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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VK4501(H)와 VK4501(P)

아이콘 Hakd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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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406
추천: 5
2014-01-31 11:17:45

1. VK4501

전격전의 빛나는 전과로 독일 전역이 들떠있던 것과는 달리 독일 수뇌부는 프랑스전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끊이지 않고 열렸는데, 특히 프랑스의 B1과 같은 중전차에 대해 비장의 무기라고 여겨졌던 4호 전차의 75mm포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당시 보병의 주력 대전차 무기였던 37mm/50mm대전차포는쓸모가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B1의 낮은 기동력과 운영상의 잘못으로 쉽게 격파할 수 있었지만, B1의 75mm 주포 1발에 4호 전차 2~3대가 동시에 격파된 것이 밝혀지면서 4호 전차보다 강력한 무장과 장갑을 가진 강력한 전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937년 4호 전차의 prototype이 개발된 이후 영국의 Matilda와 프랑스의 B1등과 같은 Heavy tank 개발계획이 독일에서도 끊이지 않고 진행되었었다.

 

그러나 4호 전차와 유사한 디자인에 장갑의 두께를 보다 강화시킨 DWI/II heavy tank, 그리고 75mm 포를 장비한 VK6501(H) 등과 같은 heavy tank개발계획들은 기계적 완성도가 낮았기 때문에 모두 실패를 하였다.

 

이로 인해 독일은 3/4호 전차와 같이 비교적 장갑의 두께가 얇은 중형전차(medium tank)만을 가지고 전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연합군의 구형전차들을 상대로 독일은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점차 연합국도 그들이 개발하고 있었던 신형전차를 완성시켜 실전에 비치하면서 전차전에서 독일의 절대적 우위가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1940년말부터 등장한 러시아의 T34와 KV는 독일의 상상을 초월하는 우수한 전차였다. 이들 러시아 전차가 본격 배치된 1941년 부터는 러시아 신예전차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하였고, 시급한 대책마련이 요구되었다.

 

1941년 초부터 신형전차 개발계획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독일 수뇌부는 러시아 신예전차를 일격에 격파하여 지상전의 우위를 되찾을 강력한 전차의 개발을 촉구하면서 주포로는 전차 공격에서도 탁월한 효과가 입증된 88mm 대공포를 개조한 88mm 대전차포를 탑재한 중형전차(heavy tank)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일선부대 지휘관들은 88mm와 같은 대구경포는 협소한 포탑 내에서 운영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이보다 구경이 작은 60~75mm포를 장착한 중형전차(medium tank)의 개발을 요구하였는데, 몇 달동안 계속된 토론 속에서도 양자의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였다.

 

단지 1500m밖에 떨어진 100mm 철판을 관통할 수 있는 고성능의 전차와 이에 상응하는 공격을 받았을 때 격파되지 않는 방호력을 보유한 전차라는 기초적인 개념만 확정된 상태에서 귀중한 시간만 허비한 것이었다.

 

일선전차 부대의 지휘관들이 이처럼 대구경포를 장착한 heavy tank의 개발보다는 소구경을 선호한 또다른 이유는 1930년 중반 이후 개발을 추진하였던 많은 중전차 개발계획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고, 이런 상태에서 또다시 중전차의 개발을 착수하게 되면 언제 완성될지 그리고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데, 전장의 상황은 1930년대 중반과는 매우 달라 만약 신형전차 개발계획이 실패하게 된다면 전력상으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둔 4호 전차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medium tank의 개발을 촉구한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고, 신형전차 개발계획은 양자의 입장을 모두 수용하는 방안으로 가닥이 잡혀 갔다.  

 

1941년 5월 26일, Adolf Hitler는 Dr.Porsche와 Henschel에게 새로운 중형 전차의 개발을 명령하였으며, Krupp은 Henschel과 Porsche에서 설계한 포탑을 생산하도록 하였다.

 

독일 수뇌부가 주장한 88mm급 중전차(heavy tank)는 VK4501이라는 이름으로 Porsche에서 개발을 담당하도록 하였으며, 일선부대 지휘관들이 주장한 75mm급 중전차(medium tank)는 VK3601이라는 이름으로 Henschel에서 개발을 담당토록 한 것이다.

 

신형전차 개발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4호 전차의 후계차량은 물론 화력지원차량 동시에 개발이 추진된 것인데, 이러한 방법은 독일이 3/4호 전차를 개발한 것과 동일하였고 연합군의 경우에도 비슷하였다.

 

계획대로 2가지 차량이 개발된다면 화력의 균형을 맞춰 공격과 방어 양면에서 강력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어느 한 차량이 실패하게 되면 전차 운영에 큰 차질을 주는 위험부담이 뒤따른다.

 

VK4501에 대한 개발 사양은 전투중량 45~50ton 내외에 88mm포 탑재하여 1500m에 있는 어떠한 적전차도 격파 할 수 있으며, 반대로 1500m에서 발사된 적의 대전차 포에 대해  충분한 방어력을 가질 수 있도록 차체와 포탑 전면 장갑의 두께는 100mm로 하였으며, 이러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최고속도는 4호전차 보다 빠른 40km/h에 150km의 긴 항속거리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개발사양은 3/4호 전차의 성능을 크게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Porsche는 VK4501(P)라는 명칭으로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로써 유명한 Tiger-I 전차 개발 계획인 VK4501 project가 시작된 것이다.

 

1)VK4501(P) Tiger

 

Porsche의 VK4501(P)는 VK 3001(P)의 연장선에서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 실험차량은 양산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전차 설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새롭게 설계되기 보다는 요구된 사양에 맞도록 VK3001(P)의 차체를 확대하는 선에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요구된 속도를 내기 위해 VK4501(P)의 주행기구는 VK 3001(P)을 개량하여 사용되었으나 근본적으로는 동일하였다. Prorsche가 생각하기로는 그리고 여러 가지 실험결과 Henschel가 적용한 방식보다는 자신이 개발한  주행장치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VK4501(P)는 기존의 독일전차와는 달리 리턴 롤러가를 없애고 대형 유도륜(road wheel)을 장비하여 주행능력은 물론 속도를 향상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소련의 BT 전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력장치 역시 VK3001(P)와 동일하게 2개의 공랭식 Porsche Typ 101/1 엔진을 사용하고 여기에서 얻어진 전기를 이용하여 2개의 주행모터로 drive sprocket wheel을 가동시키는 복잡한 방식을 사용하였지만, 복잡한 구조와는 달리 내구성과 신뢰성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조정성능에 있어서는 기존의 독일전차보다 좋았다고 한다.

 

또한 기계식 transmission을 장착한 기존의 전차나 경쟁사인 Henschel이 개발중인 신형전차 보다 성능이 우수한 전기식 transmission을 장비하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tracks는 폭 500mm짜리가 장착되었으나, 차체 중량이 계획보다 증가하자 600mm로 바뀌었고, 최종적으로는 폭 640mm의 Kgs 62/640/130형이 장착되었다.

 

그러나 VK3001(P)에서 겪었던 문제점들이 VK4501(P)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점은 동력장치로 적용된 gasoline-electric power/drive system에서 발생했는데, 정확한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이들 동력장치에 예상치를 넘는 과부하가 걸리게 되면 장치에 무리를 주어 쉽게 고장이 난다는 것과 개발 사양이 변경되어 추가적으로 장갑의 두께가 증가되면 동력계통 전부를 새로 설계해야 하는 문제가 뒤따랐던 것인데, 근본적인 문제는 요구된 출력을 낼 수 있는 엔진과 발전기를 Porsche에서는 생산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었다.

 

이로 인해 VK4501(P)는 지면이 약한 진흙에 빠져 번번이 고장을 일으켰으며, 복잡한 내부 구조로 인해 충분한 항속거리 위한 보조 연료탱크의 증설 자체가 불가능했다. 엔진 출력이 부족하면 보다 출력이 향상된 엔진으로 교체하면 되는 다른 전차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5대의 VK4501(P)가 1942년 6월까지 Nibelungenwerke에서 완성되었으며, VK4501(H)가 6호 전차로 정식 채택이된 6월 이후에도 독자적인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1942년 8월까지 90대의 VK4501(P) 차체가 완성된 이후에야 생산중지 명령을 받고 생산을 중단시켰다. 

 

이들 차체들에 대한 처리방안을 모색하던 중 88mm L/71을 장비한 대전차 자주포 Elephant로 개조하여 사용하게 된다.

 

완성된 VK4501(P) 5대중 1대가 Elephant 가 배치된 대대의 지휘전차로 사용된 것 외에 나머지4 대는 실험용 또는 훈련용으로 사용되었다.

 

그외에도 1~2대로 추정되는 Ram Tiger(ram : 흉각이라는뜻으로 전차 앞 부분에 돌출된 구조물을 달아 건물 벽을 들이받아 파괴하도록 설계된 전차), Berge Elephant(Elephant 견인에 사용된 공병전차)등이 실험제작되기도 하였다.

 

 

2)VK4501(H) Tiger

 

Henschel의 VK4501(H)의 개발은 VK3001(H), VK3601(H) 같은 선행 모델의 연장선에서 연구개발이 이루어졌으는데, 이들 선행모델들은 양산되지는 못했지만, 전차개발 기술에 필요한 많은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였다.

 

Porsche가 설계하고 Kurpp에서 생산한 VK4501(P)의 포탑을 약간 수정하여 Henschel의 VK4501(H)에도 탑재되게 되었다.

 

1941년 5월, Porsche의 VK4501(P)개발과 같이 추진되었던 Henschel의 VK3601(H)에는 75mm KwK 42 L/70 (Gerat 725) 또는 88mm KwK 36 L/56 포가 장착된 포탑이 탑재될 예정이었지만 포탑 개발이 지연되면서 VK3601(H)계획 자체가 무산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Henschel은 Porsche 단독으로 추진되고 있던 VK4501 project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VK3601(H)의 차체를 개조하여 VK4501H)라는 이름으로 개발에 참여하였다.

 

Henschel은 VK4501(H)의 개발단계에서 VK3601(H)와 동일하게 2개의 prototype, 즉, VK4501(H)와 VK4501(H2) 모델을 동시에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H1에는 Krupp이 Prosche의 VK4501(P)용으로 개발한 포탑을 일부 수정하여 탑재하는 것(실제로는 수정된 것이 없이 탑재되었다)이었으며, H2는 Rheinmental이 개발중인 75mm L/70포를 장비한 포탑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VK3601H) 개발과 동일하게 신형 75mm 포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mock-up 단계에 머물러야 했다.

 

정작 이 신형 포는 1년 뒤 완성되었으며 Panther의 주포로 결정되고 포탑 역시 이때 개발된 것이 Panther의 포탑이 된다.

 

이처럼 Henschel이 2가지 포탑을 탑재한 설계안을 마련 한 것은 자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대전차포 중에는 Krupp의 88mm L/71과 같은 장포신 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타개한 것은 외부적으로는 로비활동을 통해 자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88mm L/56을 VK4501의 주포로 선정되게 하는 것이었고, 내부적으로는 88mm L/71포의 생산과  함께 이와 유사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75mm L/70의 포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75mm L/70포(taper bore gun)개발 계획은 포탄의 탄두에 들어가는 텅스텐의 부족으로 계획이 차질을 겪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Henschel의 막강한 로비력 덕택에 88mm L/56이 주포로 선정되게 되었다.

 

 

 

이러한 로비는 Henschel 이라는 회사에게는 큰 이익을 주었지만, 독일에게는 큰 불이익을 안겨주었고 Tiger-I 전차의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Henschel의 분석처럼 조금 늦게 개발된 75mm L/70은 Tiger-I에 탑재된 88mm L/56과 비슷한 관통력을 가진 우수한 포였고, 이를 장비한 Panther와 비교했을 때, Tiger-I은 무게만 많이 나가는 별 장점없는 비싼 무기에 불과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전차 연구가들은 Tiger-I의 개발초기부터 주포 선정 단계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4호 전차까지는 비교적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독일 육군의 병기개발 담당자들이 전차 생산 회사의 로비에 휘말려 끊임없는 신형전차 개발에 빠지게 되었다고 평가내리고 있다.

 

Henschel의 VK3601H)의 차체에 Porsche에서 개발된 VK4501(P)의 포탑을 올리기 위해 차체의 개조가 불가피 했다.

 

우선 VK4501(P)용 포탑은 터렛링의 직경이 185cm인 반면 VK3601(H)의 터렛링은 이보다 작은 165cm였기 때문에 차체 폭을 연장시켜야 했고, 차체 전체의 장갑 두께 역시 강화되었다. 이러한 개조는 필연적으로 suspension 등에 무리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tracks의 폭을 보다 넓은 것으로 교체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는데, suspension 까지 개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3)승자는 헨쉘의 VK4501(H) Tiger

 

여러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VK4501의 prototype은 1942년 4월 19일 Rastenburg에서 11km 떨어진 Rastenburg로 이동되었는데, 진흙에 빠져 수차례의 고장을 일으켰다.

 

1942년 4월 20일 Porsche과 Henschel prototype은 Adolf Hitler에게 공개되었다.  

 

VK4501(P)와 VK4501(H)의 주무장은 88mm KwK 36 L/56(88mm Flak 36 L/56의 대전차포형)로 매우 강력하였으며, 포탑은 Porsche가 설계하고 Krupp에서 생산된 것이 탑재되었다.

 

VK4501(H)에도 동일한 포탑에 약간 수정을 하였지만, 거의 동일하였다. Henschel에서는 원래 자신들이 설계한 포탑을 탑재하려고 하였으나 75mm L/70포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Porsche포탑을 탑재하게 되었다. Henschel의 VK4501(H2)용으로 개발되었던 포탑은 1년뒤에 완성되어 Panther에 장착되었다.

 

테스트는 6월까지 계속되었는데 육군이 제시한 개발사양에 적합하고 기계적 완성에 있어서 Porsche의 VK4501(P)가 높은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그러나 VK4501(P)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부 동력계통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Porsche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1942년 6월에는 장소를 독일 Berka에 소재한 전차학교로 옮겨 보다 광범위한 테스트가 VK4501(P)와 VK4501(H)에 대해 이루어 졌는데, VK4501(P)은 4월에 있었던 테스트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거의 개선하지 못한 반면, VK4501(H)은 많은 문제점을 해결한 상태였다.

 

VK4501(P)의 가장 큰 실패는 복잡한 동력장치와 이로 인한 유지/보수의 곤란이었다.

 

그러나 VK4501(P)는 차체 길이가 경쟁차인 VK4501(H)보다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제작공정 및시간, 그리고 생산비 부분에서는 훨씬 유리하였으며, 복잡한 내부구동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기동력 및 험지 주행성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Porsche는 이러한 VK4501(P)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자신이 설계한 포탑은 큰 개조 없이도 150mm KwK L/37 또는 100mm L/70 대전차포(당시까지 개발되지 않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개발되지 못했다)의 장착이 가능할 정도로 기계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orsche가 많은 문제점을 알면서도 복잡한 내부동력장치와 유압식 suspension을 고집스럽게 적용한 것은 당시 독일이 보유한 전차기술이 연합군에 비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톤 급으로 개발된 4호 전차는 지속적인 장갑 강화와 주포 교체로 인해 총 중량이 25톤을 넘어서면서 더 이상의 개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suspension, transmission등과 같은 동력계통에 무리를 주었다.

 

러시아의 T34가 간단한 내부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성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는 커다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Porsche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30톤 급을 넘어서는 전차에 있어서는 기존 독일전차에 적용된 방법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장치의 개발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Porsche가 적용한 방법 가운데에서 특히 전기식 transmission과 유압 suspension은 그때까지 개발되었던 독일전차 기술중에서 특히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gasoline-electric power/drive system'으로 구성된 내부 동력시스템 역시 이론적으로는  속도 조절이 간편하고 및 동력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들 동력시스템은 실제 운영결과 동력손실이 높았으며, 좌우 기동륜(drive sprocket wheel)을 가동시키는 전기 모터에 걸리는 부하가 서로 달라 모터에 무리를 준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의 기술로는 이러한 과부하를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모터에 다르게 걸리는 과부하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술을 적용한 VK4501(H)에도 큰 문제가 있었는데, 30톤급의 전차로 개발된 VK3001(H)에 적용된 기술을 약간의 개량을 거쳐 36톤급 그리고 45톤급 전차에 적용함으로써 튼튼해 보이는 것 모습과는 달리 내부 기계결함이 VK4501(P) 보다 많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Tiger-I이 양산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VK3001(H)에서부터 적용한 torsion bar와 overlapping된 road wheel은 유지/보수는 물론 불필요하게 전차의 무게만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Henschel측이 overlapping된 road wheel이 차체를 보호하는 장갑판 역할을 한다는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실전배치 결과 별 쓸모가 없었고 오히려 바퀴 사이에 진흙이나 눈이 뭉쳐 운행을 못하게 하는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지만, 무거운 차체를 지탱해줄 torsion bar의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King Tiger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VK4501(H)와 VK4501(P)의 prototpye의 항속거리는 개발사양에 한참 미달되는 50km 내외었으나 VK4501(H)는 내부공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추가 연료탱크를 부착하여 항속거리를 120km까지 연장시킬 수 있었던 반면, VK4501(P)는 복잡한 내부구조로 인해 항속거리 연장을 위해 추가 연료탱크의 장착을 어렵게 한 것도 패배의 한원인이었다.

 

1942년 6월 Henschel의 VK 4501(H)이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Porsche가 VK4501(P)에 붙인 Tiger라는 명칭까지도 빼았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VK4501(H)가 Tiger-I으로 선정되기는 하였지만, 기계적인 특성과 완성도는 VK4501(P)가 더 높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Lv52 Hakd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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