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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열네 번의 공짜 여론조사, 2심 법원은 '조언'이라 불렀다

아이콘 전승지기초
댓글: 10 개
조회: 1376
추천: 2
2026-10-07 21:47:57


정치 브로커가 대선 주자에게 여론조사를 공짜로 대 주었다. 1심이 인정한 것만 열네 번, 2,792만 원어치다. 10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이것이 죄가 아니라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조사를 건넨 명태균 씨도 무죄다.

이유가 놀랍다. 2심은 명 씨가 왜 그랬는지를 스스로 밝혔다. 유력 정치인과 관계를 맺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기여를 인정받으려는 사정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무죄를 선고했다.

정치자금법이 왜 있는가. 뒷돈으로 정치인에게 줄을 대는 일을 막으려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에게는 후원회처럼 정해진 길로, 정해진 한도 안에서, 장부에 남기면서만 돈을 줄 수 있다. 영향력을 얻으려고 대 준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이 법이 겨냥하는 거래다. 2심은 동기를 정확히 짚어 놓고 결론은 거꾸로 냈다.

빠져나간 길은 '조언'이라는 한마디다. 2심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받은 것은 여론 동향에 관한 조언과 유력 정치인 소개 같은 도움이고, 여론조사는 그 조언의 "수단 또는 근거"로 제시됐을 뿐이다. 조언은 "재산상 이익으로 환산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니 정치자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말이 아니다. 전화를 돌리고 응답을 모으고 통계를 내는, 돈이 드는 일이다. 1심은 그 값을 계산해 냈다. 2심은 계산서를 치우고 그 자리에 '조언'이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세무사가 절세 조언을 하면서 한 해 장부를 공짜로 정리해 주었다면 받은 사람은 조언만 받은 것인가. 법은 이미 답을 적어 놓았다. 정치인이 쓸 비용을 남이 대신 내는 것도, "그 밖의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도 기부다. 회사가 국회의원 사무실 직원의 월급을 대신 내준 사건에서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직원 월급은 정치자금인데 여론조사는 아니라는 말을 어떻게 납득하라는 것인가.

2심의 다른 기둥은 증거다. 부부가 조사를 부탁했거나 명 씨와 뜻을 맞췄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했다. 명 씨가 제 뜻대로 조사했고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결과를 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심 판결문에는 다른 장면들이 적혀 있다. 김건희 여사는 명 씨에게 윤 전 대통령의 휴대전화 번호와 행사 참석자 명단을 건넸다. 명 씨를 윤 전 대통령이 함께 있는 자택으로 불렀다.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나온 여론조사가 중단될 상황이 되자 항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명 씨는 "제가 정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1심은 일방적으로 건넨 것이라면 한두 번에 그쳤을 텐데 열 번을 넘겼다고도 했다. 부탁한 적 없다는 쪽이 조사가 끊길 일을 챙기고, 받기만 했다는 쪽이 열네 번을 받았다. 선고 당일 보도들에서는 2심이 이 장면들을 어떻게 물리쳤는지 찾을 수 없다. 판결문이 공개되면 가장 먼저 확인할 대목이다.

물론 주는 쪽이 멋대로 건넨 조사까지 받은 사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대법원도 2011년 그런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깼다. 그러나 그 사건은 조사 한 번, 200만 원어치였고, 그 뒤로는 정치인 쪽이 돈을 내고 조사를 맡겼다. 맛보기 한 번과 열네 번 거듭된 공짜 조사를 같은 저울에 올릴 수는 없다.

이 판결이 굳어지면 브로커에게는 사용 설명서가 생긴다. 계약서를 쓰지 말 것. 부탁받은 흔적을 남기지 말 것. 조사 결과를 건넬 때 조언 한마디를 얹을 것. 다른 정치인 몇에게도 돌려 둘 것. 그러면 조사비가 얼마가 들었든 정치자금이 아니다. 캠프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장부에도 남지 않는다. 값은 나중에, 다른 모양으로 치르면 된다. 1심은 이 공짜 조사가 훗날 김영선 전 의원 공천에 힘을 쓰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같은 사실을 두고 법원은 유죄와 무죄를 오갔다. 이제 대법원 차례다. 김건희 여사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올라가 있고, 특검은 이번 판결에도 상고하겠다고 했다. 같은 재판부는 10월 23일 오세훈 서울시장 사건의 2심도 선고한다. 대법원이 답해야 할 물음은 어렵지 않다. 돈 들여 만든 여론조사를 영향력을 얻으려고 정치인에게 거듭 대 주었다면, 그것은 정치자금인가 아닌가. 아니라고 답하는 순간 정치자금법은 돈봉투만 막는 법이 된다.

이름표를 바꿔 달아도 값은 남는다. 그 값을 누가, 무엇을 바라고 치렀는지 묻지 않는다면 정치자금법은 있으나 마나다.

Lv80 전승지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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