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여러분의 감성을 채워줄 노래 한 곡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홍콩 팝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도 애틋한 뒷이야기를 품은 곡, 바로 왕페이(王菲)의 ‘약정(約定)’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가사를 쓴 천재 작사가 임석(林夕)의 덤덤하지만 아픈 ‘짝사랑 에세이’이기도 합니다.
홍콩 음악계에서는 그가 오랫동안 마음을 졸이며 좋아했던 가수 황요명(黃耀明)과의 추억이 이 곡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고 입을 모으죠.
가사 1절에 나직이 흘러나오는 ‘여관의 문번호’, ‘가로등 불빛 아래 노랗게 물든 얼굴’, 그리고 ‘미지근한 도시락’까지. 이 소박하고도 다정한 풍경들은 두 사람이 함께 일본 도쿄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실제 일화라고 해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석은 황요명에게 오랜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도쿄의 어느 거리(二丁目)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람을 맞았거나 거절을 당하고 말았죠.
그 쓸쓸한 기억을 안고 쓴 가사이기에, “하늘 가득 노란 낙엽이 흩날리는 걸 함께 보자”던 그 아름다운 약속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홀로 그려본, 서글프고도 찬란한 상상 속 판타지였던 셈입니다.
참고로 이 가슴 아픈 도쿄의 밤은 양천화의 명곡 ‘재견이정목(再見二丁目)’, 그리고 왕페이의 또 다른 곡 *‘우체부(郵差)’*로 이어지며 하나의 애틋한 연작 시리즈를 완성하게 됩니다.
1997년 홍콩에서 처음 발매된 왕페이의 원곡은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만 광동어라는 특성상 중국 본토나 대만 같은 보통화 권역의 대중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다가갔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1999년, 대만의 실력파 신인 가수 주혜(周蕙)가 이 곡을 보통화(국어)로 번안해 다시 발표하게 됩니다.
이 버전이 그야말로 중화권 전역에서 초대박을 터뜨리며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국민 발라드로 자리 잡았죠.재미있는 점은 두 곡의 결이 참 다르다는 것입니다.
왕페이의 원곡이 이별 뒤에 찾아온 지독한 집착과 시린 그리움을 노래했다면, 주혜의 버전은 지나간 아픔을 뒤로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랑을 소중히 서약하는 따뜻하고 달콤한 고백송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새벽녘 여러분의 마음에 서늘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원곡을, 포근한 온기가 필요하다면 번안곡을 들어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마지막으로 이 노래가 유독 우리 귀에 부드럽게 감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광동어 음악 특유의 ‘음위 조화(協音) 예술’ 덕분인데요.광동어는 무려 6개에서 9개에 달하는 성조(말의 높낮이)를 가진 까다로운 언어입니다.
만약 노랫말을 붙일 때 멜로디의 음과 글자 고유의 성조가 어긋나면, 아예 다른 단어로 들리거나 부르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지고 말죠.천재 작사가 임석은 왕페이가 부를 멜로디 라인의 음 높낮이를 완벽하게 계산해 냈습니다.
그러고는 음표 하나하나에 성조가 딱 들어맞는 한자만을 마법처럼 골라내어 가사를 채웠습니다.
우리가 이 곡을 들을 때 가사가 마치 매끄러운 비단처럼 흐른다고 느끼는 건, 이러한 언어학적 아름다움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쓸쓸한 도쿄의 밤거리, 지켜지지 못한 약속, 그리고 언어의 결을 살려낸 천재성의 조화까지.
이번 주말은 가사 한 줄 한 줄에 담긴 마음을 음미하며 왕페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탱,딜,힐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