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는 오늘도 그녀를 꿈꾼다.
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내리는 굵은 빗줄기. 난 시부야 한 가운데 서서 비를 맞고 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 어느 순간 사람들이 하나하나 생겨나고 내가 서 있는 시부야의 교차로에 수많은 차량들이 생겨난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봐 왔던 그 날의 모습. 저 멀리서 한대의 차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 또 다른 나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난 있는 힘껏 달려가 나에게 말을 한다. 피하라고. 제발 피하라고. 하지만 과거의 나와 그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만 할 뿐, 내 몸을 통과해 계속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지그재그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들을 덮치고 옆의 가게를 들이 받으며 겨우 멈춘다. 또 다른 나, 아니 과거의 나는 멀리 튕겨져 나간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일본어로 쉴 새 없이 자신들이 목격한 참혹한 광경에 대해 말을 하고, 몇몇의 사람들은 나를 최대한 차에서 멀리 끌어내었다. 피를 흘리며 나는 있는 힘껏 그들을 밀쳐 내며 그녀를 찾는다. 그리고 바라보는 나와, 과거의 나 동시에 그녀를 찾아내었다. 차에 치여 멀리 날아간 나와 다르게 그녀는 차 밑에 깔려 있었고, 간신히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손을 잡으러 가기 전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차량이 터져 버린다.
“으악!”
난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세찬 빗줄기가 내 창을 두드리고 있었고, 번개는 순간순간 나에게 그날의 굉음을 들려주는 듯 했다. 땀에 젖은 내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고, 난 그렇게 한참을 침대에 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3년 전, 그녀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나서부터 시작된 이 악몽은 비가 오는 날마다 날 괴롭혔고, 오늘 밤 역시 난 그렇게 잠을 설치고 말았다.
“미야야..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흑흑.. 미안해..”
그녀의 이름은 미야. 내가 모든 마음을 다해서, 내 모든 것을 사랑 했던 그녀의 이름은 미야였다. 나를 향해 웃어 주던, 나에게 사랑한다 말하던 그 목소리는 모두 과거의 기억이 되어 버렸지만 난 여전히 그녀만을 사랑하고 그녀만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내가 그날.. 그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다면..”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이야기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자책하지 않고 나만 행복하게 살 수는 없었다. 내가 그녀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를 죽인 것과 다름없다 생각하고 이렇게 3년을 괴로워했다. 지금의 이 괴로움만이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과였다.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해가 뜨고 나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릴 때까지 난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손에 들려진 그녀가 아름답게 웃고 있는 사진이 나의 눈물로 범벅이 되어 버렸지만, 난 이렇게 평생을 살아가야만 한다고 생각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