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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빌지워터 - 조프하이드 자이글로스

wheresmyown
조회: 903
2019-06-08 05:20:21

...어머니는 당신이 늘 그러하셨듯 긁어모으는 법보다는 이미 쥔 것을 더 꽉 쥐는 법을 배우라고 귀가 따갑도록 말씀하셨지만, 허기진 배가 내는 꼬르륵 소리나 먼 선착장에서 풍겨오는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 덕에 나는 그걸 지겨운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고 흘려듣곤 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셨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온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감싸고 도셨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작살공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온 가족을 먹여 살리길 바라는 무의식적인 생존 본능의 발현일 수도 있었겠지만, 덕분에 마을의 다른 자이글로스 어른들 또한 내게만은 항상 살가웠고 다정했다. 

형은 천생 반골이었다. 내가 갓 젖을 뗐을 무렵부터 아버지를 도우러 작업실을 들락거렸다곤 하지만, 몇 주도 안 되어 나가떨어졌다고 했다. 재미가 없다나. 지금 생각해도 웃긴 말이다. 혹시 이틀하고도 반 나절이 넘도록 굶어 본 적이 있는가? 배가 지독하게 쓰리고 태생이 성마른 사람처럼 온갖 사소한 것에도 짜증을 내게 된다. 그럴 때 누구든 마주치는 사람한테 달려들어 다짜고짜 주먹질해대는 건 조금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힘이 남아있다면 말이지. 

형은 그런 종류의 재미 대신 덜 배고픈 쪽을 택했다. 내가 풀무질 하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던 날, 형은 늦은 저녁 쏟아지는 비를 잔뜩 맞고 와서는 난로 옆 둥근 탁자 위에 바다뱀 은화를 뭉텅이로 내려놨다. 식사를 가져가려고 잠시 거실로 올라왔던 나는 은화 더미가 발하는 생경한 광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간에서 부츠에 묻은 흙을 터는 형의 천연덕스러운 미소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추어올리곤, 다시 작업실로 종종걸음을 쳤다. 좀이 쏜 흔적이 군데군데 남은 나무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위쪽에서 어머니가 고함치는 게 들렸다. 혹자는 빌지워터 꼬마들은 전부 영악하고 알 것 다 안다고 말할지 몰라도, 그때 나는 그냥 순진한 남자애였다.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 중 두 명이 대거리하는 소리와 반짝이는 동전 무더기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능력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몇 번인가 사냥 도구를 거래하러 아버지를 따라가 봤던 부둣가에서 맡았던 불쾌하고 쌉쌀한 냄새만이 빗물 내음을 뚫고 코를 간지럽혔던 것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형은 내게 여전히 살갑고 익살맞았지만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점점 적어졌고 부모님은 물론 다른 어른들과도 좀체 말을 섞는 일이 없었다. 가끔 자이글로스 대장간이 쉬는 날이면 형은 어머니 몰래 나를 데리고 백색 선착장 근처에 있는 낡은 목재 창고로 놀러 갔다. 대부분의 공간은 묶인 판자 더미들과 나무통, 연장 선반 등으로 들어차 있었지만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십수 명은 너끈히 누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있었다. 형은 그곳에서 내게 램윅 호의 비단뱀 사냥이나 부두 쥐에 관한 괴담, 올가미와 갈고리 쓰는 방법 같은 얘기를 끝도 없이 들려줬다. 짐작하건대 그것은 형 나름의 '멀어질 준비' 였을 것이다. 내가 우리 형제는 언제까지고 서로의 옆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뒤로는 뭐, 서로 찾아보는 일도 뜸해지고 데면데면한 사이 다 됐지. 원, 이래서 술은 안 된다니까. 너저분한 넋두리 군말 없이 들어줘서 고맙소."

지독히도 왁자지껄한 술집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또렷한 정적이 흘렀다. 조프하이드는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축축한 궐련갑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던 여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내리깐 시선 너머로 엿보이는 짙은 갈색 눈동자에는 이상하게도 미안함이나 동정심에 가까운 감정이 설핏 어린 듯했다. 진한 적색 머리카락은 꽉 묶어 오른쪽 어깨너머로 넘겼다. 머리 빛깔과 비슷한 색의 우의 소매 밖으로는 가늘지만 다부진 손목이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흰 손가락은 척 보기에는 가냘프고 매끄러웠지만, 양쪽 검지 마디가 눈에 띄게 거칠었다.  

"총을 좀 다루시나 본데?"

여자는 궐련을 하나 꺼내 슬며시 물려다 이내 도로 내려놨다. 

"조금이 아니지."

취기가 확 가시는 듯했다. 조프하이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인간들이 실은 이 여자와 한통속인 날강도들이라거나 하는 충분히 있을 법한 가능성에 대한 불안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얼토당토않은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막연하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는 어린 지크문트 자이글로스가 빗속을 뚫고 가져온 바다뱀 은화에서 맡았던 찝찔한 피 냄새를 낯선 여자에게서 몇십 년 만에 다시 맡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언젠가 들었던 빌지워터 격언 하나를 생각해내고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빌지워터의 작살공들은..."

조프하이드가 말을 미처 잇지 못하는 사이에, 여자가 천천히 일어서며 우의 앞쪽 매듭을 끄르더니 품에서 눅눅해진 종이를 꺼내 그의 앞에 툭 던졌다. 아무리 작업실에 틀어박혀 지내는 그라고 해도 현상금 게시판에 붙는 종이가 어떤 종류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돌발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침착하게 종이를 펴기 시작했다. 여자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같은 식으로 처리할 생각이었어."

그는 점점 심해지는 두 손의 떨림을 간신히 견뎌내면서 종이를 한 번 더 폈다.

"대신 밥값으로 치자고. 그리고..."

여자는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아직 절반 크기로 접힌 수배지를 부여잡은 조프하이드의 귀에 속삭이고는 떠났다.

"빌지워터의 대장장이들은 피 냄새를 맡을 일이 없지."

Lv26 wheresmy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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