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게임, 그 이상의 재미… 조지명식이 필요한 이유

칼럼 | 김홍제 기자 |
커다란 무대, 그 앞을 채워주는 관객석, 사람들의 환호성과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나올법한 웃음소리. 흡사 대학로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공개 코미디에서 나올법한 풍경들.

그러나 이곳은 대학로 공연장이 아니다. 장소는 다름 아닌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와 스포티비 스타리그가 펼쳐지는 강남 넥슨 아레나.

선수들은 수없이 많은 연습 경기를 통해 단 한 번의 방송 무대에서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팬들은 노력의 결과물인 선수의 기발한 전략, 뛰어난 컨트롤, 멋진 경기에 환호한다. 하지만 8일 2015 스포티비 스타리그 시즌1 16강 조추첨식이 벌어진 현장만큼은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팬들이 열광한 건 선수들의 경기가 아닌 입담이었다.





조지명식이나 조추첨식은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었다. 프로게이머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팬들은 선수들의 경기 외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조지명식이 열리는 날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선수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그러나 2014년 초부터 스타크래프트2 리그에서 조지명식을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1년 동안 2014년 8월 22일 펼쳐졌던 2014 핫식스 GSL 시즌3가 전부였다.

그리고 2015년을 알리는 첫 시즌. 스포티비 게임즈는 자신들의 자체 브랜드인 스타리그에서 조추첨식을 진행했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동안 큰 활약이 없었던 선수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팬들은 그 기대에 부응했다. 이번 조추첨식의 주인공은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김준호도, 조성주도 아니었다. 16명의 선수 중 약체에 속하는 진에어 그린윙스의 주장 하재상이었다. 하재상은 거대한 몸집과 평소 과묵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재치있는 입담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이런 무대가 아니면 확인할 수 없었던 하재상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진에어 그린윙스 이병렬 역시 경기력은 뛰어나지만 무난한 스타일로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이날 보여준 표정 연기의 존재감은 단연 최고였다. KT 롤스터 김대엽 역시 인터뷰 도중 '화장실이 급하다'며 다소 인간적인 모습을 노출시키며 웃음을 자아냈고, 스타2계의 유재석 닮은꼴로 손꼽히는 삼성 갤럭시칸의 백동준은 유재석의 메뚜기 월드라는 곡과 함께 메뚜기 춤을 추며 등장, CJ 엔투스 김준호는 이승기의 내여자라니까를 열창하며 현장을 찾은 누나들의 심장을 멎게 할 뻔했다.



▲ 이번 조추첨식을 캐리한 진에어 하재상


스타크래프트2 관련 커뮤니티에서 순식간에 게시판 한 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많은 글이 쏟아졌다. 스타크래프트2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슈거리와 재미만 있으면 팬들은 반응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리그의 흥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수들의 경기력이지만, 엔터테이너적인 요소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무작위로 추첨하고 공지를 띄워도 이상하지 않을법했던 이번 조추첨식에서 스포티비 게임즈는 선수 중 두 명에게 조지명식의 시드권자와 비슷한 권한을 가진 '골든볼'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재미를 만들어냈다.

과거 2009년 열렸던 로스트사가 MSL에서도 당시 크게 유명하지 않던 박문기가 육룡을 도발하며 어느 때보다 화끈하고 재밌는 조지명식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팬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게임 리그는 게임을 보는 재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게임 그 이상의 엔터테이너적인 재미를 제공해야 한다.

8일 펼쳐진 조추첨식을 통해 많은 팬들은 재밌는 입담을 떨친 선수들에게 관심이 생겼을 것이고, 그 선수들의 경기에 궁금해하고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스토리에도 주목할 것이다. 최근 스타크래프트2 양대리그가 개설된 만큼 앞으로도 조지명식이 계속되어 더욱 다양한 볼거리와 스토리가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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