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걸 하니, 싸이코패스니 말이 많은데 먼저 100일후에 죽는 돼지는 '100일 후에 죽는 악어'의 오마주임.

100일 후에 죽는 악어는 2년 전쯤에 트위터에서 정확히 100일동안 올라온 4컷 만화인데, 제목 그대로 악어는 100일째 되는 날 죽게 됨 ㅇㅇ
근데 악어는 자기가 100일 후에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있음.
그래서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하고 종종 아무 의미 없이 잉여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냄.
작품 끝까지 정말 일상적인 내용만이 이어지고, 마지막 날 조차 친구들과 꽃놀이 약속까지 잡았었음.
근데 도로에 나와있는 새끼 병아리를 구해주려다 교통사고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거지.
독자는 악어가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기 마련임.
일반적으로 죽음이 눈 앞에 닥치면 뭐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려하기 마련이니까.
즉, 이 작품은 작품 내 인물과 독자간의 상이한 정보 격차로 인한 괴리감과,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법한 '현실적인 죽음'의 모습을 주제로 삼은 작품임.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극적이지 않은 우연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거지.
죽을 날을 알 수 있는 사람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음.
오늘 돼지가 불쌍하니 어떻니 댓글 달던 사람들도 당장 내일 삼겹살 먹으러 가다가 미쳐버린 덤프트럭에 대가리 박고 헤네시스 버섯집에서 눈 뜰 수도 있는거란거임 ㅇㅇ.
잔잔하고 소소한 행복이 있는 일상과 우연한 죽음. 이게 '100일후에 죽는 악어'의 포커스임.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 역시 생일 파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냈지만, 100일째 되는 날 통구이가 됨.
두 작품 모두 죽음을 맞이한 본인은 죽을 시기를 특정할 수 없었고, 독자들은 처음부터 악어가 죽는다는 것과 돼지가 먹힐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음.
이 밖에도 전개와 구성, 의도 모두 동일한 구조임. 그래서 영상 제작자는 100일 후에 먹을 돼지를 애완돼지처럼 애정있게 키우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한거고.
차이가 있다면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는 작가, 혹은 영상 제작자가 작품 외부가 아닌 작품 내부에서 죽음의 직접적인 가해자로서 등장한다는 정도가 있겠지.
원래 순문학 비슷한 류의 작품들은 불편하고 비루한 감정이 들게 되어 있음.
왜 불편할까? 단지 혐오스럽고 징그러워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통구이가 된 돼지를 보며 불쌍하고 혐오스럽다고 생각한 본인들도 사실은 돼지고기를 수도없이 먹어 왔을거임.
그럼에도 아기 돼지를 보면서는 불쌍하다, 안됐다, 설마 진짜 먹겠어? 왜 저러지? 같은 생각들을 하는 거지.
결론은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는 이러한 자기모순을 부가적으로 느낄 수 있게 제작 된 '100일 후에 죽는 악어'의 오마주라는 거임.
제작자가 싸패니 돼지가 불쌍하니 혐오스럽니 이런걸로 불타지말고, 불타더라도 최소한 제작된 방향성과 의도는 알고 불탔으면 좋겠음.
화제글 제일 위에 올라갈 정도로 불타면서 모르는 게 답답해서 글써봄.
태우더라도 알고 태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