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장관님 현실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장관이라는 자리는 개인의 소신이나 과거의 영광을 실험하는 무대가 아닙니다. 주권 국가의 국무위원이자 한 부처를 이끄는 장(長)의 언행은 곧 그 부처의 뜻이며,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으로 직결됩니다. 그렇기에 고위 공직자의 발언에는 엄중한 책임과 현실에 기초한 명확한 안보관이 수반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동영 장관이 20년 전 참여정부 시절의 대북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의 유화 정책을 현재까지 이어가려는 완고한 집착은 일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 착공과 남북 철도 연결이라는 과거의 기억은 정치인 정동영에게 가장 화려한 훈장일 것입니다. 그러나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시대'는 완전히 바뀌었고. 20년 전의 북한과 작금의 북한은 체제의 성격도, 경제적 기반도,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다른 별개의 집단으로 보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20년 전 북한은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낸 이른바 ‘고난의 행군’ 직후였고. 경제적·사회적으로 체제 붕괴 직전의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바로 그 혼란의 시기에 김대중 정권의 ‘4억 5천만 달러 불법 대북송금’을 비롯한 남북 협력 자금이 투입되었고. 당시 북한 정권에 남한의 현금과 비료, 식량은 체제의 명줄을 이어갈 유일한 산소호흡기였습니다. 즉, 과거 정 장관이 앞세우는 대북 성과는 그의 외교력 덕분이 아니라, 북한의 극심한 경제적 파산이라는 특수한 시운(時運)이 맞물려 만들어낸 '상황적 요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은 어떠합니까? 북한은 이미 사실상의 핵무기를 완성했으며, 대한민국을 향해 ‘제1의 적대국’이자 통일의 대상이 아닌 교전국이라 선포했고.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위기를 기회 삼아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하며,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현금과 기술적 뒷배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민간 차원의 미약한 교류마저 끊긴 지 오래인 오늘날, 북한은 더 이상 남한의 경제적 원조에 목매지 않고. 이토록 판이하게 바뀐 안보 환경 속에서 20년 전의 낡은 문법으로 대화를 구걸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실로 시대착오적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최근 정동영 장관은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국면에서 돌연 ‘군사분계선(MDL) 재확정’을 주장하며 대화 테이블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기술적 오차를 줄이기 위해 선을 정밀하게 다시 긋자는 제안 자체는 원론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사후의 확실성'과 '선(先) 사과'라는 대전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매설한 지뢰로 우리 장병을 살상한 불법 도발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 앞에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합니다.
만약 침략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도 없이 성급하게 MDL 재확정 회담에 나선다면, 우리는 북한의 교묘한 '알박기 전략'에 말려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뻔뻔하게 "우리 지뢰가 묻혀 있는 곳이니 이곳은 원래 북한 영토다", "남한군이 우리 주권 영역을 침범했으니 당장 보상하라"며 적반하장의 공세를 펼칠 것이 자명하다. 준비되지 않은 저자세 회담은 북한에게 영토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우리의 주권 수호 의지만 약화시키는 자해 행위가 될 뿐입니다.
평화는 상대의 호의를 구걸하거나 과거의 향수에 젖어 용어를 바꿔준다고(북한을 조선으로 변경 추진, 의료장비 지원 등)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칼을 겨누고 있다면 우리 역시 방패를 단단히 쥐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정동영 장관은 시대착오적인 대북 환상에서 벗어나, 5천만 국민의 생명과 영토 주권이 걸린 엄중한 안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기 바랍니다. 주권과 영토 그리고 국민의 안전은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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