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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별명의 변화를 통해 알아보는 프로게이머의 위상

자일리톨짱
댓글: 29 개
조회: 10194
추천: 50
비공감: 1
2017-10-31 02:24:43
일단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내 말이 개소리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부터 말하고 시작하겠다.

나는 사실 롤을 하는건 좋아하지만 롤챔스를 즐겨 챙겨보진 않는다.

그냥 롤드컵 할 때나(그것도 한국팀 경기만) 가끔 보는정도? 케이리그는 안보고 월드컵 때만 국대 응원하는 애들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사실 지금 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팬덤의 인식에 부합하는지 자신이 없다. 그냥 문득 든 생각을 적을 뿐이니 양해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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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롤갤 개념글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했는데, 페이커를 칭찬할 때 '대 상 혁'이니 '빛 상 혁'이니 이상한 수식어 붙이지말고 걍 '이상혁'으로 하자는 글이었다.

최근 유행 중인 '빛 x x' 혹은 '대 x x' 식의 별명부르기는 굉장히 뛰어난 대상을 칭할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 듯 하다(요즘엔 아이템에도 사용하더라 ex) '대 향 로')

그런데 이제 페이커는 그것 조차도 붙일 필요가 없는 지경이 된 모양이다.

흔히 우리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존재'라는 '수식어'로 누군가를 지칭하는데, 너무 뛰어나거나 유명해서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어쩌면 이번 롤드컵을 통해서 페이커는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 그런게 있을 수 있을까?

앞에 수식어가 붙는 존재들은 사실 잊혀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혹은 언제나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이다.

예컨대 '전자두뇌' 클템, '탈수기 운영'의 삼성, '빅토르 장인' 쿠로, '세체미' 페이커 와 같은 방식으로 이름지어진 대상들은 필연적으로 후대의 누군가와 비교받게 마련이다.

더 계산을 잘하는 누군가, 더 운영을 잘하는 누군가, 더 빅토를를 잘 쓰는 누군가, 더 잘하는 미드가 등장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 칭호를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인물들이 도마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더 뛰어난 존재인지 팬들은 침튀기며 싸우고 잠정적으로 다시 결론을 내린다. 거기서 탈락한 존재는 영원히 그 타이틀을 빼앗긴다.

비록 아직까지는 롤의 역사가 짧아 전자두뇌 클템과 빅토르 장인 쿠로를 기억하고 있다만, 과연 10년, 20년 뒤에도 기억할지는 의문이다.(혹은 기억되더라도 단서가 붙게 된다. 예컨대 '1세대' 전자두뇌 클템과 같은 식으로)

물론 그 플레이를 인상깊게 본 사람들에게서는 여전히 기억되겠지만, 더 잘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대부분은 잊어버릴 것이다. 

수식어가 붙은 존재들, 수식어를 통해서만 기억되는 존재들은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최고'란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잘하는 '누군가'를 지목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무도 아니면서(nobody), 누구든지 될 수 있는(anybody) 텅빈 기호(공백의 기표;empty signifie)에 불과하다. 

반면,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는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단 한명만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페이커' 혹은 '이상혁'이라는 고유명사는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명이인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롤판의 '페이커'(이상혁)란 사람은 단 한 명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특별한 수식어 없이 이름으로 기억되려 하는 페이커는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는 학술용어 혹은 대학교의 교명을 사어(死語)인 라틴어로 이름 짓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 등.) 진리(VERITAS) 혹은 공리(AXIOM)를 추구하는 학문 용어는 결코 변화해선 안 된다. 공리의 뜻은 '자명한 원리'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 어느 지역의, 어느 누가 보아도 인정할 수 있는 원리를 의미한다. 

사어는 이미 죽은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진리를 사어가 아닌 일반 언어의 'A'라고 칭했는데, 'A'의 의미가 후대에 와서 변한다면 우리는 'A'를 더 이상 진리로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예컨대 '어리다'는 과거에는 '어리석다'의 의미를 지녔지만 오늘 날에는 '나이가 적다'로 쓰인다) 그래서 신라의 향가와 같은 고문헌을 분석하는 데 있어 항상 해석이 문제되는 것과 달리, 라틴어의 경우 라틴어가 사어가 된 시점부터 해석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 많아진 것 같은데, 요점은 고유명사는 변하지 않는 언어, 비교가 필요 없는 언어라는 것이다. 고유명사는 고유명사 그 자신, 그 자체만을 가리킨다. 철학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아도르노라는 철학자는 우리가 어떤 상대를 보고 처음 내뱉는 감탄사가 그것의 진짜 이름이라고 말했다. 장엄한 폭포를 보고 내뱉는 '아!'가 대자연의 진짜 이름인 것이다. 페이커의 슈퍼플레이를 볼 때 특별한 설명 없이 그저 '페이커!'를 외치는 해설들의 목소리를 통해 나는 아도르노의 말을 이해한다.  

'페이커'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올바른 답은, '신드라 장인'도, '롤드컵 3회 우승자'도, '역대 최고의 미드'도 아니다. '페이커는 페이커다.' 'A is A'. 이것은 논리학의 첫번째 원리인 '동일성의 원리'다. 세계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학문인 논리학의 첫번째 원리. 이 세상에서 가장 자명한 원리. 

페이커가 졌으면 했었다면서도 막상 위험해지자 지는 것이 보기 싫었다는 레딧 글. 역체미 논란은 년도별 페이커중에서 고르자는 인벤 화제글. 롤을 좋아하는 팬들 모두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페이커'라는 플레이어가 이제는 그 화려한 커리어의 나열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단 걸. 

프로들의 경기를 별로 챙겨보지도 않는 나 조차도 이번 미스핏츠전과 RNG전을 보면서 가슴이 떨렸는데, SKT의 팬들은 어땠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혹여나 결승에서 SKT가 지더라도(삼성 역시 잘하는 팀이니까) 페이커의 위상이 변하는 일은 앞으로 없으리라 생각된다. SKT가 지면 뭐 느그@혁이니, 뭐니 하면서 놀리는거야 팬들문화니까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진심으로 페이커가 못한다고 생각하는 팬들은 없을거라 생각된다. 페이커는 이미 완벽하게 신격화 작업에 들어간듯하니까. 




p.s) 사실 이런 식의 별명은 벵기의 별명이었던 '정글 그 자체'에서 싹이 드러났던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름 그 자체로 불린 것이 아니다 여전히 '정글'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페이커를 더 높게 쳐줬던게 아닐까?싶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나는 판단할 능력이 없다. 언급했다시피 나는 프로리그 자체를 보질 않는다.

p.s) '이상혁'

Lv3 자일리톨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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