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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먹고사는게 중요하지 정의가 대수인가?

Jinun
댓글: 26 개
조회: 4276
추천: 38
2026-09-12 07:57:02


먹고사는 게 먼저다.
외교가 먼저다.
경제가 먼저다.
부동산이 먼저다.

정의는 그다음이다. 안해도 상관없고.

이 말을 참 오래 들었습니다.
일베, 디시 놈들이 그렇게 귀에 못 밖히게 쓰던 말들,
민주당 지지자들이라는 자들의 주둥이에서 나오리라 차마 예상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우리는 78년치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48년, 해방 직후, 국회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헌국회는 1948년 9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찬성 103명, 반대 6명.
대한민국 국회가 만든 세 번째 법이었습니다.
이승만이라는 개새끼는 이 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친일 경찰에 의존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양곡매입법안을 통과시켜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했습니다.
1949년 1월 5일 반민특위가 업무를 시작했고,
독립운동가 수백 명을 고문했던 친일 경찰 노덕술을 비롯한 이름난 자들이 줄줄이 체포됐습니다.
국민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친일파들이 반격을 시작합니다.
그들이 꺼낸 논리는 하나였습니다.
"친일 청산하자는 놈들은 빨갱이다."

1949년 6월 6일.
그해 6월 6일 아침, 남대문로 반민특위 사무실에 윤기병 중부경찰서장이 지휘하는 경찰 수십 명이 난입했습니다.
건물 주변은 기마경찰이 에워쌌습니다.
윤기병은 장탄한 권총을 휘두르며 소리쳤습니다.
여기 있는 놈들 모조리 끌고 가라.
경찰들은 특위 직원들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 두들겨 패면서 트럭에 실었습니다.
욕설이 따라붙었습니다.
"여기 있는 놈들 대부분이 빨갱이들이야, 여긴 빨갱이 소굴이라고!"
35명이 끌려갔고 통신기기와 서류 전체가 압수됐습니다.
국회가 원상복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자 이승만은 그 습격이 자신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밝히며 거부했습니다.
경찰 9000명이 특위 해체를 요구하며 집단 사표를 냈습니다.
이어 반민법의 공소시효가 1950년 6월 20일에서 1949년 8월 31일로 단축됐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반민특위를 지지하던 소장파 의원 13명이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고, 6월 26일 김구가 안두희의 총에 살해됐습니다.

그때 명분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라를 세워야 하는데 행정 경험이 있는 사람이 그들밖에 없다.
경찰을 다 잘라내면 치안은 누가 맡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먹고사는 게 먼저다.

익숙하지 않습니까? 검찰이 와해되면 국가가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78년째 그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친일 청산을 안 한 대가가 무엇인지는 들려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눈앞에 우리가 치르고 있으니까요.

2019년 9월, 연세대 사회학과 전공 강의에서 한 교수가 말했습니다.
위안부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고,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학생이 자발적으로 간 것이냐고 묻자 그는 지금도 매춘에 들어가는 과정이 그렇다고 답했고, 질문한 학생에게 궁금하면 한번 해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대학은 정직 1개월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2024년 1월, 법원은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라는 발언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경희대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 말 하나도 안 맞는다, 자발적으로 간 사람들이다."

위안부 문제는 유엔에서도 피해를 인정하고 일본에 사과를 요구한 사안입니다.
국제적으로 확인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지금도 강단에서 가능합니다.

일베는? 디시와 이곳에서도 출몰하는 뉴라이트의 잔당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조롱하는 윤서인과 국힘은 어떻습니까?
여러분과 다릅니까?

5·18을 왜곡하는 말이 유튜브에서 매일 나옵니다.
소녀상 앞에서 사람들이 조롱하고 침을 뱉습니다.
이게 어디서 왔습니까?

정확히 1949년 6월 6일에서 왔습니다
청산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살아남았고, 살아남았으니 자식을 낳고 학교를 세우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벌받지 않았으니 반성할 이유도 없었고, 반성하지 않았으니 자기 논리를 대물림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논리에 이론의 옷을 입혀 강단에서 가르칩니다.
한 세대가 그냥 넘어간 대가가 세 세대에 걸쳐 청구되고 있습니다.
이자까지 붙어서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똑같은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것도 같은 편이라 믿었던 자들의 얼굴에 뚫린 구멍에서 말입니다.

검찰개혁은 신중해야 한다.
개혁하면 국민이 피해를 본다.
수사 공백이 생긴다.
보완수사권은 남겨야 한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외교가 급하다.
성장이 먼저다.

문장도 같고 구조가 같고 사회도 같습니다.
친일 경찰을 자르면 치안이 무너진다 ㅡ 검사에게서 수사권을 떼면 수사가 무너진다.
친일 청산하자는 놈들은 빨갱이다 ㅡ 검찰개혁 하자는 자들은 반명이고 분열주의고 신천지다.
낙인의 단어만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빨갱이였고 지금은 신천지입니다.
기능은 똑같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자격을 지워서 말의 내용을 안 듣게 만드는 것.
검찰은 그 자체로 반민특위의 반대말입니다

지난 글에서 이미 몇번이고 적었습니다.
인혁당 8명은 사형 집행 32년 뒤에 무죄를 받았습니다.
부천서 성고문은 검찰이 근거 없다고 발표했다가 정권이 흔들리고서야 뒤집혔습니다.
강기훈은 위조된 감정서로 3년을 살고 24년 만에 무죄를 받았는데, 올해 5월 파기환송심에서도 조작기소는 끝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12.12와 5.18에 대해 문민정부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들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반민특위가 깨졌을 때 벌어진 일과 정확히 같습니다.
청산되지 않은 조직은 반성하지 않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조직은 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반복해도 처벌받지 않으니 그것이 그 조직의 문화가 됩니다.

78년이 걸린 게 아닙니다.
78년 동안 미룬 겁니다.

먹고사는 게 먼저라는 말에 대하여
저는 그 말이 틀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다만 이 말은 늘 한 방향으로만 쓰입니다.
먹고사는 게 먼저니까 친일 경찰을 그냥 쓰자.
먹고사는 게 먼저니까 과거는 묻고 가자.
먹고사는 게 먼저니까 검찰개혁은 천천히 하자.

이 말이 무언가를 시작하자는 쪽으로 쓰인 걸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멈추자는 쪽으로만 쓰입니다.
그러면 그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우선순위라면 순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 말에는 다음 순서가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정의를 하자던 사람이 실제로 정의를 하러 온 적이 있습니까?

1948년에 나라가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미뤘습니다.
1960년대에 산업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뤘습니다.
1970년대에 수출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입니다.
수출은 역대급이고 코스피는 올랐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랍니다.

그리고 그다음엔 다시 또 먼저인 게 있습니다.
왜일까요?
내 후손이 아니라 내 삶을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가 될지가 아니라 내 통장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걸 비난만하지 못합니다.
저도 통장을 봅니다. 매달 봅니다.
다만 통장은 내가 죽으면 닫힙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국가는 안 닫힙니다.
1949년에 그 판단을 한 사람들도 자기 생애만 보면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잘 먹고 잘 살다 갔습니다.
값은 그들이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 값은 우리에게 왔고, 우리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갈 겁니다.
내 생애 안에서 정산되지 않는 선택을, 내 생애만 보고 결정하는 것.
그게 이 나라가 그리고 당신들이 78년째 반복하는 실수입니다.

결국 이런 얘기입니다
정의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나중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먹고사는 문제를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친일 경찰이 살아남았기에 그 뒤 30년간 누가 잡혀가고 누가 고문당할지를 그들이 정했습니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쥐고 있었기에 지난 수십 년간 누가 기소되고 누가 무사할지를 그들이 정했습니다.
그리고 공소청고 중수청이 다시 그 권위와 권력을 쥐게 하려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정의보다 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그러저럭 잘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78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친일 청산을 못 한 게 그 시대의 한계였다고들 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해방 직후였고, 전쟁이 코앞이었고, 나라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무슨 한계입니까?
우리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전쟁 중도 아닙니다.
법도 이미 고쳤습니다.
국회를 통과시켰고, 대통령이 공약했고, 국민이 표로 명령했습니다.

남은 건 조직도 하나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1949년 6월 6일에 반민특위 사무실에 들어간 경찰들은 자기들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몰랐을 겁니다.
그저 직장을 지켰을 뿐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지금 검찰개혁이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현실을 본다고, 책임감 있게 판단한다고요.
78년 뒤에 그 판단이 어떻게 불릴지는 그때 가서 알게 될 겁니다.
다만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요.

그리고 저는 이제 먹고사는게 더 중요하다는 자들과도 같이 갈 수 없음을.
명백히 적대 관계임을 깨닫고 천명하고 싶습니다.

적입니다. 서로 사멸 시켜야할. 당신이 민주당 지지자라도.

Lv23 Jin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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