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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는 그는 바로 김곱등이다.
“으악!!!!!”
갑자기 잠에서 깬 곱등이는 있는대로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로 뛰어 갔다. 그러고는 최대한 빠르게 씻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그가 사랑하는 그의 애마 “의료선”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자전거다.
“찌루! 찌루!”
그는 찌루의 이름을 외치며 있는대로 자전거 페달을 돌렸고, 도서관까지 싸이클 선수라도 되는 양 달리기 시작했다.
“헉.. 헉..”
한 겨울이었지만 곱등이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 체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라? 피노 누님이시다! 누..님?”
그는 피노가 도서관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손을 들어 인사를 하려 했지만, 뒤따라온 한 남자가 피노를 잡는 것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이거.. 재밌는걸?”
그 둘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곱등이는 있는 힘껏 도서관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그리고 도서관이 무너질만큼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곱등 인사드립니다!”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수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곱등이의 인사 소리가 작아질거라 생각하는 사서는 아무도 없었다.
퍽!
“윽!”
곱등이는 자신의 뒷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고 뒤를 돌아 보았고, 그곳에 바로 곱등이의 여신 찌루가 있었다.
“너 조용 안 할래!”
“누님! 하룻밤 새에 왜 이리 아름다워지셨습니까??”
“시끄럽다니까!!”
평소에 개미와 누가 목소리가 더 작을까를 하는 찌루였지만 곱등이 앞에서는 있는대로 목소리가 커졌다.
“크.. 누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고 듣기 좋습니다”
“제발.. 조용해라..”
“네! 누님!”
“휴..”
곱등이는 한대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아! 맞다! 누님!”
“응?”
찌루는 그를 바라보았고, 곱등이의 눈은 순간 하트로 바뀌고 있었다.
“누님.. 너무 아름다우.. 아 맞다.. 밖에 피노누님이랑 어떤 형님이랑 같이 가시던데요?”
“아. 그래? 오늘 우리 도서관 처음 온 천폭이라는 분인데 피노언니한테 관심이 있는거 같더라고”
“오.. 피노누님에게 드디어 봄이!”
“쉿! 너 그러다가 피노언니 들으면 죽을지도 몰라..”
“헉.. 매일 같이 스타도 발리는것도 모자라서… 현실에서도 죽으면 안되겠죠? 난 찌루 누님을 지켜줘야 하는데..”
“헛소리 하지 말고.. 왜 왔어?”
“누님 보러 왔죠”
“다른 고3 애들은 오늘도 학교 가던데.. 넌 안 가?”
“에이. 걔네는 불쌍한 정시생, 난 능력 좋은 수시생이잖아요”
“아.. 재수 없다.. 왠지 수시생 애들한테 놀림 받던 옛 기억이 나는거 같아..”
“감히 어떤 놈들이 누님을!!”
“시끄러!!”
“에헤헤”
“일하는거 방해하지 말고 책이나 봐”
“네. 누님. 에헤헤”
곱등이는 책장쪽으로 가더니 아무 책이나 골라서 찌루의 자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보는건지 찌루를 보는건지 곱등이는 연신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천폭. 대답하라.]
천폭은 자신의 일터로 가는 길에 피노의 문자를 받았다.
[왜?]
짧고 간결한 문자. 하지만 귀찮음이 핸드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쳇..”
피노는 문자를 받고서는 답장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뭐하냐?]
[일하러 간다]
[이 시간에?]
[편의점이 뭐 그렇지]
[편의점? 알바하냐?]
[직접 운영중입니다만..]
[헐..어딨는건데?]
[궁금한것도 많으십니다. 편의점 알려주면 찾아와서 다 먹을라고?]
[응]
[당당하다.. 참..]
[그냥 얼굴 보러 가는거지 뭐]
[내 얼굴을 왜 봐?]
연애 경험이 역시나 전무한 피노는 천폭의 말이 매정하기도 했고, 센스 없는 남자라며 욕을 하였다.
[얼굴을 봐야 공짜로 뜯어 먹지]
[그게 무슨 논리야?]
[아.. 몰라 시끄러. 문자 보내지마]
[그쪽이 먼저 보냈거든요?]
피노는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아.. 첫눈에 반하는건.. 웹툰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같았는데.. 근데.. 저 놈은 찌루한테 관심을 보이고.. 이건.. 막장 드라마의 시작인건가..?”
피노의 넋두리가 한참을 이어졌다.
난 더 이상 문자가 오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자 8개.. 240원이 그냥 허공으로 날아간 기분이었다.
“근데.. 이 여자.. 왜 날 보겠다는거지? 설마.. 첫눈에 나한테 반했다는건가??”
난 내가 말해놓고도 어이 없다는듯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 왔고, 난 피노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