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시간은 흘러 새벽 5시가 되었다. 조금씩 어둠은 걷혀가고 있었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어우.. 그러니까.. 하루 누나는 웃음 소리 때문에 남친이 없다는거네?"
"흐흐흐. 그렇지."
"누나. 왜 흐흐흐 하고 웃어?"
"왜? 너도 듣기 싫으냐?"
"아니.. 난 귀여운데.."
"뭐 임마. 난 니가 더 귀여운데?"
"흐흐"
왕곰과 하루는 이미 거하게 취해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하고 있었다. 누스밤과 천폭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화중은 어떻게 하면 취해서 쓰러진 버티칼을 데려 갈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누나는 괜찮아요?"
"응..헤헤"
상미와 천천히 마신지라 아직까지 멀쩡했고, 꽃비는 살짝 술에 취해 있었다. 둘은 다른 사람들을 보며 그저 웃고만 있었다.
"상미는 집에 안 들어가?"
"가야죠."
"헤헤. 그렇구나."
"누나는 남자친구 없어요?"
"남..자..친..구..라.."
"있나보네요.."
상미는 그녀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 같다는 느낌에 왠지 기운이 빠져 버렸다. 그때 누스밤이 상미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남자친구 없어."
"진짜요?"
"야. 누스밤."
"남자친구 있어? 없잖아."
누스밤은 꽃비를 보며 윙크를 했고, 꽃비는 오해를 어떻게든 풀고 싶었다.
"아. 상미야. 그게."
"헤헤. 남자친구도 없으면서 왜 있는 것처럼 그래요?"
"아니. 그러니까."
"아아. 내가 싫어요?"
꽃비는 갑작스러운 상미의 질문에 당황했다.
"내가 싫어서 남자친구 있다 그랬나봐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됐네요. 그것도 아닌데 뭐 어때요."
"어휴.."
"집에 가요. 우리 성격 안 좋은 누나 일어나기 전에는 가야 할 거 같아요."
"으응.."
상미와 꽃비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미로서는 뭔가 아쉬웠지만 그녀가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야. 왕곰. 우리 간다."
"어 그래. 가라"
"쳐다 보지도 않네. 나쁜 놈 같으니."
"너.. 우리 왕곰한테 뭐라 하면 죽는다."
"네네. 천폭은?"
"아. 나랑 누스밤은 그러니까."
"좋은데 갈거야."
"아.. 네.. 화중..은 알아서 하겠지."
".........흐흐.."
"나머지 사람들도 일어나자고."
"버티칼은 어떻게 해?"
"꽃비 넌 걱정말고 집에나 들어가. 화중이가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에헤!"
화중은 버티칼을 업었고, 하루와 왕곰은 팔짱을 끼고 어느샌가 사라졌다. 누스밤과 천폭은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꽃비와 상미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는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그들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상미와 꽃비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나."
"응?"
"집에 있기 심심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심심할 때는 뭐해요?"
"그냥.. 컴퓨터도 하고.."
"컴퓨터? 게임 같은거 해요?"
"아니. 게임은 아는게 없어서.."
"그럼.. 음.. 나랑 와우 할래요?"
"와우?"
"네. 와우라고 재밌는 게임 있는데"
"아.. 근데 내가 그런 쪽은 영.."
"내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
"그럴까?" "이메일 주소가 뭐에요? 내가 쿠폰 보내 줄게요."
꽃비는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상미에게 알려 주었고, 상미는 오늘 수확이 많다는 생각에 행복함을 느꼈다.
"누나."
"으응?"
상미는 창 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뜸을 들였다. 왠지 숨이 가빠왔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누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 믿어요? 난.. 그런 말 아마 나한테는 없을 것 같았거든요. 첫눈에 반하게 돼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그런 영화 같은 이야기 나에게는 없는 이야기일거라 생각 했거든요.. 그런데.. 헤헤.. 내가 그걸 하게 되었어요. 상대방이 말이에요.. 누구냐면.."
창 밖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상미는 순간 자신의 어깨에 그녀가 기대는 것을 느꼈다.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이 멈추지를 않았다.
"누나.. 그 사람이 바로.. 누나..에.. 응?"
상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 꽃비에게 말을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을 때 잠이 든 그녀를 볼 수 있었다.
"하..하.. 잠들어 버렸네.."
상미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살짝 닿은 그의 손길에 꽃비는 기분이 좋은 듯 몸을 움직였고, 상미는 아주 잠시 그녀의 자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누나.. 그거 알아요.. 누나를 만난지 이제 이틀, 아니 삼일 째인데.. 누나란 사람이 내 가슴에 너무 깊숙이 박혀 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되기도 해요.. 나만 이런 감정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에요.."
상미의 고백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사랑이.. 누나 같은 사람이라서 굉장히 행복해요. 가슴이 설레고 쉴새없이 요동치죠. 누나 생각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심장.. 내 심장소리가 들리나요?"
택시는 어느새 집 주변에 다 도착 하였다.
"아저씨."
"네?"
"조금만 천천히 달려 주세요."
"네."
"그리고.. 집 앞에서 잠시만 시동 끄시고 누나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 네. 뭐 그러죠."
상미는 지금 이 순간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한 차는 그렇게 한참을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따르르릉
조용하던 택시에 전화벨이 울렸고, 그 소리에 꽃비는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다된 시간. 포장마차에서 출발한지 벌써 두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일어났어요?"
"아.."
"너무 곤히 자서.. 깨울 수가 없었어요.."
"으응.."
"전화 안 받아요?"
"아.. 맞다.. 전화.."
꽃비는 전화기를 열었다. 그리고 그 곳에 떠 있는 번호를 보았다.
"아!"
꽃비는 택시에서 인사도 없이 내리고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상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네?"
"잠시만 기다려주실래요.. 돈이 부족해서.." "허 참.."
상미는 어쩔 수 없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후 그녀의 누나가 집에서 나왔다.
"넌.. 이 새벽부터 날 깨워야겠냐.."
"미안허이. 돈은?"
"아저씨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택시는 떠났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택시를 보자마자 상미는 누나에게 구타 당하기 시작했다.
"야! 미야!"
"미야? 이게 누나 이름을 막 불러!"
"아.. 미안하다고!"
"너 때문에 나 잠 못 자서 피부 푸석푸석해서 린트씨 만나러 갈 때 안 이쁘게 화장 먹으면 니가 책임질래?"
"미안하다고!! 그만 좀 때려!!"
한편 집으로 뛰어 들어간 꽃비는 떨리는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여보세요.."
"안 자고 있었어?"
"설국씨.."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