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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산포에 관한 이야기

아이콘 칼라모르
댓글: 6 개
조회: 3187
추천: 24
2019-03-01 00:29:25

[산포(山砲)]

1. 트리오브세이비어에서의 산포


산포는 최근 에피소드 11 업데이트에 맞추어서 출시되는 아처 계열 클래스인데, 그 콘셉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산포는 머스킷을 사용하며 특히 야수형 적에게 강한 클래스로각각의 스킬들이 야수형 적에게 
 효과를 가집니다

클래스 이름도 그렇고, 설명부터가 대놓고 야수형 특화 클래스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산포의 스킬인 '추적'이나 '맹수', '은폐 사격' 또한 후술하겠지만,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에 존재했던 산포수들의 활동과 어느 정도 관련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2. 실제 역사에서의 산포

(1) 조선시대의 산포

옛날부터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들에게 당하는 화(禍)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공자가 포악한 정치를 호랑이에 비유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라는 고사부터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맹수에게 처참한 피해를 입은 사례와 구전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여서 '호환(虎患)'이라고 하여 전국적으로 호랑이가 극성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영조 11년 5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때 8도(八道)에 모두 호환(虎患)이 있었는데, 영동 지방이 가장 심하여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은 자가 40여 인에 이르렀다(是時, 八道皆有虎患, 而嶺東最甚, 囕殺者至四十餘人).'라고 하여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도인 한양 근교에서도 호환이 극심하여 호랑이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호환이 조선사회에서 큰 문제로 떠오르자 조정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세종 때 '착호갑사(捉虎甲士)'라고 하는 호랑이 토벌군을 제도화하게 됩니다. 착호갑사는 당번(當番)•하번(下番) 각각 2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활 또는 창을 잘 다루는 자들 위주로 선발되었습니다. 특히 활이나 창으로 호랑이 2마리를 잡으면 별도의 시험없이 바로 착호갑사로 선발되었다고 하니 그 전투력은 어마무시했을 겁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에 장졸들이 인왕산 밑에서 표범 한 마리를 잡아서 그들에게 모두 포상을 내렸다는 기사(今日酉時量仁旺山下, 小豹一頭捉得~而捉虎將卒, 自各該營考例施賞)도 보이는데, 그만큼 조정에서는 호환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2) 구한말의 산포

시간이 흘러도 산포수들의 뛰어난 실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조선 말에 이르러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과 같은 외세의 접근이 심해지자 산포수들은 이들에게 대항하기도 하였는데요.
당장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병인양요(vs 프랑스, 1866년)과 신미양요(vs 미국, 1871년)에도 산포수들이 화승창과 활, 창 등으로 무장을 하고 참전하였습니다.







19세기 말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한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는 자신의 저서 '은둔의 나라 한국'에서 산포수들을 '타이거 헌터(Tiger Hunter)'로 기록했습니다. 바로 트오세에서 채택하고 있는 산포의 공식 영어명인 '타이거 헌터'가 여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렇게 외세에 저항하던 산포수들은 곧 의병활동에도 뛰어들게 됩니다. 평민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진 신돌석이 포수들을 데리고 1906년에 의병을 일으킨 적이 있고, 특히 1907년 헤이그 특사로 인한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미7조약이 체결된 데다가 일제가 같은 해 9월 3일에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시행하는 등 한국의 무장을 해체하는 수순을 밟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궐기하게 되는데, 후에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크게 활약하는 홍범도를 포함한 많은 산포수들이 이 무렵 의병활동의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역시 산포수대 집안 출신으로서 포수들에게 사격기술을 익힌 바 있습니다.


또한 강릉에서 을미의병으로 활동한 민용호(1869~1922)는 포수들을 이끌고 많은 수의 의병을 끌어모았는데, 자신의 저서에서 포수들의 중요성을 묘사하였습니다.





(3) 일제강점기 때의 산포

이렇듯 전국 각지에서의 의병들의 항쟁에도 불구하고 결국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하면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산포수들은 만주 용정촌이나 연해주 등지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홍범도와 차도선를 주축으로 한 포수 출신 독립군들이 자신들이 사용했던 사냥의 노하우를 이용한 매복전 등을 통해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1920년에 모신나강 소총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향상된 무력을 바탕으로 봉오동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제가 조선의 산포수들을 탄압하고 화기 소유를 금지하자 호랑이에 의한 피해보다 늑대에 의한 피해가 훨씬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1910년 이후 12년 동안 호랑이에 의한 사상자가 30명에 불과한 반면 늑대에 의한 피해자는 400명을 넘었으며, 특히 1915년 한 해에만 무려 113명이 늑대에 의해서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무분별한 호랑이 사냥으로 인하여 호랑이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하위 포식자인 늑대의 개체수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일본의 야마모토 타다사부로는 1917년부터 한국에서 정호군(征虎軍)이라는 호랑이 사냥팀을 조직하여 호랑이와 표범들을 사냥하였는데, 그는 호랑이 사냥 후 경성의 조선호텔에서 호랑이 고기 시식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조선호텔에서의 호랑이 고기 시식회>



3. 글을 마치며

사실 최근 몇 개월 동안 트오세를 잘 플레이하지 못했는데, 오늘 신규클래스가 추가된다는 것을 보고 해당 클래스들의 유래나 모티브 등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포수에 관해서 재조명하는 기사와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흥미를 느껴서 이렇게 글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우연찮게 트오세에도 한국의 느낌이 물씬 드는 산포가 신규 클래스로 추가되니 기분이 묘하네요 ㅋㅋ


Lv70 칼라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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