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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냥하다 필받아서 써본 "고독한 메냥꾼".txt

Saxplayer
댓글: 1 개
조회: 3103
추천: 4
2023-04-11 22:15:47
<고독한 메냥꾼 1화: 아아, 가슴 뛰던 도핑의 추억이여!>



오늘자 일일 퀘스트도 끝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운좋은 일이라고 한다면, 모라스의 쟝이 '기억의 잔해물'이 아니라 '기억의 파편' 퀘스트를 준 것이 꽤 공이 컸다.
나처럼 아케인 리버에서 좀 굴러본 사냥꾼이라면 잘 알다시피 '기억의 잔해물'을 주는 몬스터들은 마을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데다가 맵도 넓어서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기억의 파편'은 모라스 지역의 모든 몬스터가 드랍하는 동시에 체감상 드랍률 또한 높기 때문에, 선호하는 지형에서 잠깐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퀘스트를 완료할 수가 있다.

'음, 오늘 일퀘는 특히나 빨리 끝났군...'

시계를 보니 오후 7시 24분. 
여로부터 테네브리스까지 12분 안짝으로 완료한 모양이다.
빠른 게 물론 나쁜 건 아니지만, 방금 일어나서 막 일퀘부터 시작한 참이니까...

'...'

'그래서 이제 뭐하지?'

할 게 없어서 보스 창을 열어본다. 
이미 지난 주 목요일 자정에 12시 땡 하자마자 한큐로 노말 스우까지 잡아놓은 후였었다.
데미안은 아직 힘드니까 지금 잡을 수 있는 보스라고 하면...

"노말 자쿰, 노말 힐라, 노말 매그너스...,"

일일 보스밖에는 없다.

...일일보스라도 잡을까?
아니다, 아무리 할 게 없다지만 나는 250 뀨만렙을 넘은, 그래도 어느 정도 메이플 물을 먹은 전문 사냥꾼이란 말이다.
그런 내가, 평타로 톡 치기만 해도 스러질 보스들을 싸그리 싹싹 쓸어모아서 천만 메소도 안 될 코 묻은 돈을 받아봤자다.
그 정도론 내 장비창 속 단 한 개의 스타포스조차 시도할 수가 없다.

...그러면 우르스를?
아니다, 우르스를 지금 잡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자고로 우르스 사냥이란 메이플의 불쾌함을 하루종일 찐하게 느끼고 결국 못 버티다 질려서 메이플을 끄기 직전에 해야 참맛이다.
그 초췌해진 정신상태에서 약 이천만 메소를 거저 지급하는 우르스는, 마치 폴로 형제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암울한 사냥터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어둠의 룬과도 같은 것이다.

'할 게 없다? 정말? 너 스스로도 사실은 알고 있잖아. 뭘 해야 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다.
내 사냥꾼 짬밥이 얼마나 되던가.
메이플 월드에서 우리 사냥꾼들이 돈을 버는 거의 두 가지의 방법.
보스. 아니면 사냥이다.

사냥. 또 사냥.
솔직히 지겹다만, 이참에 생각을 고쳐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 일퀘에서 쓰지 않은 에너지를 사냥에 쏟아부어보는 거다.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오늘 사냥에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검은 불꽃"처럼 군침이 싹 도는 산해진미를 획득할 수 있을지?

'그래. 좋았어!'

우선 사냥을 하려면 에피타이저가 필수다.
억지로 의욕을 불어넣고서 에스페라 캠프 천막 속에서 일어난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주 익숙한 유리병을 몇 개 꺼냈다.

재물 획득의 비약, 경험 축적의 비약, 익스트림 골드, 익스트림 그린,
이 험난한 메이플 월드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즘 알코올 중독자의 참이슬마냥 항시 섭취하고 있어야 하는 음료들이다.

뚜껑을 따고 하나하나씩 마시기 시작한다.
이런 걸 처음 먹기 시작했던 적이 아마 210레벨 대의 츄츄 아일랜드였었나. 
신비로운 맛에 행복한 마음으로 격류지대를 헤엄쳤었는데, 그때는 너무 풋풋했달까.
지금은 마시기만 해도 속이 화하고 쓰리면서 PTSD가 오는 느낌이다.
물론 맛이 있냐 없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할 순 없는 이국적이고도 시원칼칼한 수정과 맛이라지만... 
2시간 동안 효과가 그대로 지속되는 의약외품을 위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마시게 되면 누가 됐든 마냥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아아, 그래도 역시 약은 약이구나! 
비약들이 몸 속에서 서로 섞이며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나친 포션의 남용은 오히려 체력에 좋다"는 문구가 불현듯이 떠오른다. 비약도 결국 포션이니 말이다. 
마시자마자 1분 1초가 아까워지는 이 마음은 아직 그때의 초심을 잃지 않은 듯하다.

비약과 익스트림으로 무장한 나의 육체.
대충 이대로도 사냥을 나갈 수 있기야 하다만, 그러나...

"나는 아직 배고프다."

그렇다, 먹을 것이 없었다.
추가로 안주거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경험치 쿠폰이라던가. 유니온 시리즈라던가.
나는 즉시 도로 인벤토리를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경험치 쿠폰은, 말하자면 정갈한 제삿상 위에 놓여진 윤기 흐르는 약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비교적 최근 시작한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수많은 대격변이 일어났던 메이플 월드에 경매장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약 같은 물건을 직접 만들 줄도 모르던 시절에, 경험치 쿠폰은 우리 사냥꾼들에게 가장 유명했고 효과가 좋았으며 또 무엇보다도 선망했던 소비 아이템이었다.
제작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수급은 오로지 이벤트나 일요일 몬스터파크에서만 가능했기에 그 맛은 더욱이 각별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제삿상이란 비유에 걸맞게도 메이플 월드가 나락을 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마을 안 용사들에게 몰매를 맞던 운영자님이 이 경험치 쿠폰 세트를 다른 보상하고 같이 끼워서 넣어주곤 했었다.

그런 2배 경험치 쿠폰이,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다. 
손에 묻는 끈적함에서부터 달콤한 향기가 전해져 온다.
비약 효과가 더 지나가기 전에 빨리 먹자.

'오우, 쫄깃쫄깃해서, 턱이 빠질 것 같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어서 꿀떡 삼킨다.
음, 십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맛은 아직까지 여전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품격을 자랑한다.

다음은 유니온 도핑 시리즈다. 
힘. 부. 경험. 행운. 각 네 가지를 묶어서 이른다.
나의 경우는 유니온의 부와 유니온의 경험만 챙겨서 인벤토리에 넣고 다닌다. 
유니온의 힘과 행운은 먹을 필요도 없고 그만큼 맛도 영 아니다.
편식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유니온 시리즈는 원래 그런 것이다.
보통 소비 아이템과 비교하자면 마치 편의점 줄김밥과 관광명소 충무김밥 수준의 격이 다른 차이라고나 할까.

유니온 시리즈는 일주일에 구매 수량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수급에 제한이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유니온 코인은 환생의 불꽃이나 순백의 주문서와 같이 도핑보다 훨씬 가치있는 데에 쓸 수가 있다.
쉽게 말해서 비싸다, 쪼들린다, 라는 것이다.
효과도 발군인 탓에 10분 단위로 나눠져 최대 30분만 지속되는 이걸 먹고서 사냥할 때는 남은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중간에 이탈하지 못하게 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하면 일주일에 수량이 정해져 있어서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나는 유니온의 부와 경험을 위아래로 겹쳐 누른 뒤 한꺼번에 입속에다 욱여넣었다.
우물거리면서, 순식간에 입이 가득찬다.
노랑과 파랑의 조화가 대단하다. 꼭 햄버거를 먹는 듯한 푸짐함이다.

'하아...'
그러나 맛이란 건 역시 한 순간의 여흥일 뿐인가.
이걸 먹고서 나는 또 다시 지루한 들판에 뛰어들어 몇 시간이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겠지.
점점 도핑을 끝마쳐가는 나는 부스러기를 마저 입에 넣으며 에스페라의 검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검멘이시여...
저는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홀로 물어본 조용한 에스페라 하늘. 
굵고 낮은 중저음으로 대답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미안하다, 대적자여...
...내가 멸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낼 수만 있었다면...

...메이플 월드라는 지옥에서 어리석은 너희들을 구원해주었을 터였거늘....'


물론 신은 죽었다. 검은 마법사는 이제 없는 거다.
하지만, 그렇지만. 
우리 가슴에. 우리 등에. 
141과 하나가 되어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슬슬 무릎을 짚고 일어서 길라잡이를 열었다.
목적지는 셀라스의 고장난 잠수정,
앞으로도 나의 사냥은 계속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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