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의 청년 정책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치적 계산만 아니라면요.
저는 결혼이 늦어 자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생길 것 같지는 않군요.
대신 조카가 십대 중반이고, 친구들 자녀들이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까지 있습니다.
명절에 만나면 이제 대화가 잘 안 됩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용돈만 쥐여주고 옵니다.
제 이십대를 돌아봅니다.
군대에 있을 때 IMF가 터졌습니다.
신문과 뉴스에선 부도와 자살 소식뿐이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평생직장이라 부르던 것이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그 뒤에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왔습니다.
그 시절을 지금 아이들이 그대로 겪게 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더 힘들었나?
이 질문은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는 게 아니라, 답을 내는 순간 모두가 집니다.
4050이 지나온 세월이 일제강점기와 6.25 폐허에서 맨손으로 일어선 윗세대만 하겠습니까.
불행 경쟁이란 게 그렇습니다.
끝까지 가면 남는 건 폐허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십대가 편할 리도 없습니다.
취업의 문은 더 좁아졌고, 스펙은 올라갈 데까지 올라갔습니다.
세상은 더 빨리 바뀌는데, 부모의 재력이라도 없으면 벌거숭이로 내던져지는 게 그 아이들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이 이미 완성형입니다.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볼 자리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 때는 어설퍼도 비빌 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실수도 실패도 효율과 성과라는 괴물 앞에서 용납되지 않습니다.
원래도 만만한 세상은 아니었지만, 삶은 해가 갈수록 더 촘촘해지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남이 아닙니다.
제 조카고, 친구의 아들딸이고, 여러분의 자식입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윗세대 욕을 참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군부를 찬양하고 일제를 그리워하던 어른들을 보며, 이 엉망인 세상은 다 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없다고는 못 하겠군요.
다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들도 우리도 거대한 물결에 휘청이던 한 사람이었을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앞가림하느라 고개 들 틈이 없었던 사람들이요.
이제 그 원망의 과녁이 4050이 되었을 뿐입니다.
억울할 겁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도 순탄하지 않았으니까요.
민주화와 IMF 사이에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격변하는 세상의 끼인 세대로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하는 순간, 우리도 윗세대가 됩니다.
그때 우리가 듣기 싫어했던 바로 그 말이거든요.
'나 때는 말이야.'
각자의 짐은 각자만이 압니다
우리가 윗세대의 짐을 끝내 알아주지 못했듯, 이십대도 우리 짐의 무게를 볼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어깨에 얹힌 것만으로도 이미 벅찬 나이니까요.
그건 그들이 몰라서가 아닙니다.
여유가 없어서입니다.
우리가 그랬듯이요.
끝으로 저는 민주당에 등을 돌렸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글에 다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우리 다음 세대를 보는 눈은 달랐으면 합니다.
정당에 대한 실망을 아이들에게 옮겨 붙일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은 우리의 과거입니다.
우리도 그 모습이었고, 그들도 언젠가 우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앞길은 우리 때보다 순탄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가는 것을 아까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난할 이유는 더더욱 없지요.
우리가 받고 싶었던 것을, 우리가 못 받았다는 이유로 막아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