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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용병단 사무실 안은 적막 그 자체였다. 뿌옇게 내려앉은 먼지만 간혹 바람에 흩날릴 뿐, 찾아오는 이라고는 돼지 한 마리가 없어졌다며 찾아달라고 간청하는 늙은 농부나, 마족으로부터 몸을 다치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하는,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 조잡한 물건을 파는 뚱뚱한 잡상인이 전부였다.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 홀로 사무실 안에 남아있던 피오나 뿐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이미 아침 일찍부터 마족을 토벌하러 출정한 탓에 자질구레한 일들을 봐줄 틈이 없었다. 그동안 사무실을 지키던 케아라 마저도 싱글벙글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마렉과 함께 선착장으로 떠났다. 최근 피오나보다도 토벌에 있어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끝에 피오나 대신 출정하라는 명을 받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용병단에서 처리하는 잡일은 자연스레 모두 피오나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고장난 물건을 고치고, 잔심부름을 하고, 동네 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일을 돕는 것 전부가 그녀의 몫이었다. 일분일초마다 생사를 다투는 전장에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힘이 덜 드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내려진 이 편안한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그녀가 청소해야 할 곳은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였다. 마구간 뒤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무기고는 철의 냄새와 먼지의 냄새, 그리고 말라붙은 마족의 피 냄새가 뒤섞인 탓에 그 누구도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고약한 냄새가 닥쳐오리란 것을 알고 미리 단단히 각오를 하고 들어간 피오나 마저 그동안 용케 무기고 청소를 하고 비품 확인을 도맡아 하던 케아라가 대견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악취를 참아가며 그녀는 일단 빗자루와 먼지떨이로 무기고 안에 소복이 내려않은 회색 먼지들을 쓸어냈다. 청소를 한 지 거의 넉 달이 지난 터라 쌓여있는 먼지의 양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한 번 빗자루가 움직일 때마다 묵은 먼지가 눈과 코, 입 안으로 사정없이 몰려드는 탓에 그녀는 계속해서 재채기를 했다. 연이은 재채기와 더러운 먼지 때문에 눈과 코끝이 빨개졌을 무렵에야 그녀는 비질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기와 갑옷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닦는 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신참들에게 지급되는 장비들부터 과거에 동료들이 사용하던 장비까지. 아마도 다 닦아내려면 오늘 밤잠을 설쳐야 할 지도 모른다. 피오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페넬라가 오늘 용병들이 먹을 저녁 식사를 대신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렇게나 바쁜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않겠수? 그나저나 댁도 참어쩌다 이 꼴이 되었수? 예전에 아율른에서 우리 집안의 갑옷까지 몸소 찾아다 주었던 분이…….”

페넬라의 안타까운 걱정에 피오나는 애써 웃음 지으며 저는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페넬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날카로운 창끝으로 쿡쿡 찌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페넬라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마을 사람들 전체가 알고 있으면서 애써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제 다른 용병들에게 뒤처졌다는 것을. 이제 다시는 전장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피오나에게 줄곧 의뢰를 맡겼던 로체스트의 상인 슈렌더가 최근 그녀의 후임인 아리샤에게 고급 흑단나무를 구해다 달라는 의뢰를 맡겼다는 것을 방문 너머로 들었던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자신을 전사로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잔인한 현실이라는 것.

여신이 그녀를 가엾게 여겨준 탓인지, 그나마 무기와 갑옷을 반들반들하게 닦는 중에는 밀려드는 자괴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요 근래 피오나가 용병단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매진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바쁘게 손을 놀려야만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뿐이었다.

미안하다, 같은 동기를 두고 나만……. 내가 단장님께 말씀이라도 드려볼까?”

불현듯 피오나의 머릿속에 지난밤 리시타가 건넨 말이 맴돌았다. 그는 부엌에서 동료들이 먹은 접시를 닦고 있던 피오나의 곁에 다가와 마른 수건으로 컵 표면에 맺힌 물기를 닦아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는 과거에 피오나와 같은 날 용병단에 들어왔던 사이로, 최근 여기저기서 우수한 용병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었다. 전장에서의 활약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피오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싸웠던 전우였지만 이제 리시타는 피오나가 따라잡기 힘들만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리시타는 피오나 혼자 용병단에 남겨두고 잡일을 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건넨 동료의 말을, 그녀는 리시타의 손에 들린 컵을 신경질적으로 뺏어 선반에 올려놓는 것으로 일축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른 동료들에게 거부당해가면서까지 구질구질하게 전투에 참가하고 싶지는 않아.”

지난밤의 일을 떠올리다가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천으로 칼날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다 순간 멈칫했다. 손에 익숙한 손잡이의 느낌, 칼날에 아른아른 비치는 그녀의 모습. 그녀는 물끄러미 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다. 한때 이곳에는 그녀의 발밑에 쓰러져간 마족이, 멋진 갑옷 차림의 위풍당당한 어떤 여자의 모습이 비쳤던 때가 있었다. 허나 지금은 수수한 평상복 차림의 초라한 어떤 여자의 모습이 햇빛에 부서질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했던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제 더는 전장에 나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그날, 분을 참지 못하고 딸기주를 진탕 마시다 이그나흐 강가에 버려두고 온 것을 누군가가 주워 무기고에 가져다 둔 것이 분명했다. 방패는 그날 피오나가 대장간에 가서 퍼거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남에게 팔든 용광로에 녹여서 새로 쓰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친 탓에 고칠 수도 없을 만큼 망가졌지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검은 지금 그녀의 눈 앞에, 그녀의 손에 들려있었다. 과거의 영광. 잃어버린 전장. 검을 쥔 그녀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 관절 마디마디가 새하얗게 변했다. 일순간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피오나는 지금껏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허나 그 어디에도 그녀의 곁에서 위로해줄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용병단 안에, 영광을 잃어버린 한 영웅이 통곡하는 소리만이 공허한 울림을 남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