에 결혼한건 알고 계시죠? 전 부인을 데려올테니 만나시는 분 데려오세요. 인사는 드려야할거같아서"


덕빈의 말에 표정이 굳어버리는 재호, 그의 도발에 왠지 모르게 화가 난 재호는 당장에라도 그의 멱살을 잡고 흠씬 두들겨패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많이 컸네, 그래 뭐.....그렇게 하자"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자리를 피하는 재호, 분명 덕빈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지만 그 이유는 그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듯 했다.


"중국음식 괜찮으시죠?"


이미 한번의 전례가 있었던 두 사람이었기에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이해된 듯 재호는 이를 바득바득갈며 애써 미소지었다.


"간만에 좋지, 뭐 짬뽕이라도 먹으실라고?"


"그건 가서 봐야죠 7시까지 귀빈관으로 오세요"


옥상문을 쾅 닫아버리며 먼저 나가버리는 덕빈, 그의 뒷모습을 보며 왜 화가 나는지 확실히 이해가 된 듯 재호는 담배 한대를 입에 문 뒤


힘차게 빨아들였다.


"저새끼 저거...바뀐게 없구만" 재호도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건들거리며 옥상에서 내려갔다.




"다들 수고했어" 6시가 되자마자 덕빈은 도망치듯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집에 있는 부인 생각때문도 일이 싫어서도 아니었다.


팀원들의 심드렁한 표정과 재호에 대한 분노로 덕빈은 사무실에 있는것조차 괴로웠던 것이다.


"여보, 미안한데 지금 나올수있어?"


"하아....저녁 준비 다했는데...무슨 일인데요"


크게 실망한 듯 부인의 한숨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그냥...아는 선배한테 인사 좀 시켜줄라고"


"못말린다니깐....미리 좀 말해주지. 알았어요"


"40분 까지 나와있어"


"어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끊겨버린 전화, 뒷감당이 어찌될지 상상도 안됬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7시가 되기 5분 전 덕빈과 그의 부인은 귀빈관에 도착했다.


"임덕빈으로 예약했습니다만"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원을 따라 예약석으로 들어가자 재호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마치 당연한 듯 덕빈의 팀에 있던 여직원과 진하게 키스하는 재호,


부인은 난처한 듯 덕빈의 뱃살을 꼬집었다.


"서...선배 저희 왔어요" 덕빈이 눈치를 주자 그제서야 재호가 그를 봤다.


"어어...왔구나, 재수씨도 오셨네" 게슴츠레하게 눈이 풀린 여직원과 재호, 그런 두 사람이 탐탁치않은 듯 부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져있었다.


"선미씨가....올줄은 몰랐네"


"네? 아.....예......" 여직원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것만 같았다.


"그래도 구색은 맞춰야될거아냐, 오늘부터 1일이야"


재호는 아무렇지 않게 선미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그녀의 볼에 키스했다.


"참...호탕한 분이시네요 하..하하.."


애써 미소지으며 분위기에 맞춰주는 부인, 그녀의 왼손은 계속해서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고 잠시 뒤 덕빈의 폰이 울렸다.


'오늘밤 보자 ^^'


덕빈이 침을 꿀꺽 삼키며 옆을 보자 웃는 얼굴로 부인은 덕빈의 뱃살을 꼬집고 있었다.


"아....아아아!!"


소스라치게 놀라는 덕빈, 그의 비명에 주변사람들이 쳐다보자 덕빈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아차! 주문하는걸 깜빡했네!"


"미리미리 해두셨어야죠, 여보"


웃는얼굴로 계속해서 타이핑하는 부인, 또 한건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연기 잘하네 ^^'


이쯤되니 괜한 짓을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한 덕빈이었다.


"일단.....코스 A로 가져다주시고..."


"에이...뭔 코스냐 중국집이면 짜장면이지"


재호는 능글맞게 웃으며 덕빈의 메뉴판을 뺏었다.


"여기 짜장4개에 탕수육 대 자리로 주세요"


"여기까지 와서 그런걸 먹어야겠습니까?"


"미안하다? 먹어본게 그런거밖에없어서 그러는데?"


잠시 아무말이 없는 두 사람, 선미는 그 둘을 보며 어느 편에 서야할지 난감해하고있었다.


그와중에 덕빈의 부인은 짜증이 나는 듯 계속해서 문자로 죽어죽어를 타이핑하고 있다.


서로 말없이 침묵을 유지하는 네 사람, 덕빈과 재호는 계속해서 서로를 노려보며 알게모르게 신경전을 이어나갔다.


"짜장4개 탕수육 대 자 나왔습니다"


텅 비어있던 상에는 어느덧 탕수육과 짜장면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어휴 기다리다 지칠뻔했네"


젓가락을 들어올린 뒤 흥겨워하며 짜장을 비비는 재호, 그리고는 게걸스럽게 짜장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마치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유난히 짜장을 튀기며 먹는 그의 모습은 추악해보이기까지 했다.


"재수씨도 많이 드세요" 그 순간 부인의 얼굴에 짜장범벅이 된 양파가 발사되었다.


"아....."


부인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덕빈의 짜장그릇은 재호의 얼굴에 쳐박혀 있었다.


철천지 원수라도 만난것 마냥 서로 뒤엉켜 주먹다짐을 하는 두 사람은 경찰서에 도착한 뒤에야 주먹다짐을 멈췄다.


"아니....알만한 분들이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어이가 없는 듯 형사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저쪽에서 먼저 짜장을 던졌다니까요..."


동시에 억울하다며 입을 여는 두 사람, 어이가 없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보아하니 같이 오신 일행분도 원래는 친한 사이라고 말하던데 무슨 일입니까?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러니까.....저가 없는 사이에 팀원들이랑 쇼부보고 말도 안해줬다니까요?"


"무슨 소리야 누가 먼저 잘못했는데"


다시 한번 서로를 노려보는 재호와 덕빈, 금방이라도 주먹이 올라갈 것만 같은 분위기에 형사가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진정들 하시고, 무슨 오해들이 있으신거 같은데 그걸 풀자고 온 거지 싸우라고 여기 온겁니까?"


"원리 원칙대로 안하는 사람이랑은 대화하기 싫습니다"


"누가 할 소린데...."


"뭐요? 휴가기간에 뒷통수 친게 누군데?"


"휴가? 어이가 없다 내가....외출증 4일 끊어놓고 자리 비운게 누군데!"


재호의 말에 멍 하니 쳐다보는 덕빈, 그제서야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했단 걸 느낀 듯 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신혼여행을 위해 미리 휴가를 계획해둔 것 까진 좋았으나 그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휴가를 낸다는 것이


실수로 외출을 내버린 것, 결국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무것도 모르던 상부에선 마영전 팀에서만 나오지않은 방학계획안을


독촉했고 이를 보다 못한 재호가 직접 나선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진짜....진짜 화 낼 사람이 누군데? 응? 말해봐"


재호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리는 덕빈, 재호는 그의 사과를 받은 뒤 경찰서에서 나왔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울리는 덕빈의 주머니,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의 전화일지 아는 그는 살며시 전원버튼을 눌렀다.


"죄송했습니다.....선배"


"한번만 넘어가준다 내가.....곱창집이나 가자"


두 사람은 씨익 웃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사실 BL물 안좋아하긴하지만.. 재밌네요 ㅋㅋ 한재호.. 설레는데?

출처 : 망갤문학 크크섬한마고영욱

Lv66 깨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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