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변장은 완벽했다.
성문의 경비병들은 그가 생각나는 대로 말한 가명을 그대로 믿었고, 그를 통과시켜 주었다. 허름해보이는 변장을 한 채로, 그는 거대한 빛의 도시 안으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아직 그가 있는 곳은 도시 안쪽이 아닌 도시 외각을 보호하는 군사주둔지 였긴 하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그가 ‘변장’을 하고서 잠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그는 빛을 믿는 이 ‘적’들의 소굴을 태연하게 마치 제집 드나들 듯이 잠입해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잠입해서 들어온 목적은, 다른 때와는 달랐다.
‘알도르.............’
그는 그가 죽일 에레다르의 이름을 한번 곱씹었다.
알도르는 스스로를 ‘빛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빛의 마법을 다루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던 그는, 뛰어난 통솔력으로 많은 에레다르들의 지지와 충성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그는 미쳐버렸다.
알도르는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무차별하게 죽이기 시작했고, 이내 평화로웠던 아르거스는 빛을 믿는 자들의 국가와, 그렇지 않는 자들의 국가로 나뉘었다.
그것이 천년전에 일어났던 일이였다.
그리고 이후,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알도르는 ‘정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의 동족을 죽였다. 물론, 그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였다. 실제로 동족을 죽인 것은 알도르를 믿는 ‘빛의 기사’들이였고, 그들은 무자비하게 동족을 죽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빛의 도시의 중앙에서 구름을 뚫고 우뚝 선 거대한 탑을 바라보았다. 그가 들은 바로는 알도르가 그 거대한 탑의 꼭대기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빛의 기사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 더 걷자, 그의 눈 앞에는 ‘보이지 않는 성벽’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만들어진 성벽이였다. 사람들은 이 벽을 ‘유리 철벽’이라고 불렀고, 성벽 밑에 역시 유리로 만들어져 속이 다 보이는 성문들이 있었다. 성문은 ‘마법 감지기’라고 하는 원통형의 구식 마법장치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마법 감지기를 성벽에 끼워넣고, 사람들을 그 사이로 지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맨 처음 잠입했을 때, 마법 감지기에 변장이 걸린 그때를 문득 떠올렸다. 별 시덥지않은 장치 때문에 상당히 귀찮았던 기억이였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있어, 마법 감지기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는 마법 감지기 사이로 유유히 걸어갔다. 무능한 마법 감지기는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지 못했고, 그는 여유롭게 마법 감지기를 통과했다.
그렇게 그는 손쉽게 유리 철벽 안으로 들어왔다.
‘유리 철벽’안은 진짜 도시였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에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 틈속에, 그는 부드럽게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의 파도 속에 그의 몸을 숨긴 채, 아까 보았던 탑을 다시 보고,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제 그는 그곳을 올라갈 것이다. 알도르가 그를 만나는 순간이, 알도르의 끝일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빛의 기사들이 그를 보호한다 하더라도 알도르의 목숨은 아주 쉽게 끊어질 것이다.
탑의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탑의 앞쪽까지 올 때 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이리저리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한 사람이 명령한 것처럼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당황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 놀랄 것 없네, 나의 친구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유일하게 고개숙이지 않은 자가 근엄하게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도르였다.
“나의 오랜 친구, 말가니스여. 나의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