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의 VK4501(P)가 1942년 6월까지 Nibelungenwerke에서 완성되었으며, VK4501(H)가 6호 전차로 정식 채택이된 6월 이후에도 독자적인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1942년 8월까지 90대의 VK4501(P) 차체가 완성된 이후에야 생산중지 명령을 받고 생산을 중단시켰다.
이들 차체들에 대한 처리방안을 모색하던 중 88mm L/71을 장비한 대전차 자주포 Elephant로 개조하여 사용하게 된다.
완성된 VK4501(P) 5대중 1대가 Elephant 가 배치된 대대의 지휘전차로 사용된 것 외에 나머지4 대는 실험용 또는 훈련용으로 사용되었다.
그외에도 1~2대로 추정되는 Ram Tiger(ram : 흉각이라는뜻으로 전차 앞 부분에 돌출된 구조물을 달아 건물 벽을 들이받아 파괴하도록 설계된 전차), Berge Elephant(Elephant 견인에 사용된 공병전차)등이 실험제작되기도 하였다.
2)VK4501(H) Tiger
Henschel의 VK4501(H)의 개발은 VK3001(H), VK3601(H) 같은 선행 모델의 연장선에서 연구개발이 이루어졌으는데, 이들 선행모델들은 양산되지는 못했지만, 전차개발 기술에 필요한 많은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였다.
Porsche가 설계하고 Kurpp에서 생산한 VK4501(P)의 포탑을 약간 수정하여 Henschel의 VK4501(H)에도 탑재되게 되었다.
1941년 5월, Porsche의 VK4501(P)개발과 같이 추진되었던 Henschel의 VK3601(H)에는 75mm KwK 42 L/70 (Gerat 725) 또는 88mm KwK 36 L/56 포가 장착된 포탑이 탑재될 예정이었지만 포탑 개발이 지연되면서 VK3601(H)계획 자체가 무산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Henschel은 Porsche 단독으로 추진되고 있던 VK4501 project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VK3601(H)의 차체를 개조하여 VK4501H)라는 이름으로 개발에 참여하였다.
Henschel은 VK4501(H)의 개발단계에서 VK3601(H)와 동일하게 2개의 prototype, 즉, VK4501(H)와 VK4501(H2) 모델을 동시에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H1에는 Krupp이 Prosche의 VK4501(P)용으로 개발한 포탑을 일부 수정하여 탑재하는 것(실제로는 수정된 것이 없이 탑재되었다)이었으며, H2는 Rheinmental이 개발중인 75mm L/70포를 장비한 포탑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VK3601H) 개발과 동일하게 신형 75mm 포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mock-up 단계에 머물러야 했다.
정작 이 신형 포는 1년 뒤 완성되었으며 Panther의 주포로 결정되고 포탑 역시 이때 개발된 것이 Panther의 포탑이 된다.
이처럼 Henschel이 2가지 포탑을 탑재한 설계안을 마련 한 것은 자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대전차포 중에는 Krupp의 88mm L/71과 같은 장포신 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타개한 것은 외부적으로는 로비활동을 통해 자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88mm L/56을 VK4501의 주포로 선정되게 하는 것이었고, 내부적으로는 88mm L/71포의 생산과 함께 이와 유사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75mm L/70의 포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75mm L/70포(taper bore gun)개발 계획은 포탄의 탄두에 들어가는 텅스텐의 부족으로 계획이 차질을 겪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Henschel의 막강한 로비력 덕택에 88mm L/56이 주포로 선정되게 되었다.
이러한 로비는 Henschel 이라는 회사에게는 큰 이익을 주었지만, 독일에게는 큰 불이익을 안겨주었고 Tiger-I 전차의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Henschel의 분석처럼 조금 늦게 개발된 75mm L/70은 Tiger-I에 탑재된 88mm L/56과 비슷한 관통력을 가진 우수한 포였고, 이를 장비한 Panther와 비교했을 때, Tiger-I은 무게만 많이 나가는 별 장점없는 비싼 무기에 불과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전차 연구가들은 Tiger-I의 개발초기부터 주포 선정 단계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4호 전차까지는 비교적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독일 육군의 병기개발 담당자들이 전차 생산 회사의 로비에 휘말려 끊임없는 신형전차 개발에 빠지게 되었다고 평가내리고 있다.
Henschel의 VK3601H)의 차체에 Porsche에서 개발된 VK4501(P)의 포탑을 올리기 위해 차체의 개조가 불가피 했다.
우선 VK4501(P)용 포탑은 터렛링의 직경이 185cm인 반면 VK3601(H)의 터렛링은 이보다 작은 165cm였기 때문에 차체 폭을 연장시켜야 했고, 차체 전체의 장갑 두께 역시 강화되었다. 이러한 개조는 필연적으로 suspension 등에 무리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tracks의 폭을 보다 넓은 것으로 교체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는데, suspension 까지 개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3)승자는 헨쉘의 VK4501(H) Tiger
여러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VK4501의 prototype은 1942년 4월 19일 Rastenburg에서 11km 떨어진 Rastenburg로 이동되었는데, 진흙에 빠져 수차례의 고장을 일으켰다.
1942년 4월 20일 Porsche과 Henschel prototype은 Adolf Hitler에게 공개되었다.
VK4501(P)와 VK4501(H)의 주무장은 88mm KwK 36 L/56(88mm Flak 36 L/56의 대전차포형)로 매우 강력하였으며, 포탑은 Porsche가 설계하고 Krupp에서 생산된 것이 탑재되었다.
VK4501(H)에도 동일한 포탑에 약간 수정을 하였지만, 거의 동일하였다. Henschel에서는 원래 자신들이 설계한 포탑을 탑재하려고 하였으나 75mm L/70포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Porsche포탑을 탑재하게 되었다. Henschel의 VK4501(H2)용으로 개발되었던 포탑은 1년뒤에 완성되어 Panther에 장착되었다.
테스트는 6월까지 계속되었는데 육군이 제시한 개발사양에 적합하고 기계적 완성에 있어서 Porsche의 VK4501(P)가 높은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그러나 VK4501(P)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부 동력계통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Porsche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1942년 6월에는 장소를 독일 Berka에 소재한 전차학교로 옮겨 보다 광범위한 테스트가 VK4501(P)와 VK4501(H)에 대해 이루어 졌는데, VK4501(P)은 4월에 있었던 테스트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거의 개선하지 못한 반면, VK4501(H)은 많은 문제점을 해결한 상태였다.
VK4501(P)의 가장 큰 실패는 복잡한 동력장치와 이로 인한 유지/보수의 곤란이었다.
그러나 VK4501(P)는 차체 길이가 경쟁차인 VK4501(H)보다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제작공정 및시간, 그리고 생산비 부분에서는 훨씬 유리하였으며, 복잡한 내부구동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기동력 및 험지 주행성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Porsche는 이러한 VK4501(P)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자신이 설계한 포탑은 큰 개조 없이도 150mm KwK L/37 또는 100mm L/70 대전차포(당시까지 개발되지 않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개발되지 못했다)의 장착이 가능할 정도로 기계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orsche가 많은 문제점을 알면서도 복잡한 내부동력장치와 유압식 suspension을 고집스럽게 적용한 것은 당시 독일이 보유한 전차기술이 연합군에 비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톤 급으로 개발된 4호 전차는 지속적인 장갑 강화와 주포 교체로 인해 총 중량이 25톤을 넘어서면서 더 이상의 개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suspension, transmission등과 같은 동력계통에 무리를 주었다.
러시아의 T34가 간단한 내부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성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는 커다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Porsche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30톤 급을 넘어서는 전차에 있어서는 기존 독일전차에 적용된 방법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장치의 개발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Porsche가 적용한 방법 가운데에서 특히 전기식 transmission과 유압 suspension은 그때까지 개발되었던 독일전차 기술중에서 특히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gasoline-electric power/drive system'으로 구성된 내부 동력시스템 역시 이론적으로는 속도 조절이 간편하고 및 동력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들 동력시스템은 실제 운영결과 동력손실이 높았으며, 좌우 기동륜(drive sprocket wheel)을 가동시키는 전기 모터에 걸리는 부하가 서로 달라 모터에 무리를 준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의 기술로는 이러한 과부하를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모터에 다르게 걸리는 과부하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술을 적용한 VK4501(H)에도 큰 문제가 있었는데, 30톤급의 전차로 개발된 VK3001(H)에 적용된 기술을 약간의 개량을 거쳐 36톤급 그리고 45톤급 전차에 적용함으로써 튼튼해 보이는 것 모습과는 달리 내부 기계결함이 VK4501(P) 보다 많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Tiger-I이 양산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VK3001(H)에서부터 적용한 torsion bar와 overlapping된 road wheel은 유지/보수는 물론 불필요하게 전차의 무게만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Henschel측이 overlapping된 road wheel이 차체를 보호하는 장갑판 역할을 한다는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실전배치 결과 별 쓸모가 없었고 오히려 바퀴 사이에 진흙이나 눈이 뭉쳐 운행을 못하게 하는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지만, 무거운 차체를 지탱해줄 torsion bar의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King Tiger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VK4501(H)와 VK4501(P)의 prototpye의 항속거리는 개발사양에 한참 미달되는 50km 내외었으나 VK4501(H)는 내부공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추가 연료탱크를 부착하여 항속거리를 120km까지 연장시킬 수 있었던 반면, VK4501(P)는 복잡한 내부구조로 인해 항속거리 연장을 위해 추가 연료탱크의 장착을 어렵게 한 것도 패배의 한원인이었다.
1942년 6월 Henschel의 VK 4501(H)이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Porsche가 VK4501(P)에 붙인 Tiger라는 명칭까지도 빼았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VK4501(H)가 Tiger-I으로 선정되기는 하였지만, 기계적인 특성과 완성도는 VK4501(P)가 더 높았던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